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리안[패션] 프란체스코 장례식과 패션 정치학

박진아 디토리안
2025-05-02

프란체스코 장례식과 패션 정치학

트럼프 대통령의 감청색 예복 눈길 끌어


프란체스코 교황의 장례식에 참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4월 26일 토요일, 불과 일주일 전인 4월 21일 부활절 월요일에 서거한 프란체스코 교황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전 세계서 모인 130여 세계 지도자들과 고위 인사들은 이 엄숙한 행사를 참관하기 위해 바티칸 로마 교황청 성 베드로 광장에 나란히 모였다.

검은색 일색의 주변 동료 참관객들 사이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감청색 정장과 넥타이 차림을 하고 장례식 맨 앞자리 좌석에 앉아 장례식을 참관해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왜였을까? 트럼프 미 대통령의 네이비 블루(navy Blue) 슈트와 넥타이는 통상 서구 장례식에서 드물게 본, ‘튀는’ 색상이었다. 이를 본 수많은 전 세계 대중들이 그러했듯, 필자도 장례식 예복=검정이라는 고정관념을 스스로 의심하며 당황과 호기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장례식 행사에서 감청색 슈트 복장은 결례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저지르지 말아야 할 국가적 수치다’-일부 해외 언론 칼럼과 SNS 플랫폼 X(옛 트위터)에서는 그의 예복 색상 선택을 두고 갑론을박 논란이 오갔다.


4월 26일 토요일 바티칸 교황청 성 베드로 광장에서 고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을 참관하고 있는 하객들. 사진 출처: 사진 출처: Getty Images


좀 더 둘러보니 진한 청색 정장을 하고 참관한 손님은 트럼프뿐만이 아니었다. 가령, 영국 왕자 웨일스 공 윌리엄(William, Prince of Wales)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도 감청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와 검은색 넥타이 차림을 했지만 어째서인지 복장 결례를 저질렀다는 비난의 화살을 피했다.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도 검은색 스타킹 대신 살색 스타킹을 신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으로 두를 것을 규정하는 바티칸의 엄격한 복장 코드를 살짝 위반했다.


그런가 하면 조 바이든 전 미 대통령은 검정 슈트에 푸른색 타이를 매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또 지난 2월 28일 백악관 방문에서 조차 시종일관 군복 차림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장례식에도 정장 재킷이 실종된 검은색 군복 상하의를 입고 참석했다.

과연 트럼프는 바티칸 교황청의 장례식 복장 규칙을 어겼을까?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감청색 장례 복장에 대한 그 무수한 대중과 언론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바티칸 교황청 측은 참관객 드레스코드에서 스스로 엄숙한 행사에 적절한 복장을 착용하라고 요청했다.


# 감청색은 기독교에선 표중 장례식 예복


한편 여성 참관객에 대한 복장 규율은 상대적으로 더 깐깐하다. 예로부터, 긴 검정 드레스와 검정색 만티야(머리부터 어깨까지 덮은 망사 베일)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며, 살색 다리를 보이거나 진주 목걸이를 제외한 화려한 장신구 착용은 결례다.


둘째,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 왕실에서는 가톨릭 교회 장례 예배 참석 시 감청색 예복을 착용하는 것이 기본 관례다. 과거 미국 대통령들이나 명예 경비원들도 장례식 참석 때 감청색 예복을 착용한다.

정해진 정식 국교는 없지만 미국인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이라고 믿는 미국도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나라다. 미국 대통령들 사이에서 감청색은 오히려 검정이나 쥐색 보다 더 자주 채택되어 온 표준 장례식 예복 색상이었다.


과거 미국 대통령들이나 명예 경비원들도 장례식 참석 때 감청색 예복을 착용해왔다. 지난 2024년 12월 29일 서거한 지미 카터 39대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 광경. 조지 W. 부시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진한 남색 정장을 착용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검정 슈트에 청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트럼프의 감청색 장례식 예복은 결례가 아닌 완벽하게 용인된 복장이다. 감청색 장례식 예복은 검정 컬러와 같이 망자의 슬픔과 침잠된 감정을 상징한다. 단, 장례식에 참석할 때 착용하는 감청색 예복은 무늬나 패턴이 없는 무지(solid) 원단을 선택하면 된다.

실제로, 오늘날 사빌 로(Saville Row)를 비롯한 고급 남성 정장 브랜드 대다수가 감청색 정장은 현대적 검정 정장을 대체하는 정중하고 예의 바른 장례 예복으로 적합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감청색 외에 장례식 예복으로 갈색이나 짙은 회색 슈트를 선택하는 것도 용인된다.

뭐니뭐니 해도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에서 국가적 상주(喪主)로서 전 세계에 가장 분명하고 확고히 패션 정치를 소통한 주인공은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이탈리아 총리였다. 검정 상하의 슈트, 검정 하이힐 구두, 핀으로 단정하게 올린 머리를 한 그녀의 차림에서 슬픔을 머금은 채 엄숙한 국가 장례식 여집도의 역할을 패션으로 완결하며 21세기 장례식 패션의 표준을 제시했다고 평가받았다.


조르자 멜로니. 사진 출처: Getty Images


박진아 디토리안

박진아 디토리안은 사회학・미술사학 전공 후 1998년부터 해외 유수 미술관 근무 경험과 미술 평론과 디자인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미술 커뮤니티와 대중 독자 사이를 잇는 문예 평론가로 정진 중. 21세기 최신 현대문화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슈, 형상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통찰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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