K-패션, ‘나갈 준비’ 말고 ‘성장할 준비’를 하라
설텍2026 DAY 2 ‘SCALE GLOBALLY’가 던진 근본적인 질문
좋은 브랜드를 넘어, 반복해서 성장하는 ‘글로벌 브랜드 운영체계’로

K-패션의 글로벌 진출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해외 플랫폼에 입점하고, 팝업스토어를 열고, 현지 디스트리뷰터와 계약하는 것만으로 더 이상 ‘글로벌 진출’을 말하기 어려워졌다. 세계 시장에서 한 번 발견되는 것과 그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9월 10일 열린 ‘2026 SEOUL Tex & Tech(설텍2026)’ 둘째 날의 주제는 ‘SCALE GLOBALLY’였다. 엄운현 LVMH MOYNAT Korea 대표를 시작으로 오준영 미스토상하이 법인장, 김태현 CLO Virtual Fashion R&D 시니어 매니저, 중국 24KR, 범유명 POIZON Korea 한국총괄, 주화 상하이109 총감, 김성한 랩오브어패럴 대표 등이 무대에 올라 글로벌 브랜드와 중국시장, Fashion OS, 오프라인 편집유통, 플랫폼, AI Commerce, 글로벌 소싱을 각각의 관점에서 짚었다.
다루는 영역은 달랐지만 하루의 강연을 하나로 연결하면 메시지는 명확했다. 글로벌 스케일업은 ‘어디에 팔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브랜드를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좋은 디자인과 한국에서의 인지도만으로 해외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 수 없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시장별 상품을 개발하고, 현지 소비자와 관계를 만들며, 유통과 콘텐츠를 운영하고, 수요 변화에 대응할 공급망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상품기획부터 생산, 판매, CRM까지 발생하는 정보를 데이터와 AI로 연결하는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결국 설텍2026 DAY 2가 제시한 글로벌 스케일업의 공식은 ‘BRAND × LOCALIZATION × DISTRIBUTION × SUPPLY CHAIN × AI OS’로 압축된다. 수출이 상품을 국경 밖으로 보내는 일이라면, 스케일업은 해외에서도 성공을 반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 글로벌의 출발점은 ‘수출’이 아니라 브랜드다

[설텍2026 DAY 2를 관통한 8개의 키워드] 한 문장으로 읽는 ‘SCALE GLOBALLY’: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되 시장에 맞게 상품과 콘텐츠를 현지화하고, 현지 Brand Manager와 소비자 접점을 만들며, AI Commerce로 수요를 발견하고 Responsive Supply Chain과 Fashion OS로 이를 반복할 때 K-패션의 진짜 글로벌 스케일업이 시작된다.
첫 번째 질문은 단순했다. K-패션은 해외에서 상품을 많이 파는 브랜드가 될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브랜드가 될 것인가.
엄운현 LVMH MOYNAT Korea 대표의 ‘Luxury가 되는 브랜드에는 이유가 있다’는 강연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해외 매출을 늘리는 것과 다르다. 브랜드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상품과 공간, 가격, 서비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얼마나 일관되게 전달되는지가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를 결정한다.
K-패션은 속도와 트렌드 대응력, 콘텐츠 생산력에서 분명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유행을 빠르게 따라가는 능력보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오랫동안 축적하는 힘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히트상품은 매출을 만들 수 있지만 브랜드 고유의 세계관과 일관성이 없다면 다음 시즌, 다음 국가에서도 성공을 반복하기 어렵다.
이 질문은 오준영 미스토상하이 법인장의 ‘K패션은 어떻게 중국에서 살아남는가?’를 통해 보다 현실적인 비즈니스 문제로 이어졌다. 중국에서 FILA의 성장 과정을 경험하고 현재 K-패션 브랜드의 현지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는 오 법인장이 강조한 핵심은 “중국에 진출하는 것과 중국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설텍2026 현장
중국은 단순히 한국보다 규모가 큰 하나의 판매처가 아니다. 소비자와 가격, 채널, 상품, 콘텐츠가 빠르게 변화하는 독립적인 시장이다. 한국에서 잘 팔린 상품을 그대로 가져가거나 좋은 파트너 한 곳을 만나 사업을 모두 맡기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스케일업을 만들기 어렵다. 현지 소비자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맞는 상품과 콘텐츠를 개발하면서도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은 지켜야 한다. 결국 ‘Localize the Product, Keep the Brand’, 즉 상품과 운영은 현지화하되 브랜드의 DNA는 흔들리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김태현 CLO Virtual Fashion R&D 시니어 매니저의 ‘K-FASHION, 글로벌 기업처럼 일하라’는 이 문제를 기업 내부의 운영체계로 가져왔다.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조직의 규모가 아니라 여러 국가와 조직, 협력사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며 움직이는 ‘Fashion OS’에서 나온다. 디지털 샘플과 3D, 데이터 기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샘플 제작 시간을 단축하는 기술이 아니다. 서울의 디자인팀과 해외 생산공장, 현지 법인과 파트너가 하나의 언어로 상품을 이해하고 빠르게 의사결정하도록 만드는 글로벌 협업 인프라다.
따라서 K-패션의 첫 번째 글로벌 과제는 해외 매장을 몇 개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를 만들고, 그 브랜드를 여러 시장에서 반복해서 실행할 수 있는 Operating System을 갖추는 것이다.
# 중국 스케일업 공식이 바뀌었다…‘유통’에서 ‘브랜드 매니지먼트’로

두 번째 화두는 중국의 실제 유통 현장에서 나왔다. 과거 중국 진출의 전형적인 방식은 현지 총판이나 대리상에게 상품을 넘기고 수출 매출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초기 매출을 만들 수 있고 재고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누가 상품을 구매하고 있는지, 어떤 상품에 반응하는지, 어떤 콘텐츠가 소비자를 움직였는지에 대한 데이터와 경험이 브랜드에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K-패션 편집숍 24KR을 운영하는 HUGSOSO가 강조한 ‘K-패션의 중국 스케일업, 결국 브랜드 매니지먼트다’라는 메시지는 이 같은 변화의 본질을 보여준다. 새로운 오프라인 편집숍은 단순한 판매점이 아니다. 소비자가 새로운 K-패션을 발견하고, 입어보고, 사진과 콘텐츠를 만들며 브랜드를 경험하는 ‘Discovery Platform’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들어진 경험은 샤오홍슈 등 SNS로 확산되고, 다시 온라인 검색과 구매로 이어진다.
따라서 중국 파트너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달라져야 한다. 좋은 상권에 매장을 확보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지 상품기획과 바잉, 리테일, 콘텐츠, SNS 마케팅, 고객 데이터 분석, 리오더까지 브랜드 성장의 전 과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Distributor’가 아니라 ‘Brand Manager’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중국 파트너를 선택할 때 “얼마나 많이 사갈 것인가”보다 “우리 브랜드를 중국에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범유명 POIZON Korea 한국총괄은 이러한 변화가 온라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마뗑킴과 산산기어 등 K-패션 사례를 통해 보여줬다. 중국 Z세대에게 브랜드는 더 이상 단순히 유명하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상품과 콘텐츠, 커뮤니티에서 형성되는 문화적 코드가 소비자의 취향과 연결돼야 한다. 특히 POIZON과 같은 플랫폼에서는 소비자가 필요한 상품을 검색해 구매하는 전통적인 이커머스보다 ‘발견→관심→신뢰→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오히려 K-패션에게 기회다. 막대한 광고비와 수천 개의 매장을 가진 글로벌 메가 브랜드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명확한 캐릭터와 상품력, 콘텐츠를 가진 브랜드라면 특정 소비자 커뮤니티에서 강한 반응을 만들고 이를 확산시키는 전략이 가능하다.
다만 중국 전체를 처음부터 공략하려는 욕심은 버릴 필요가 있다. ‘TEST → LEARN → LOCALIZE → SCALE’이 새로운 접근법이다. 작은 채널과 상품으로 시장을 테스트하고, 소비자 반응을 학습한 뒤 상품·가격·콘텐츠를 현지화하고, 검증된 성공모델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과거 중국사업이 ‘큰 계약’을 먼저 만드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작은 성공을 반복해 큰 시장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 AI Commerce, 이제 ‘어디서 파느냐’보다 ‘어떻게 발견되느냐’가 중요하다

세 번째 변화는 커머스 자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주화 상하이109 총감의 ‘AI Commerce, 중국 이커머스의 진화’는 중국 커머스가 이미 ‘검색해서 사는 시장’에서 AI가 상품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과거 이커머스에서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비교적 명확했다. 티몰 등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고 광고를 집행해 트래픽을 끌어온 뒤 구매전환율을 높이면 됐다. 그러나 더우인과 샤오홍슈 등 콘텐츠 기반 커머스가 성장하고 추천 알고리즘이 소비자의 상품 발견을 좌우하면서 게임의 규칙이 달라졌다. 이제 브랜드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느 플랫폼에 입점했는가’가 아니라 ‘우리 상품이 어떤 소비자에게 어떻게 발견되고 있는가’다.
AI는 이 구조를 더욱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콘텐츠 제작부터 소비자 세분화, 상품 추천, 광고 집행, 판매, 고객관리까지 커머스의 전 과정이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만들고 고객을 유입시켜 상품을 판매한 뒤 다시 CRM으로 연결하는 E2E Commerce AX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이는 한국 패션기업의 중국사업 조직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중국사업을 티몰팀, 더우인팀, 오프라인팀으로 각각 나눠 운영하는 것이 여전히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다. 소비자는 이미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처음 브랜드를 발견한 소비자가 샤오홍슈에서 검색하고, 더우인 콘텐츠를 본 뒤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발견한 브랜드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경험하고 구매할 수도 있다.
따라서 브랜드는 ‘OFFLINE → CONTENT → SOCIAL → COMMERCE → CRM’을 각각의 채널이 아니라 하나의 Customer Journey로 관리해야 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콘텐츠와 커머스가 따로 움직이는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에서 K-패션이 주목해야 할 것은 AI 자체가 아니다. AI를 활용해 어떤 소비자가 어떤 콘텐츠에 반응했고, 어떤 상품을 구매했으며, 그 수요를 다음 상품기획과 리오더에 얼마나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AI Commerce의 진짜 경쟁력은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발견부터 구매, 재구매까지 이어지는 전체 과정을 데이터로 연결하는 데 있다.
# 결국 마지막 승부는 ‘Responsive Supply Chain × Fashion OS’

CEO SELF CHECK
브랜드를 만들고 소비자를 발견해도 팔리는 순간 상품을 공급하지 못하면 스케일업은 멈춘다. 설텍2026 DAY 2의 마지막 화두가 다시 공급망과 기업의 Operating System으로 돌아온 이유다.
김성한 랩오브어패럴 대표의 ‘성공하는 브랜드를 위한 글로벌 소싱 전략과 Fashion AI 활용법’은 글로벌 비즈니스의 마지막 퍼즐이 왜 공급망인지를 보여줬다. 글로벌 소싱의 본질은 값싼 공장을 찾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의 성장 단계에 맞춰 품질과 가격, MOQ, 납기, 생산능력과 리오더 대응력을 갖춘 파트너를 확보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해도 상품 공급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한 국가와 한 공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복수의 생산 거점과 백업 파트너를 구축해야 한다. 공급업체 역시 단순한 견적 비교가 아니라 테스트 오더와 실제 생산을 통해 품질·납기·가격·커뮤니케이션·리오더 대응 능력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AI가 결합하면서 Tech Pack, BOM, 원가계산, 발주, 생산 추적 등 그동안 사람의 경험과 엑셀에 의존했던 소싱 업무 역시 빠르게 데이터화될 수 있다.
결국 글로벌 브랜드의 공급망 경쟁은 ‘Cheap Sourcing’에서 ‘Responsive Sourcing’으로 이동하고 있다. 얼마나 싸게 만드는가보다 어떤 상품이 팔리는지를 확인한 뒤 시장이 원하는 시점에 얼마나 빠르게 다시 공급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초도 물량을 크게 가져가는 능력보다 작게 테스트하고 빠르게 판단하고 즉시 리오더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된다.
이날 마지막 AI Native Company 세션은 이러한 논의를 다시 기업 내부로 돌려놓았다. AI 솔루션 몇 개를 도입한다고 AI Native Company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과 프로세스,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AI 시대에 맞게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는 첫날 ‘BUILD WITH AI’와 둘째 날 ‘SCALE GLOBALLY’를 연결하는 설텍2026 전체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글로벌 스케일업 역시 결국 Operating System의 경쟁이다.
상품기획자는 글로벌 시장 데이터를 보고, 디자이너는 해외 생산팀과 실시간으로 협업하며, 중국 법인과 현지 파트너는 소비자 데이터를 본사와 공유하고, 생산팀은 실제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리오더를 결정해야 한다. 이 정보가 엑셀과 카카오톡, 위챗, 이메일과 개인의 경험 속에 흩어져 있다면 글로벌 사업이 커질수록 조직은 오히려 느려진다.
AI 시대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일하느냐가 아니라 사람과 AI, 데이터와 파트너, 시장과 공급망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에서 결정된다.
설텍2026 둘째 날이 K-패션 경영자들에게 던진 질문은 결국 하나다.
“당신의 브랜드는 해외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해외에서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두 질문은 전혀 다르다. 수출은 상품을 국경 밖으로 보내면 시작할 수 있지만, 스케일업은 브랜드와 상품, 현지 소비자, 유통, 콘텐츠, 공급망, 조직과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야 가능하다.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
K-패션, ‘나갈 준비’ 말고 ‘성장할 준비’를 하라
K-패션의 글로벌 진출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해외 플랫폼에 입점하고, 팝업스토어를 열고, 현지 디스트리뷰터와 계약하는 것만으로 더 이상 ‘글로벌 진출’을 말하기 어려워졌다. 세계 시장에서 한 번 발견되는 것과 그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9월 10일 열린 ‘2026 SEOUL Tex & Tech(설텍2026)’ 둘째 날의 주제는 ‘SCALE GLOBALLY’였다. 엄운현 LVMH MOYNAT Korea 대표를 시작으로 오준영 미스토상하이 법인장, 김태현 CLO Virtual Fashion R&D 시니어 매니저, 중국 24KR, 범유명 POIZON Korea 한국총괄, 주화 상하이109 총감, 김성한 랩오브어패럴 대표 등이 무대에 올라 글로벌 브랜드와 중국시장, Fashion OS, 오프라인 편집유통, 플랫폼, AI Commerce, 글로벌 소싱을 각각의 관점에서 짚었다.
다루는 영역은 달랐지만 하루의 강연을 하나로 연결하면 메시지는 명확했다. 글로벌 스케일업은 ‘어디에 팔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브랜드를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좋은 디자인과 한국에서의 인지도만으로 해외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 수 없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시장별 상품을 개발하고, 현지 소비자와 관계를 만들며, 유통과 콘텐츠를 운영하고, 수요 변화에 대응할 공급망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상품기획부터 생산, 판매, CRM까지 발생하는 정보를 데이터와 AI로 연결하는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결국 설텍2026 DAY 2가 제시한 글로벌 스케일업의 공식은 ‘BRAND × LOCALIZATION × DISTRIBUTION × SUPPLY CHAIN × AI OS’로 압축된다. 수출이 상품을 국경 밖으로 보내는 일이라면, 스케일업은 해외에서도 성공을 반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 글로벌의 출발점은 ‘수출’이 아니라 브랜드다
[설텍2026 DAY 2를 관통한 8개의 키워드] 한 문장으로 읽는 ‘SCALE GLOBALLY’: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되 시장에 맞게 상품과 콘텐츠를 현지화하고, 현지 Brand Manager와 소비자 접점을 만들며, AI Commerce로 수요를 발견하고 Responsive Supply Chain과 Fashion OS로 이를 반복할 때 K-패션의 진짜 글로벌 스케일업이 시작된다.
첫 번째 질문은 단순했다. K-패션은 해외에서 상품을 많이 파는 브랜드가 될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브랜드가 될 것인가.
엄운현 LVMH MOYNAT Korea 대표의 ‘Luxury가 되는 브랜드에는 이유가 있다’는 강연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해외 매출을 늘리는 것과 다르다. 브랜드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상품과 공간, 가격, 서비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얼마나 일관되게 전달되는지가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를 결정한다.
K-패션은 속도와 트렌드 대응력, 콘텐츠 생산력에서 분명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유행을 빠르게 따라가는 능력보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오랫동안 축적하는 힘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히트상품은 매출을 만들 수 있지만 브랜드 고유의 세계관과 일관성이 없다면 다음 시즌, 다음 국가에서도 성공을 반복하기 어렵다.
이 질문은 오준영 미스토상하이 법인장의 ‘K패션은 어떻게 중국에서 살아남는가?’를 통해 보다 현실적인 비즈니스 문제로 이어졌다. 중국에서 FILA의 성장 과정을 경험하고 현재 K-패션 브랜드의 현지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는 오 법인장이 강조한 핵심은 “중국에 진출하는 것과 중국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설텍2026 현장
중국은 단순히 한국보다 규모가 큰 하나의 판매처가 아니다. 소비자와 가격, 채널, 상품, 콘텐츠가 빠르게 변화하는 독립적인 시장이다. 한국에서 잘 팔린 상품을 그대로 가져가거나 좋은 파트너 한 곳을 만나 사업을 모두 맡기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스케일업을 만들기 어렵다. 현지 소비자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맞는 상품과 콘텐츠를 개발하면서도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은 지켜야 한다. 결국 ‘Localize the Product, Keep the Brand’, 즉 상품과 운영은 현지화하되 브랜드의 DNA는 흔들리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김태현 CLO Virtual Fashion R&D 시니어 매니저의 ‘K-FASHION, 글로벌 기업처럼 일하라’는 이 문제를 기업 내부의 운영체계로 가져왔다.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조직의 규모가 아니라 여러 국가와 조직, 협력사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며 움직이는 ‘Fashion OS’에서 나온다. 디지털 샘플과 3D, 데이터 기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샘플 제작 시간을 단축하는 기술이 아니다. 서울의 디자인팀과 해외 생산공장, 현지 법인과 파트너가 하나의 언어로 상품을 이해하고 빠르게 의사결정하도록 만드는 글로벌 협업 인프라다.
따라서 K-패션의 첫 번째 글로벌 과제는 해외 매장을 몇 개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를 만들고, 그 브랜드를 여러 시장에서 반복해서 실행할 수 있는 Operating System을 갖추는 것이다.
# 중국 스케일업 공식이 바뀌었다…‘유통’에서 ‘브랜드 매니지먼트’로
두 번째 화두는 중국의 실제 유통 현장에서 나왔다. 과거 중국 진출의 전형적인 방식은 현지 총판이나 대리상에게 상품을 넘기고 수출 매출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초기 매출을 만들 수 있고 재고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누가 상품을 구매하고 있는지, 어떤 상품에 반응하는지, 어떤 콘텐츠가 소비자를 움직였는지에 대한 데이터와 경험이 브랜드에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K-패션 편집숍 24KR을 운영하는 HUGSOSO가 강조한 ‘K-패션의 중국 스케일업, 결국 브랜드 매니지먼트다’라는 메시지는 이 같은 변화의 본질을 보여준다. 새로운 오프라인 편집숍은 단순한 판매점이 아니다. 소비자가 새로운 K-패션을 발견하고, 입어보고, 사진과 콘텐츠를 만들며 브랜드를 경험하는 ‘Discovery Platform’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들어진 경험은 샤오홍슈 등 SNS로 확산되고, 다시 온라인 검색과 구매로 이어진다.
따라서 중국 파트너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달라져야 한다. 좋은 상권에 매장을 확보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지 상품기획과 바잉, 리테일, 콘텐츠, SNS 마케팅, 고객 데이터 분석, 리오더까지 브랜드 성장의 전 과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Distributor’가 아니라 ‘Brand Manager’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중국 파트너를 선택할 때 “얼마나 많이 사갈 것인가”보다 “우리 브랜드를 중국에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범유명 POIZON Korea 한국총괄은 이러한 변화가 온라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마뗑킴과 산산기어 등 K-패션 사례를 통해 보여줬다. 중국 Z세대에게 브랜드는 더 이상 단순히 유명하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상품과 콘텐츠, 커뮤니티에서 형성되는 문화적 코드가 소비자의 취향과 연결돼야 한다. 특히 POIZON과 같은 플랫폼에서는 소비자가 필요한 상품을 검색해 구매하는 전통적인 이커머스보다 ‘발견→관심→신뢰→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오히려 K-패션에게 기회다. 막대한 광고비와 수천 개의 매장을 가진 글로벌 메가 브랜드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명확한 캐릭터와 상품력, 콘텐츠를 가진 브랜드라면 특정 소비자 커뮤니티에서 강한 반응을 만들고 이를 확산시키는 전략이 가능하다.
다만 중국 전체를 처음부터 공략하려는 욕심은 버릴 필요가 있다. ‘TEST → LEARN → LOCALIZE → SCALE’이 새로운 접근법이다. 작은 채널과 상품으로 시장을 테스트하고, 소비자 반응을 학습한 뒤 상품·가격·콘텐츠를 현지화하고, 검증된 성공모델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과거 중국사업이 ‘큰 계약’을 먼저 만드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작은 성공을 반복해 큰 시장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 AI Commerce, 이제 ‘어디서 파느냐’보다 ‘어떻게 발견되느냐’가 중요하다
세 번째 변화는 커머스 자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주화 상하이109 총감의 ‘AI Commerce, 중국 이커머스의 진화’는 중국 커머스가 이미 ‘검색해서 사는 시장’에서 AI가 상품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과거 이커머스에서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비교적 명확했다. 티몰 등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고 광고를 집행해 트래픽을 끌어온 뒤 구매전환율을 높이면 됐다. 그러나 더우인과 샤오홍슈 등 콘텐츠 기반 커머스가 성장하고 추천 알고리즘이 소비자의 상품 발견을 좌우하면서 게임의 규칙이 달라졌다. 이제 브랜드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느 플랫폼에 입점했는가’가 아니라 ‘우리 상품이 어떤 소비자에게 어떻게 발견되고 있는가’다.
AI는 이 구조를 더욱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콘텐츠 제작부터 소비자 세분화, 상품 추천, 광고 집행, 판매, 고객관리까지 커머스의 전 과정이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만들고 고객을 유입시켜 상품을 판매한 뒤 다시 CRM으로 연결하는 E2E Commerce AX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이는 한국 패션기업의 중국사업 조직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중국사업을 티몰팀, 더우인팀, 오프라인팀으로 각각 나눠 운영하는 것이 여전히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다. 소비자는 이미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처음 브랜드를 발견한 소비자가 샤오홍슈에서 검색하고, 더우인 콘텐츠를 본 뒤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발견한 브랜드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경험하고 구매할 수도 있다.
따라서 브랜드는 ‘OFFLINE → CONTENT → SOCIAL → COMMERCE → CRM’을 각각의 채널이 아니라 하나의 Customer Journey로 관리해야 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콘텐츠와 커머스가 따로 움직이는 시대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에서 K-패션이 주목해야 할 것은 AI 자체가 아니다. AI를 활용해 어떤 소비자가 어떤 콘텐츠에 반응했고, 어떤 상품을 구매했으며, 그 수요를 다음 상품기획과 리오더에 얼마나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AI Commerce의 진짜 경쟁력은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발견부터 구매, 재구매까지 이어지는 전체 과정을 데이터로 연결하는 데 있다.
# 결국 마지막 승부는 ‘Responsive Supply Chain × Fashion OS’
CEO SELF CHECK
브랜드를 만들고 소비자를 발견해도 팔리는 순간 상품을 공급하지 못하면 스케일업은 멈춘다. 설텍2026 DAY 2의 마지막 화두가 다시 공급망과 기업의 Operating System으로 돌아온 이유다.
김성한 랩오브어패럴 대표의 ‘성공하는 브랜드를 위한 글로벌 소싱 전략과 Fashion AI 활용법’은 글로벌 비즈니스의 마지막 퍼즐이 왜 공급망인지를 보여줬다. 글로벌 소싱의 본질은 값싼 공장을 찾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의 성장 단계에 맞춰 품질과 가격, MOQ, 납기, 생산능력과 리오더 대응력을 갖춘 파트너를 확보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해도 상품 공급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한 국가와 한 공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복수의 생산 거점과 백업 파트너를 구축해야 한다. 공급업체 역시 단순한 견적 비교가 아니라 테스트 오더와 실제 생산을 통해 품질·납기·가격·커뮤니케이션·리오더 대응 능력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AI가 결합하면서 Tech Pack, BOM, 원가계산, 발주, 생산 추적 등 그동안 사람의 경험과 엑셀에 의존했던 소싱 업무 역시 빠르게 데이터화될 수 있다.
결국 글로벌 브랜드의 공급망 경쟁은 ‘Cheap Sourcing’에서 ‘Responsive Sourcing’으로 이동하고 있다. 얼마나 싸게 만드는가보다 어떤 상품이 팔리는지를 확인한 뒤 시장이 원하는 시점에 얼마나 빠르게 다시 공급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초도 물량을 크게 가져가는 능력보다 작게 테스트하고 빠르게 판단하고 즉시 리오더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된다.
이날 마지막 AI Native Company 세션은 이러한 논의를 다시 기업 내부로 돌려놓았다. AI 솔루션 몇 개를 도입한다고 AI Native Company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과 프로세스,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AI 시대에 맞게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는 첫날 ‘BUILD WITH AI’와 둘째 날 ‘SCALE GLOBALLY’를 연결하는 설텍2026 전체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글로벌 스케일업 역시 결국 Operating System의 경쟁이다.
상품기획자는 글로벌 시장 데이터를 보고, 디자이너는 해외 생산팀과 실시간으로 협업하며, 중국 법인과 현지 파트너는 소비자 데이터를 본사와 공유하고, 생산팀은 실제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리오더를 결정해야 한다. 이 정보가 엑셀과 카카오톡, 위챗, 이메일과 개인의 경험 속에 흩어져 있다면 글로벌 사업이 커질수록 조직은 오히려 느려진다.
AI 시대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일하느냐가 아니라 사람과 AI, 데이터와 파트너, 시장과 공급망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에서 결정된다.
설텍2026 둘째 날이 K-패션 경영자들에게 던진 질문은 결국 하나다.
“당신의 브랜드는 해외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해외에서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두 질문은 전혀 다르다. 수출은 상품을 국경 밖으로 보내면 시작할 수 있지만, 스케일업은 브랜드와 상품, 현지 소비자, 유통, 콘텐츠, 공급망, 조직과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야 가능하다.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