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리안[디토리안] ‘캣워크’는 어떻게 패션 비즈니스의 엔진이 됐나

박진아 디토리안
2026-02-20

‘캣워크’는 어떻게 패션 비즈니스의 엔진이 됐나

Front Row; 귀족과 바이어, 프레스 거쳐 셀럽까지…디지털 인플루언서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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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da, Ready-to-Wear S/S 2021, Milan ©Prada


불과 15분 남짓.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안에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과 무대 예술이 결합한 강렬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해마다 네 차례, 패션 추종자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소비자에게 새로운 욕망을 제안하며, 그 욕망은 다시 수익으로 환원되어 거대 패션 하우스의 바퀴를 돌린다. 패션 비즈니스의 창조적 원동력은 바로 이 ‘캣워크’라는 예술 무대에서 시작된다.

지난 1월 15일까지 독일 서부 바일암라인에 위치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Vitra Design Museum)에서는 ⟪캣워크: 패션 쇼 예술(Catwalk: The Art of the Fashion Shows)⟫ 전이 개최됐다. 이 전시는 19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패션사에 기록된 아이코닉한 패션쇼들을 조망하며, 고급 여성복 디자이너들이 사교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펼쳤던 사회문화적 의례가 어떻게 어패럴 마케팅 미디어를 거쳐 종합예술 무대로 진화했는지를 고찰한 기획이다.

코코 샤넬은 “하루하루가 패션 쇼이고, 세상은 런웨이다”라고 말했다. 디자이너가 매 순간 복장을 상상하고 창조하는 존재라면, 그 반대편에 선 어패럴 업계 공급자·패션 언론·머천다이저·소비자는 패션쇼라는 공개 발표 행사를 통해 미래 트렌드를 미리 목격한다. ⟪캣워크:  패션 쇼 예술⟫은 바로 이 소비자적 시선에서 패션 디자인을 접하는 대중 관객을 겨냥한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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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샤넬 아텔리에의 거울로 둘러쳐진 계단에서 복장을 소개하는 패션 모델들의 모습. 1930년대 패션 쇼 모습. 
자료: Käthe von Porada, Mode in Paris, Frankfurt a.M., 1932년. ©Vitra Design Museum Archive


19세기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음악·연극·시·시각예술을 통합해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을 제시했다면, 패션쇼는 무대 그래픽·텍스트·직물 등 2차원적 예술 요소와 의류·인간 신체·동작·음악이 어우러진 3차원 조형 예술을 융합한 현대적 종합예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 출발은 파리에서, 상업적 진화는 미국 바이어


패션쇼의 발상지는 프랑스 파리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 사회가 근대로 이행하던 시기, 패션쇼는 파리의 고급 쿠튀리에들이 소수 귀족 여성을 초대해 다음 시즌 유행을 제안하던 특권적 사교 행사로 출발했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전신 거울로 둘러싸인 아틀리에 계단을 활용해 마네킹을 하강시키는 형식으로 건축 공간을 쇼의 배경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마네킹 대신 살아있는 여성 모델을 통해 의상을 선보이는 ‘라이브 복장 전시’의 형식을 정착시킨 인물은 근대 오뜨쿠튀르의 창시자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였다.

이 새로운 시각적 효과에 주목한 미국 바이어들은 백화점, 경마장, 고급 유람선 등 부유층 고객이 모이는 공간을 쇼 장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적 모델’이라는 개념도 탄생했다. 패션쇼는 사교 행사를 넘어 상업적 도구로 빠르게 진화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디자인 산업은 경제 재건의 핵심 산업으로 부상했다. 특히 패션 디자인은 ‘세계 패션(world  fashion)’이라는 서구식 복장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며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이와 함께 패션쇼 무대도 귀부인 살롱을 벗어나 공공 공간으로 확장됐다.

1945년 프랑스 패션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기획된 ⟪패션 극장 무대(Théâtre de la Mode)⟫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40여 명의 파리 쿠튀리에 작품을 소개한 최초의 글로벌 패션 쇼였다. 패션쇼가 문화 외교이자 국가 브랜드 전략의 도구로 기능하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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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브라세리 립 레스토랑에서 열린 클로에의 1960년 춘추복 컬렉션 사진. 사진 출처: 사진가 미상 / Courtesy of Chloé


# 프레타포르테 등장 이후 본격적인 상업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패션쇼는 제 2기에 접어든다. 대중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프레타포르테(prêt-à-porter)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쇼는 더욱 상업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파리의 쿠튀리에들은 도시의 공공 공간을 런웨이로 채택했다. 클로에는 브라세리 립 레스토랑과 카페 드 플로르에서 쇼를 개최하며 패션과 도시 문화의 접점을 확장했다.

1960~70년대는 미국·이탈리아·일본이 패션 종주국 프랑스에 도전장을 내민 시기다. 미국은 팻 클리블랜드 등 흑인 모델을 기용하며 인종 평등·다문화주의·페미니즘 등 사회적 담론을 패션에 담아냈다. 미소니는 밀라노 솔라리 수영장에서 모델들이 물놀이 기구를 활용하는 파격적 수영복 쇼를 선보이며 논쟁을 일으켰다. 겐조는 파티장을 런웨이로 활용하며 ‘일본 혁명’을 이끌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의외의 건축 공간을 배경으로, 옷을 입은 인간의 움직임과 무대 공간의 상호작용을 실험했다는 점이다. 런웨이는 점차 단순한 발표 무대가 아닌, 감각적 경험의 플랫폼으로 변모했다.

1980~90년대에 이르면 슈퍼모델의 시대가 도래한다.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린다 에반젤리스타, 크리스티 털링턴, 클라우디아 쉬퍼, 케이트 모스 등 이른바 ‘빅식스(Big  Six)’는 런웨이와 매거진 표지를 장악하며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현대 여성상을 전 세계에 전파했다. 패션쇼는 더 이상 의상 발표에 머물지 않고, 스타 시스템과 결합한 글로벌 미디어 이벤트로 확장된다.


0cfaea82c7067.jpg약 20년 앞서 로봇 미래를 내다 본 알렉산더 맥퀸의 1999년 춘추 프레타포르테 패션쇼 ⟪제 13번(No. 13)⟫  ©Robert Fairer

# Front Row, 디지털 인플루언서 문화의 예고


패션쇼 프런트 로(front  row)는 바이어와 언론인을 넘어 유명 연예인과 셀러브리티의 자리로 확대됐다. 패션쇼는 ‘연예 비즈니스’의 중심 이벤트로 자리 잡았고, 모델은 캣워크와 촬영장을 무대로 소비자와 소통하는 선망의 직업군이 되었다. 이는 오늘날 디지털 인플루언서 문화의 전조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패션 산업은 LVMH와 케링 같은 거대 럭셔리 그룹 중심 체제로 재편됐다. 패션쇼는 소수 슈퍼모델 중심의 형식에서 벗어나 초대형 고예산 이벤트로 진화했다. 칼 라거펠트가 기획한 파리 그랑 팔레의 샤넬 쇼들은 그 장대한 스케일과 연출력으로 패션사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동시에 전위적 실험도 이어졌다. 알렉산더 맥퀸은 1999년 컬렉션에서 산업용 로봇이 드레스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빅토르 & 롤프는 ‘러시아 인형’ 쇼에서 모델에게 여러 벌의 옷을 겹겹이 입히는 형식을 시도했다. 마르틴 마르지엘라는 병원·주차장 등 비전형적 공간을 활용해 시간성과 개념성을 결합한 실험을 전개했다. 자크뮈의 2020년 쇼는 팬데믹 시대에 생태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자연을 런웨이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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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 2018/19년 추동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쇼 ⟪사이보그(Cyborgs)⟫. Courtesy: Gucci / Photo: Kevin Tachmann


오늘날 패션쇼는 팝 콘서트나 스포츠 이벤트에 버금가는 글로벌 문화 산업의 핵심 플랫폼이다. 정치적 논쟁에 직접적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예술성과 오락성으로 무장해 광범위한 소비층을 포섭하는 것이 패션 비즈니스의 전략적 선택이다.

21세기 1/4분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전위적 미학과 첨단 테크놀로지가 결합한 런웨이는 여전히 새로운 감각을 실험한다. 하이브로우적 개념과 대중적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캣워크는 단순한 발표 무대를 넘어 패션 마케팅의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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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디토리안


박진아 디토리안은 사회학・미술사학 전공 후 1998년부터 해외 유수 미술관 근무 경험과 미술 평론과 디자인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미술 커뮤니티와 대중 독자 사이를 잇는 문예 평론가로 정진 중. 21세기 최신 현대 문화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슈, 형상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통찰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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