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이의 메타패션 다이브 Episode 20]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 AI 시대 창작자의 불안
감각 생성 시대의 도래, 창작자는 무엇으로 자신의 시간을 증명하나

황동만은 오늘도 시나리오를 들고 어딘가로 향한다. 20년이다. 데뷔하지 못한 채로 20년이 흘렀지만, 그는 실패자가 아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작품'이라고 불러주지 않을 뿐이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공명하는 것은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난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 존재의 쓸모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단지 불안하지 않은 상태를 바라는 마음. 이상하게도 이 감정은 지금 AI 시대의 창작자들과도 닮아 있다. 최근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AI 블루(AI Blues)’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집단적 무력감이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포스터 © JTBC
# AI는 이제 감각도 학습한다
AI는 이제 단 몇 초 만에 무드보드를 만들고, 스타일을 제안하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카피를 쓴다. 패션 산업에서도 AI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인프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창작자들을 흔드는 것은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다. 더 큰 충격은, 오랫동안 쌓아온 감각과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다는 감각이다. 패션 디자이너라면 안다. 수백 번의 가봉과 실패, 맞지 않았던 비율과 어긋난 소재들 속에서 어느 순간 ‘눈’이 생긴다. 설명할 수 없지만 틀린 것을 알아보는 감각. 그것을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든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그 시간을 빠르게 압축한다. 과거에는 수년의 훈련과 레퍼런스 축적이 필요했던 결과물이 이제는 몇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생성된다. 물론 아직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결과물의 우열보다, 내가 쌓아온 시간이 정말 의미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기 시작한다.
# 새로운 희소성, 인간다움(Human Touch)

© 2026 JYY. Image generated using ChatGPT. All rights reserved
흥미로운 점은,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더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에 반응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올해 멧 갈라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드레스 중 하나는 Eileen Gu가 입은 Iris van Herpen의 ‘Airo’ 드레스였다.
드레스 안에 내장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그녀의 움직임에 반응해 실제 버블을 방출했고, 몸과 기술이 함께 움직이는 그 장면이 바이럴됐다. 사람들은 단순히 화려한 이미지보다, 신체와 기술이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실제로 존재하는 감각’에 더 강하게 끌렸다.

© 2026 JYY. Image generated using ChatGPT.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이 사례는 동시에 시장이 말하는 ‘인간다움’이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지도 드러낸다. 2,550시간의 노동이 인간적(Human-made)인 것인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만들어낸 버블이 인간적(Human-driven)인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몸에 입고 걸어간 아이린 구가 인간적(Humanity)인 것인가.
시장은 인간다움을 새로운 희소성처럼 소비하기 시작했지만, 창작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차별화가 아니다. 자신의 시간이 의미 있었다는 감각에 더 가깝다.
# 실존의 감각


© 2026 JYY. Image generated using ChatGPT. All rights reserved
어쩌면 지금 창작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의 일부처럼 믿어왔던 감각이 더 이상 고유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감각을 만들기 위해 들였던 시간마저 너무 쉽게 복제되는 것처럼 보일 때, 창작자들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지금 창작자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온 감각과 시간이 정말 의미 있었는가라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AI가 감각까지 생성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시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정연이 디토리안
패션 컨설턴트이자 교육자. 디지털 전환과 생성형 AI가 패션 기획·디자인·브랜딩에 가져 온 변화를 연구하고, 이를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술 변화 속에서 패션 산업의 구조와 가치, 지속가능한 디자인 방식을 사유하며 글을 씁니다. associe.nn@gmail.com
[정연이의 메타패션 다이브 Episode 20]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 AI 시대 창작자의 불안
황동만은 오늘도 시나리오를 들고 어딘가로 향한다. 20년이다. 데뷔하지 못한 채로 20년이 흘렀지만, 그는 실패자가 아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작품'이라고 불러주지 않을 뿐이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공명하는 것은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난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 존재의 쓸모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단지 불안하지 않은 상태를 바라는 마음. 이상하게도 이 감정은 지금 AI 시대의 창작자들과도 닮아 있다. 최근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AI 블루(AI Blues)’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집단적 무력감이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포스터 © JTBC
# AI는 이제 감각도 학습한다
AI는 이제 단 몇 초 만에 무드보드를 만들고, 스타일을 제안하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카피를 쓴다. 패션 산업에서도 AI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인프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창작자들을 흔드는 것은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다. 더 큰 충격은, 오랫동안 쌓아온 감각과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다는 감각이다. 패션 디자이너라면 안다. 수백 번의 가봉과 실패, 맞지 않았던 비율과 어긋난 소재들 속에서 어느 순간 ‘눈’이 생긴다. 설명할 수 없지만 틀린 것을 알아보는 감각. 그것을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든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그 시간을 빠르게 압축한다. 과거에는 수년의 훈련과 레퍼런스 축적이 필요했던 결과물이 이제는 몇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생성된다. 물론 아직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결과물의 우열보다, 내가 쌓아온 시간이 정말 의미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기 시작한다.
# 새로운 희소성, 인간다움(Human Touch)
© 2026 JYY. Image generated using ChatGPT. All rights reserved
흥미로운 점은,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더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에 반응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올해 멧 갈라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드레스 중 하나는 Eileen Gu가 입은 Iris van Herpen의 ‘Airo’ 드레스였다.© 2026 JYY. Image generated using ChatGPT.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이 사례는 동시에 시장이 말하는 ‘인간다움’이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지도 드러낸다. 2,550시간의 노동이 인간적(Human-made)인 것인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만들어낸 버블이 인간적(Human-driven)인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몸에 입고 걸어간 아이린 구가 인간적(Humanity)인 것인가.
시장은 인간다움을 새로운 희소성처럼 소비하기 시작했지만, 창작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차별화가 아니다. 자신의 시간이 의미 있었다는 감각에 더 가깝다.
# 실존의 감각
© 2026 JYY. Image generated using ChatGPT. All rights reserved
어쩌면 지금 창작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의 일부처럼 믿어왔던 감각이 더 이상 고유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감각을 만들기 위해 들였던 시간마저 너무 쉽게 복제되는 것처럼 보일 때, 창작자들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지금 창작자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온 감각과 시간이 정말 의미 있었는가라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AI가 감각까지 생성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시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정연이 디토리안
패션 컨설턴트이자 교육자. 디지털 전환과 생성형 AI가 패션 기획·디자인·브랜딩에 가져 온 변화를 연구하고, 이를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술 변화 속에서 패션 산업의 구조와 가치, 지속가능한 디자인 방식을 사유하며 글을 씁니다. associe.n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