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노베이션[패션테크] 이커머스 패션의 다음 병목은 ‘공급망 운영력’

이커머스 패션의 다음 병목은 ‘공급망 운영력’

히트 상품 제조 다음은 민첩한 공급망 구축

기획·샘플·생산·리오더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브랜드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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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로 성장한 패션기업의 진짜 위기는 매출이 커진 뒤에 온다. 첫 히트 상품은 감각으로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히트 상품도 빠른 기획과 마케팅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시즌이 반복되고 SKU가 늘어나며 채널이 확장되는 순간, 브랜드의 성장은 더 이상 디자인 감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상품 기획, 샘플 개발, 원부자재 수급, 생산 배분, 납기 관리, 품질 검수, 리오더 대응이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이때 공급망은 비용 부서가 아니라 브랜드의 성장 엔진이 된다. 

# 팔리는 상품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팔 수 있는 구조’


특히 무신사, 자사몰, 글로벌 D2C 채널을 기반으로 성장한 브랜드일수록 이 전환점은 더 빠르게 찾아온다. 온라인에서는 상품 반응이 즉각 확인된다. 잘 팔리는 상품은 며칠 만에 재고가 빠지고, 리오더 판단은 늦어도 일주일 안에 내려야 한다. 문제는 브랜드 내부 조직이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디자이너와 MD는 있지만 패턴, 봉제, 원단, 부자재, 공임, 납기 구조를 총괄할 생산 전문 인력은 부족하다. 초도 물량을 작게 가져가면 품절 리스크가 크고, 크게 가져가면 재고 부담이 커진다. 

즉, 이커머스 패션 경영자가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지점은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팔린 것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다시 만들 수 있는가’다. 한국 패션 산업에서 프로모션 기능이 가능한 제조 기업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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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파(대표 윤순민)는 개발부터 샘플, 생산까지 전 공정을 통합 관리하며 온라인 브랜드의 선기획 공백을 메우고 있다. 위즈컴퍼니(대표 박동원)는 베트남과 중국 생산 거점, 원부자재 소싱망을 연결해 원가, 납기, 품질을 함께 관리하는 구조를 구축했고 신설 기업인 더플레어(대표 권오현)는 이커머스 브랜드 생태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강점으로 이들의 니즈에 맞는 상품 소싱을 전담해주고 있다. 니트 프로모션 HS 니트(대표 박희선)는 홀가먼트 니트웨어의 특수성을 살려 소량 생산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옷을 대신 만들어주는 업체가 아니다. 브랜드가 내부에 갖추지 못한 생산 운영 기능을 외부에서 대신 작동시키는 확장 조직에 가깝다.

# ‘잘 만드는 공장’보다 ‘빨리 판단하는 운영체계’ 절실


패션기업 경영자들이 공급망을 볼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공장 규모와 생산 캐퍼를 경쟁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커머스 브랜드에 필요한 것은 대물량을 한 번에 밀어내는 능력만이 아니다. 초도 물량을 적정하게 끊고, 판매 데이터를 보고, 원단과 부자재를 미리 잡아두고, 리오더 가능성을 생산처와 공유하며, 품질 편차를 줄이는 운영 능력이다. 다시 말해 공급망의 핵심은 봉제 라인이 아니라 ‘의사결정 속도’다.

예를 들어 한 브랜드가 인기 팬츠를 출시했다고 가정해보자. 첫 주 판매율이 60%를 넘으면 리오더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원단이 단종됐거나 염색 로트가 달라지거나 봉제 공장이 다른 물량을 이미 받은 상태라면 리오더는 늦어진다. 같은 디자인을 다시 만들었는데 핏이 미세하게달라지면 고객 리뷰는 바로 악화된다. 온라인에서는 이 작은 편차가 곧 반품률과 브랜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커머스 패션의 공급망은 생산 이후가 아니라 기획 이전부터 설계돼야 한다. 어떤 상품을 빠르게 테스트할지, 어떤 상품은 시즌 핵심 아이템으로 보고 원단을 선점할지, 어떤 상품은 해외 생산으로 원가를 낮출지, 어떤 상품은 국내 반응형 생산으로 속도를 확보할지를 사전에 나눠야 한다. 


6424f26d9176b.jpg모다스코리아(화이트하우스)

모다스코리아(대표 김광수)와 팅크솔루션(대표 김성현) 같은 반응형 생산 인프라가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모다스코리아는 브라더 DTP 설비를 기반으로 티셔츠 기준 하루 6,000장 이상 생산 가능한 체계를 구축했다. 팅크솔루션은 연간 130만 장 규모의 DTP 생산 능력으로 콘텐츠 기반 상품과 빠른 리오더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이 같은 인프라는 단순한 생산량 경쟁이 아니다. 시장 반응을 보고 상품을 보정하며 재투입하는 이커머스형 제조 방식이다. 

경영자는 이제 생산을 ‘원가 절감 수단’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생산은 재고 리스크를 줄이고, 판매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브랜드 경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싼 공장을 찾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상품 구조에 맞는 생산 포트폴리오를 설계하는 일이다. 국내 소량 반응 생산, 해외 원가 경쟁 생산, 핵심 아이템 장기 생산, 테스트 상품 단기 생산을 구분하지 못하면 브랜드는 성장할수록 더 큰 운영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 공급망을 설계하는 CEO가 다음 5년의 승자


K-패션의 다음 경쟁은 브랜드 감도와 제조 실행력의 결합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많은 이커머스 브랜드는 콘텐츠, 룩북, 인플루언서, 플랫폼 노출, 퍼포먼스 마케팅을 통해 성장했다. 그러나 매출 규모가 커질수록 마케팅 효율은 떨어지고, 상품 실패 비용은 커진다. 이 시점부터 CEO가 직접 봐야 할 지표도 바뀐다. 조회 수, 클릭률, 전환율만으로는 부족하다. 초도 판매율, 리오더 소요 기간, 원부자재 확보율, 납기 준수율, 반품률, 불량률, 재고 회전율, 품절 손실액을 함께 봐야 한다. 이 지표들이 곧 공급망 건강도를 보여준다.

브랜드가 100억 원대에서 300억 원대, 500억 원대로 성장하려면 감각적 상품 기획을 반복 가능한 운영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 파트너를 단순 거래처로 관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프로모션 기업, 샘플실, 원단 업체, 프린팅 업체, 봉제 공장, 해외 생산처를 하나의 운영망으로 묶어야 한다. 상품군별로 파트너를 다르게 설계하고, 시즌 전 원부자재 전략을 세우며, 핵심 아이템은 리오더 전제를 두고 개발해야 한다. 브랜드 내부에는 모든 기능을 직접 둘 필요가 없다. 다만 어떤 기능을 내부에 두고, 어떤 기능을 외부 운영체계에 맡길지 판단하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 실제 생산, 재주문 가능한 플랫폼 필요


1922f981eef73.png29CM 베스트 상품에 랭킹되어 있지만 몇 주를 기다려야 배송받을 수 있다.


국내 패션 제조업 지원 사업이 그동안 한계에 부딪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시회와 매칭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실제 생산과 재주문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약했다. 브랜드는 믿고 맡길 제조사를 찾지 못했고, 제조사는 지속 거래 가능한 브랜드를 만나기 어려웠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업체 리스트가 아니라 거래가 작동하는 공급망 플랫폼이다.  

지난해부터 부산섬유패션산업연합회(회장 이성근)가 추진하는 B.Fashion 플랫폼 사업처럼 수요 기반 연결과 실제 생산, 재주문까지 이어지는 실험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플랫폼 자체가 답은아니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상품 전략, 제조사의 운영 능력, 시장 데이터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K-패션은 이미 트렌드 대응력과 상품 감도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빠르게 팔리는 상품보다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시스템이 더 강하다. 

앞으로 5년, 패션기업 경영자가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좋은 공장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브랜드에 맞는 공급망 운영체계를 설계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브랜드는 히트 상품을 갖고도 성장의 벽에 부딪힐 것이다. 반대로 공급망을 경영의 중심에 둔 브랜드는 시장 반응을 매출로, 매출을 재주문으로, 재주문을 지속 성장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이커머스 이후 K-패션이 넘어야 할 다음 관문이다.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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