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리안계산된 우연: AI가 재발견한 불확실성의 미학

정연이 디토리안
2025-10-17

[정연이의 메타패션 다이브 Episode 18]

계산된 우연: AI가 재발견한 불확실성의 미학

감각을 계산하는 시대

© 2025 JYY. Image generated using Midjourney. All rights reserved


패션은 지금, 감각보다 계산이 먼저 작동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AI는 수천 개의 이미지를 분석해 다음 시즌의 색과 실루엣을 예측하고, 디자이너는 생성형 모델로 수많은 조합을 실험한다. 소재 연구와 패턴 설계에서 알고리즘은 효율과 정확성을 기준으로 결정을 돕고, 가상 피팅과 개인 맞춤 추천 시스템은 소비자의 선택까지 데이터로 관리한다. 기술은 창작과 소비의 전 과정을 통제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 결과 패션의 표현은 점점 예측 가능한 공식에 가까워진다.


정밀함이 미덕이 된 지금, 어쩌면 패션은 비슷한 감각을 반복하는 자기 복제의 덫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데이터로 계산된 취향과 오류를 최소화한 결과물은 '낯섦'의 긴장을 점점 잃어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잊혀진 우연의 감각을 다시 발견하는 것 역시 AI다.


# AI, 통제를 넘어 우연을 설계하다


AI 생성 원리의 본질은 확률적(probabilistic)이다.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확률 분포의 편차 때문에 결과는 미세하게 달라진다. 따라서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정밀한 계산의 결과이지만, 그 안에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요소가 남는다. 생성형 모델이 수많은 데이터를 확률적으로 조합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변형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이 불안정한 반복은 인간의 손에서 비롯된 즉흥성과 닮아 있으며, 역으로 AI가 만들어낸 불완전성이 새로운 감각과 형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철학적으로 보자면 AI는 우연을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라 우연을 설계 가능한 변수로 바꾼 기술이다. 의도된 체계 안에서 발생한 비의도적 산물, 그것이 바로 AI의 창작적 불확실성이다.


© 2025 JYY. Image generated using Midjourney. All rights reserved.


# Norma Kamali: 환각(Hallucination)의 승화


미국 디자이너 노마 카말리(Norma Kamali)의 실험이 이 현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57년 브랜드 아카이브 데이터를 학습시켜 '노마 카말리 스타일'을 인식하는 전용 AI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AI 시스템은 그녀의 과거 디자인 언어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실루엣을 제안하며,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왜곡하거나 변형하는 'AI의 환각(hallucination)' 결과물이 나왔다. 

그러나 카말리는 이런 결과를 오류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녀는 AI가 만들어낸 ‘변칙적이고 비정상적인(anomalies)’ 결과물을 'Fashion Hallucinations'이라는 이름의 전시로 공개했다. 그녀는 ‘터무니없고 부조리한 AI환각은 최고의 패션 에디토리얼과 닮아 있다’고 말하며, AI의 변칙적 결과가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설명한다.


AI의 환각 현상을 영감으로 해석한 전시 <Fashion Hallucinations> ©Norma Kamali


# DOGMA EHKS: 디지털 크래프트의 여백


서울의 독립 브랜드 DOGMA EHKS는 AI의 불완전함을 창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브랜드는 고유한 시각 언어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으로 AI를 채택하고, 그래픽 디자인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실험을 통해 독자적인 서사를 확장하고 있다. 이는 “AI의 결과를 완성형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그 불완전한 상태에서 손이 개입할 여지를 찾는다”는 디렉터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AI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 태도는 DOGMA EHKS의 시각적 정체성을 형성하며, 그 불완전함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수공예적 감각을 복원하는 새로운 크래프트로 이어진다.


AI 기반 그래픽과 룩북 이미지로 구축하는 브랜드 미학 ©DOGMA EHKS


# 창의의 확장은 통제를 거부하는 것


패션은 이제 AI가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성을 오류가 아닌 새로운 실험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AI가 산출하는 편차와 변형은 통제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이 제공한 탐색 기회로 해석된다. 기술의 정밀함이 역설적으로 상상력의 여백을 남기며, 그 여백이 창의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계산된 우연'은 완벽을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다. 정밀한 시스템 속에서도 불확실성이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창작의 전략이다.

AI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불완전성. 이것이 당신의 다음 컬렉션에서 가장 낯설고 매혹적인 감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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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이 교수는 국내외 패션 브랜드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홍익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디지털 패션 컨설팅 그룹 

아쏘씨에엔엔을 운영하고 있다.  associe.n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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