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리안[트렌드] 허벅지 보여주는 남자들

박진아 디토리안
2025-07-28

[글로벌 트렌드] 박진아 디토리안

허벅지 보여주는 남자들

관념을 무시한 the thigh guy가 트렌드 주도 


올여름, 남자들의 반바지 길이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바야흐로 허벅지는 건강을 위해서 만이 아닌 옷을 잘 입기 위해서도 관리해야 할 신체 부위가 됐다.


미국 남성복 브랜드 보노보스(Bonobos)는 올 6월 초여름부터 안 기장 3~5인치(약 10~15센티미터) 길이의 짧은 남성용 반바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시기 보다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초여름 날씨가 시작된 5월에만 ‘짧은 반바지’를 찾는 구글 쇼핑 검색이 20% 가까이 증가했다는 GQ 매거진 보도도 있었다. 매우 짧은 반바지 트렌드는 수영복 스타일로 이어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 7월 수영복 브랜드 스피도(Speedo)는 타이트한 수영 팬츠 유행을 전망해 ‘제트스트림’ 컬렉션을 소개했다.


독일 패션 이커머스 기업 잘란도(Zalando)의 2025년 여름철 유튜브(YouTube) 광고 캠페인. 사진 출처: Zalando 유튜브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북반부는 매년 최고 기온을 갱신하며 더워지는 여름철을 맞고 있다. 여름철 의류 반바지는 가급적 피부를 많이 노출시킴으로써 체온을 조절하는 보건적 기능도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사회적 봉쇄 기간 동안 야외 활동에 굶주렸던 소비자들이 건강 지키기로 시작한 이후로 널리 대중화된 몸 근육 단련 붐의 연장선상이다.


‘초미니 남성 쇼트 팬츠(micro short pants)’의 거침없는 유행 트렌드는 지난 4~5년 전부터 프라다, 자크뮈스, 웨일브 보너 등 트렌드를 앞서가는 패션 명가들이 춘하복 패션쇼에서 남성용 쇼트 팬츠를 꾸준히 설득해온 결실이다. 올여름 대중 남성 소비자들은 드디어 마이크로 쇼트 팬츠에 그들의 마음과 지갑을 열고 있다.


팬데믹 봉쇄가 한창이던 2021년, 디즈니 드라마 <디스 이즈 어스(This Is Us)> 주인공 배우인 마일로 벤티밀리아(Milo Ventimiglia)가 마스크와 반바지를 입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나오는  모습이 패션지 GQ에 실리자 대중 독자들은 그가 입은 트레이닝 바깥으로 노출된 근육질 허벅지에 감탄을 연발했다.


할리우드 스타 마일로 벤티밀리아(Milo Ventimiglia)가 2021년 4월 5일 웨스트할리우드 피트니스 센터 주차장에서 잡힌 모습. 사진 출처: GQ


남자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외출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았다. 유전적으로 여성보다 근육질인 데다 체모가 많은 남성의 허벅지 노출은 가정 실내, 휴가철 해변가, 수영장, 테니스 경기장처럼 사적 공간과 여가와 레저 같은 예외적 상황에만 허용됐던 터부였다.


21세기 하고도 4반세기가 지난 지금, 제3세대 페미니즘과 MZ 세대 도회 남성들 사이에 무르익은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풍조가 대중문화의 일부가 된 오늘날, 남성의 신체도 여성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성의 시선(gaze)을 주목시키고 ‘소비’될 수 있는 감상의 대상이 됐다.


패션 언론계는 올여름 마이크로 쇼트 팬츠 유행의 촉매자로서 아일랜드 출신 배우 폴 메스칼(Paul Mescal)에서 찾는다.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 <노멀 피플(Normal People, 2020년>에 출연해 유명해진 메스칼은 본래 축구 선수 지망생임을 입증하듯 2020년부터 미니 반바지 아래로 노출된 단련된 허벅지를 과시하며 런던 시내를 활보하기 시작해, 드디어 2024년 구찌 남성복 패션쇼에 참석하며 꿀벅지 남(the thigh guy)의 원조로 떠올랐다.


허벅지가 보이는 짧은 트레이닝 반바지 차림으로 런던 도심에서 산책하는 폴 메스칼의 모습. 사진 출처: MJ Pictures/GQ


패션은 돌고 돈다. 남성용 반바지와 수영복은 대략 20년마다 되돌아온다.

1960년대, 007 시리즈 제임스 본드 역의 전설의 숀 코네리(Sean Connery)는 바하마 섬 바다 위 요트에서 그 유명한 하늘색 수영복을 입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안 솔기 3인치 밖에 안되는 바지 기장 밑 커프를 말아올려 당시 영화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서 1980년대 초, 미국 TV 탐정 수사극 <매그넘 P.I> 주인공 역을 맡았던 톰 셀렉(Tom Selleck)은 태양 많고 푸르른 태평양 바다를 배경 삼아 특유의 활기찬 알로하 하와이언 프린트 셔츠에 짧디 짧은 반바지를 매칭 시킨 시그니처 룩으로 비치 패션 브랜드 파라다이스 파운드(Paradise Found)를 성공적으로 홍보했다.


그로부터 다시 약 20년 후, 007 시리즈 최후의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는 2006년판 제임스 본드 007: 카지노 로열(Casino Royale)에서 다시 한번 초미니 수영복을 입고 바하마 섬 바닷가를 거닐며 50년 전에 숀 코네리가 입었던 하늘색 수용복을 리바이벌 시켰다. 1960년대 초 제임스 본드: 닥터 노(1962년 개봉)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바다에서 나오는 모습으로 본드 걸 우르줄라 안드레스(Ursula Andress)가 여성의 육체를 관객의 감상 대상으로 삼았다면, 다니엘 크레이그는 작디작고 밀착된 수영복 차림의 단련된 남성의 육체 또한 응시(gaze)의 대상일 수 있다는 성에 대한 관념 전환을 알렸다.


올 들어 무더운 날씨가 본격화된 후, 최신 유행의 실시간 격전지인 틱톡(TikTok) 플랫폼에서는, 특히 Z세대 젊은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남성에게 허용되는 최적의 반바지 길이가 담론화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와 교외 남성들 사이에서 가장 애용돼 오던 안 기장 7~9인치(20~25센티미터) 긴 반바지의 시대가 저물고, 안기장 5인치 반바지가 가장 적합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며 다리 근육에 자신이 있다면 1~3인치(3~8센티미터)의 마이크로 쇼츠를 입는 것도 보기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진설명] (좌) 올 2025년 출시된 Speedo Jetstream 컬렉션은 3각 팬츠에 가까운 1970~80년대 유행했던 초미니 수영복의 리바이벌이다. 수영복은 작고 몸에 밀착될수록 물의 저항을 줄여 기록 수립에 유리하다는 물리학을 패션에 응용했다. 사진 출처: Speedo

(우) 이탈리아 내의 브랜드 라 페를라 그리죠페를라 로다토(La Perla Grigioperla Lodato)가 디자인한 21세기판 제임스 본드 하늘색 초미니 수영복. 사진: La Perla/ © 2006 Sony Pictures


다리에 걸리적 대지 않는 짧고 밀착된 초미니 반바지를 입고 등산을 하거나 호숫가 맑은 물 옆에서 피부로 느끼는 그 상쾌함이란! 여름철을 뭐니뭐니 해도 푸르청청한 야외 환경과 활발한 활동의 시절이다. 야외 활동과 노출의 계절 여름을 타고 남성용 미니 반바지의 유행은 이제 막 시작했다고 글로벌 패션업계는 내다본다.


지금도 '반바지 기장은 얼마나 길고 짧아도 용인될 만 한가'라는 옷 입기 규율 논란은 지금도 SNS를 타고 계속된다. 그 와중에서도 올여름 남성복 유행을 타고 번지는 한 가지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랑할 만한 다리를 가졌는가? 그렇다면 맘껏 뽐내라’. 올여름 누구나 입는 짧디 짧은 반바지를 입고 말이다.


#micro-shorts #Short shorts 

#짧은 반바지를 즐겨 입는 셀럽: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폴 메스칼, 마일로 벤티밀리아, Jonathan Bailey, James Harvey-Kelley


박진아 디토리안

박진아 디토리안은 사회학・미술사학 전공 후 1998년부터 해외 유수 미술관 근무 경험과 미술 평론과 디자인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미술 커뮤니티와 대중 독자 사이를 잇는 문예 평론가로 정진 중. 21세기 최신 현대 문화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슈, 형상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통찰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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