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리안[패션] 깡마른 패션 모델이 몰려온다

박진아 디토리안
2025-02-11

깡마른 패션 모델이 몰려온다

날씬함의 기호학(Semiotics of the Thinness)


날씬한 여성들만을 위한 원사이즈 브랜드 '브랜디 멜빌'을 비판하는 HBO의 다큐멘터리 '브랜디 헬빌 & 패스트 패션 컬트', 2024


1월 17일 오스트리아 건설업계 대기업 창업자 후손 사업가가 알프스 휴양소에서 동맥류 출혈로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44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이 주인공은 클레멘스 하젤슈타이너(Klemens Haselsteiner)라는 슈트라바흐(Strabag AG) 건설기업 최고 경영자로서, 고급 휴양 리조트에서 단식 요법을 받던 중이었다. 그는 건설업 외에도 2024년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건강식품 유통 사업을 개업했을 만큼 열정적 미식가였던 만큼 체중 감량 압력을 받고 있었던 듯하다.

하젤슈타이너 사망 소식이 보도된 주말, 나는 최근 신작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년)를 감상했다. 독특한 시네마 미학으로 ‘악명’ 높은 프랑스 여감독 코랄리 파르자(Coralie Fargeat)가 감독한 이 엽기적 예술 영화는 주인공역 데미 무어(Demi Moore)에게 2024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속의 회춘 약물과 장비

한때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할리우드를 호령했던 한물간 50세 여배우가 나이가 너무 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자 방송 계약과 젊음을 되찾기 위해 암거래 무허가 약품(the substance)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겪는 무시무시한 부작용과 제2의 젊은 자아와의 처절한 갈등을 그린 이 판타지 공포영화는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극단적 위험도 마다 않는 현대 여성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흔히 미국 일일 연속극에 등장하는 상류층 주인공들은 돈도 많은데 아름답고 날씬하기까지 하다. 2018~2023년까지 미국 HBO에서 방영된 부자 가문을 둘러싼 풍자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 등장 주인공들은 비즈니스, 성공, 사랑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지만 식사 시간 식탁에서는 접시 위 음식을 깨작대는 소식가들이다. ‘사회경제적 엘리트’들은 먹고 마시지도 않고 부와 권력을 위해 일과 경쟁만 하는 금욕적 군상 같다.


# 날씬함으로 신분 평가하는 ‘사회경제적 엑스레이’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들은 하루하루 살과의 전쟁을 치르며 산다. 날씬함은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미의 기준만도 아니다. 영국의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한 기사는 우리는 신체의 날씬함을 경제적 고소득층과 동일시하는 판별하는 ‘사회경제적 엑스레이’ 시대를 산다고 했다.


피터 브뤼헬(아버지)의 ‚배 터지게 먹을 것 많은 나라(Das Schlaraffenland), 1550, 목판에 유채, 51.5X78.3 cm. Collection: Alte Pinakothek, München


남녀를 불문하고 날씬한 사람이 특권을 누리는 ‘날씬함의 우위’  시대인 지금, 날씬한 신체의 복음자는 성공한 사업가나 유명 연예인들이다. 트위터(현재 X) 창업자 잭 도시와 회춘 전문가 백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은 영국의 마이클 모슬리(Michael Mosley) 박사가 TV 방송을 통해서 복음한 5:2 간헐적 금식(intermittent fasting)을 일상화하고 있고, 유명 슈퍼모델 인플루언서들은 식사 대용 각종 영양제와 과일 야채를 갈아 만은 액상식으로 끼니를 대신한다.

예나 지금이나 음식과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직접 상관돼 있다. 식량 공급이 불안정했던 과거에는 풍만한 체형이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지만, 물질적 풍요의 과잉으로 오히려 식욕 제어가 더 어려워진 오늘날, ‘날씬함’은 자기 절제력, 인내심, 여유의 꾸준한 실천의 산물로서 입증된 ‘건강’하고 ‘날씬’한 몸과 정신 상태를 신호하는 기호가 됐다.


# 패션=날씬한 육체는 최우선 교환가치


패션업계 만큼 날씬한 육체를 기본 필수요건이자 최우선적 교환가치로 대우받는 산업이 있을까?

지난 약 10년 사이, 글로벌 패션업계에서는 사회적 소수자 우대, 다양한 성 정체성 인정, 사회가 규정하는 이상적 몸매가 아니어도 있는 그대로의 신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보디 포지티브(body-positive) 트렌드를 타고 다양한 신체 조건의 패션 모델들이 패션쇼 무대를 활보했다.


베르사체(Versace) 2025 SS 컬렉션(좌, ©Launchmetrics/spotlight), ‘보디 포지티브’ 운동의 종말? 독일 베를린 본사의 패션 브랜드 나밀리아(Namilia)가 2024년 7월 베를린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I ♥️ OZEMPIC 민소매티셔츠.


2024년 가을부터 국제 패션쇼 런웨이에서 다시 ‘사이즈 제로(0)’ (우리나라 사이즈로 환산하면 약 44 사이즈) 체격의 깡마른 모델들이 다시 기용되기 시작하고 있다고 치오마 나디(Chioma Nnadi) 브리티시 ⟪보그(Vogue)⟫ 편집장이 우려하는 인터뷰를 냈다.

지난 몇 해의 보디 포지티브 추세를 뒤로하고 소비자와 패션 기업들은 다시 마른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고체중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와 아랑곳없이 살집있는 패션모델을 기용하는 패션 브랜드는 틈새시장에 머문 체 패션업계 내 날씬한 모델의 이상적 신체 패권은 흔들림 없이 계속될 모양새다.

매 계절마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이상적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라 제안하고 소비자의 뇌리에 투영시켜 수익으로 연결시켜야 하는 패션산업은 근본적으로 단지 피복이 아니라 이상(ideal)과 욕망(desire)을 파는 장사(business of fashion)이기 때문이다.

2025년, 이상적 날씬함을 자랑하는 모델들은 국제 패션쇼 런웨이에서 예년 그 언제보다도 더 활기차게 활보를 계속하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매 철마다 패션산업이 창조한 어패럴과 함께 제안하는 이상적 날씬함을 추구할 것이다.

그 여정에서 오젬픽과 위고비 같은 체중 감량 의약품의 소비와 인기도 덩달아 급증할 것이라고 2024년 칸영화제 최고 영상상과 유럽영화제 최고 촬영상 수상작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경고하는지도 모른다.


박진아 디토리안
박진아 디토리안은 사회학・미술사학 전공 후 1998년부터 해외 유수 미술관 근무 경험과 미술 평론과 디자인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미술 커뮤니티와 대중 독자 사이를 잇는 문예 평론가로 정진 중. 21세기 최신 현대문화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슈, 형상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통찰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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