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의 AI 활용법은 이제 ROT로 갈린다
AI 활용, ‘많이’가 아닌 ‘제대로’가 관건
日 ‘유니폼넥스트’에서 배우는 AI 활용 전략

[이미지 출처=OpenAI DALL·E를 활용하여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
AI 도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 활용의 미덕은 많이, 자주, 빠르게 쓰는 거였다. 챗GPT를 켜서 카피를 수십 개, 수백 개씩 뽑아내고, 생성형 AI 툴로 브랜드 무드에 맞는 가상 모델 착장 이미지를 반복해서 만들며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흐름이 주를 이루었다. 기업 대표들은 앞다투어 직원들에게 AI 사용을 독려했고, 직원들은 AI를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을 일종의 ‘일잘러’의 징표처럼 드러냈다.
이러한 흐름을 설명하는 말 중 하나가 토큰맥싱(tokenmaxxing)이다. 토큰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텍스트를 입력받고, 처리하고, 출력할 때 사용하는 기본 단위다. 쉽게 말하면 AI가 글을 읽고 쓰기 위해 쪼개는 단어 조각에 가깝다. 프롬프트가 길어질수록, AI가 긴 답변을 생성할수록, 에이전트가 여러 번 추론과 실행을 반복할수록 더 많은 토큰이 사용된다. 그리고 이 토큰은 곧 비용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AI를 잘 쓰는 기준이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썼는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AI 사용량이나 토큰 사용량을 순위표처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자 AI 활용은 성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적극성과 생산성을 증명하는 퍼포먼스가 되기 시작했다. 대표는 AI를 많이 쓰는 직원을 좋게 보고, 직원은 AI를 많이 쓰는 자신을 앞선 사람처럼 느꼈다. 결국 경쟁의 초점은 결과물이 아니라 사용량으로 옮겨갔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다시 달라지고 있다. 무차별적인 AI 활용의 시기는 지나가고, 이제는 투입한 자원 대비 실질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단순히 토큰을 많이 태우는 것이 아니라, 그 토큰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매출, 효율, 시간 절감, 고객 경험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이 흐름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ROT(Return on Token), 즉 ‘토큰 대비 수익률’이라는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AI 사용량 자체가 아니라, AI 사용이 만들어낸 결과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무제한으로 토큰을 태우며 신기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같은 결과를 더 적은 토큰으로 만들 수 있는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산출물을 만들 수 있는가. 반복 업무를 줄이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고객의 구매나 만족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 이것이 AI 활용의 새로운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 전략 없는 AI는 비효율을 더 빠르게 만든다

[사진=유티폼넥스트 홈페이지]
그동안 패션 브랜드들은 마케팅과 디자인 영역에서 AI를 아낌없이 사용해 왔다. 생성형 AI로 만든 가상의 컬렉션 비주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매주 수십 편의 블로그 콘텐츠와 이메일 뉴스레터를 AI의 힘을 빌려 발송했다. AI를 많이, 자주, 빠르게 쓰는 것이 곧 앞선 브랜드의 증거처럼 여겨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많은 토큰을 소비하며 만들어낸 인공적인 이미지와 글들이 과연 실제 소비자의 구매 전환으로 이어졌는가. 오히려 가상 모델의 이질적인 느낌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영혼 없는 AI 카피의 홍수 속에서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 희석되는 부작용을 겪지는 않았는가.
이 지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일본의 유니폼넥스트다. 요코이 야스타카 대표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지방의 작은 유니폼 판매 회사를 물려받아 B2B 유니폼 전문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출발점은 연매출 4,000만~6,000만 엔 수준의 작은 회사였다. 그는 1997년 입사 후 곧장 인터넷 쇼핑몰이나 자동화 시스템부터 붙이지 않았다. 먼저 10년 동안 방문영업에 매진하며 고객을 직접 만났고, 그 과정에서 매출을 2억 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고객을 몸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어떤 회사가 유니폼을 필요로 하는지, 고객이 구매 과정에서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어떤 설명을 들을 때 계약으로 이어지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했다. 다시 말해 그는 디지털 전략 이전에 아날로그 전략을 먼저 세웠다.
요코이 대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판매를 본격화했다. 먼저 고객을 이해하고, 반복적으로 팔리는 방식을 확인한 뒤, 그 성공 공식을 인터넷 쇼핑몰과 디지털 시스템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결과 유니폼넥스트는 2017년 도쿄증권거래소 마더스에 상장했고, 최근에는 연매출 약 100억 엔에 가까운 기업으로 성장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유니폼넥스트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AI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온라인 판매 과정에서 축적한 고객 문의, 상품 정보, 주문 데이터, 업무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AI와 디지털 도구를 접목하고 있다. AI를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고객 이해와 판매 구조 위에 AI를 얹어 효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가 AI 시대에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AI를 잘 쓰는 회사는 AI를 먼저 많이 쓰는 회사가 아니다. 고객을 이해하고, 팔리는 구조를 만든 뒤, 그 구조를 AI로 더 빠르고 정교하게 확장하는 회사다. 많은 회사가 AI, DX, CRM, 자동화, SNS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기술이 아니다. 누구를 고객으로 할 것인가. 고객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우리 회사가 제공할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명확하지 않으면 AI 전환은 비효율을 더 빠르게 만드는 일에 불과하다.
결국 패션 브랜드가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프롬프트가 아니라 더 선명한 전략이다. 고객을 이해하고, 반복적으로 팔리는 구조를 만들고, 그 공식을 문서화한 뒤 AI를 붙여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AI는 성장 엔진이 아니라 비용 엔진이 된다. 하지만 순서가 맞으면 AI는 작은 브랜드의 성공 공식을 더 빠르고 넓게 확장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AI 활용의 패러다임은 이제 효율성 중심의 양적 팽창에서 효과성 중심의 질적 최적화로 넘어가고 있다. AI를 많이 쓰는 브랜드가 아니라,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전략 없는 AI는 비효율을 더 빠르게 만들지만, 전략 있는 AI는 성장을 더 빠르게 만든다.
유니폼 넥스트의 사업 분야 [사진 출처=유니폼넥스트]
# 패션 브랜드가 ROT를 극대화하는 세 가지 방법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패션 브랜드는 어떻게 해야 무의미한 토큰 낭비를 줄이고 ROT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첫째, 단순 생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맥락에 집중해야 한다. 무작위로 새로운 가상 비주얼을 창조하는 것보다, 기존의 고객 데이터와 고객 구매 여정을 정교하게 매칭하는 데 AI를 활용해야 한다. 소비자가 장바구니에 담아둔 옷들과 어울리는 코디 조합을 정확히 짚어주거나, 특정 체형의 리뷰 데이터를 요약해 최적의 사이즈를 제안하는 등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에 토큰을 집중 투입해야 효율이 난다.
둘째, 데이터의 고도화가 우선이다. AI에게 “우리 브랜드 스타일에 맞는 모던한 재킷 이미지를 그려줘”라고 모호하게 요구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며 토큰을 낭비하게 된다. 반면 브랜드 내부의 스타일 가이드북, 원단 사양, 핏의 기준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AI에게 정확한 기준을 제공하면, 단 몇 번의 요청만으로도 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준비된 데이터가 많을수록 소모되는 토큰은 줄어들고 결과물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셋째, 브랜드 저널리즘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AI가 대신 써주는 뻔한 상품 설명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 브랜드가 진짜 토큰을 써야 할 곳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깊이를 더하는 영역이다.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정교하게 텍스트로 녹여내거나, 옷 한 벌에 담긴 소재의 히스토리와 제작 과정을 검증하고 편집하는 과정에 AI를 서포터로 활용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텍스트가 완성된다.
결국 ROT를 높이는 출발점은 AI가 아니라 고객이다. 먼저 고객을 이해하고, 직접 팔아보고, 반복적으로 성공하는 방식을 찾고, 그 공식을 문서화해야 한다. 그 다음에 AI와 디지털 도구를 붙여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AI는 성장 엔진이 아니라 비용 엔진이 된다. 하지만 순서가 맞으면 AI는 작은 브랜드가 가진 전략을 훨씬 더 넓은 시장으로 전달하는 강력한 확성기가 된다.
# 기술의 과시에서 비즈니스의 본질로
패션산업은 언제나 화려한 트렌드와 직관적인 감각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렇기에 AI라는 거대한 기술이 등장했을 때도 이를 시각적인 퍼포먼스로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신기하고 멋진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혁신적인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기술이 일상화된 지금, 과시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패션 비즈니스는 다시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기술에 지불하는 비용이 브랜드의 자산으로 쌓이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허공에 토큰을 날리고 있는지 점검할 때다.
ROT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결국 경영의 지혜다. 적은 자원으로 고객에게 더 강렬한 브랜드 경험을 만들고, AI를 보여주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수익을 만드는 시스템으로 다루는 것. 앞으로의 브랜드 경쟁력은 바로 이 차이에서 갈릴 것이다.

김용석 디토리안
김용석 브랜드 컨설턴트는 삼성물산에서 마케팅을 시작해 지금은 스몰 브랜드의 성장을 돕는 '톡설팅'의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작은 기업을 위한 브랜딩 법칙 ZERO>, <AI가 선택하는 브랜드의 비밀: AEO>가 있다. brunch.co.kr/@kap
패션 브랜드의 AI 활용법은 이제 ROT로 갈린다
[이미지 출처=OpenAI DALL·E를 활용하여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
AI 도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 활용의 미덕은 많이, 자주, 빠르게 쓰는 거였다. 챗GPT를 켜서 카피를 수십 개, 수백 개씩 뽑아내고, 생성형 AI 툴로 브랜드 무드에 맞는 가상 모델 착장 이미지를 반복해서 만들며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흐름이 주를 이루었다. 기업 대표들은 앞다투어 직원들에게 AI 사용을 독려했고, 직원들은 AI를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을 일종의 ‘일잘러’의 징표처럼 드러냈다.
이러한 흐름을 설명하는 말 중 하나가 토큰맥싱(tokenmaxxing)이다. 토큰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텍스트를 입력받고, 처리하고, 출력할 때 사용하는 기본 단위다. 쉽게 말하면 AI가 글을 읽고 쓰기 위해 쪼개는 단어 조각에 가깝다. 프롬프트가 길어질수록, AI가 긴 답변을 생성할수록, 에이전트가 여러 번 추론과 실행을 반복할수록 더 많은 토큰이 사용된다. 그리고 이 토큰은 곧 비용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AI를 잘 쓰는 기준이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썼는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AI 사용량이나 토큰 사용량을 순위표처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자 AI 활용은 성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적극성과 생산성을 증명하는 퍼포먼스가 되기 시작했다. 대표는 AI를 많이 쓰는 직원을 좋게 보고, 직원은 AI를 많이 쓰는 자신을 앞선 사람처럼 느꼈다. 결국 경쟁의 초점은 결과물이 아니라 사용량으로 옮겨갔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다시 달라지고 있다. 무차별적인 AI 활용의 시기는 지나가고, 이제는 투입한 자원 대비 실질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단순히 토큰을 많이 태우는 것이 아니라, 그 토큰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매출, 효율, 시간 절감, 고객 경험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이 흐름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ROT(Return on Token), 즉 ‘토큰 대비 수익률’이라는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AI 사용량 자체가 아니라, AI 사용이 만들어낸 결과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무제한으로 토큰을 태우며 신기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같은 결과를 더 적은 토큰으로 만들 수 있는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산출물을 만들 수 있는가. 반복 업무를 줄이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고객의 구매나 만족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 이것이 AI 활용의 새로운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 전략 없는 AI는 비효율을 더 빠르게 만든다
[사진=유티폼넥스트 홈페이지]
그동안 패션 브랜드들은 마케팅과 디자인 영역에서 AI를 아낌없이 사용해 왔다. 생성형 AI로 만든 가상의 컬렉션 비주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매주 수십 편의 블로그 콘텐츠와 이메일 뉴스레터를 AI의 힘을 빌려 발송했다. AI를 많이, 자주, 빠르게 쓰는 것이 곧 앞선 브랜드의 증거처럼 여겨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많은 토큰을 소비하며 만들어낸 인공적인 이미지와 글들이 과연 실제 소비자의 구매 전환으로 이어졌는가. 오히려 가상 모델의 이질적인 느낌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영혼 없는 AI 카피의 홍수 속에서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 희석되는 부작용을 겪지는 않았는가.
이 지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일본의 유니폼넥스트다. 요코이 야스타카 대표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지방의 작은 유니폼 판매 회사를 물려받아 B2B 유니폼 전문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출발점은 연매출 4,000만~6,000만 엔 수준의 작은 회사였다. 그는 1997년 입사 후 곧장 인터넷 쇼핑몰이나 자동화 시스템부터 붙이지 않았다. 먼저 10년 동안 방문영업에 매진하며 고객을 직접 만났고, 그 과정에서 매출을 2억 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고객을 몸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어떤 회사가 유니폼을 필요로 하는지, 고객이 구매 과정에서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어떤 설명을 들을 때 계약으로 이어지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했다. 다시 말해 그는 디지털 전략 이전에 아날로그 전략을 먼저 세웠다.
요코이 대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판매를 본격화했다. 먼저 고객을 이해하고, 반복적으로 팔리는 방식을 확인한 뒤, 그 성공 공식을 인터넷 쇼핑몰과 디지털 시스템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결과 유니폼넥스트는 2017년 도쿄증권거래소 마더스에 상장했고, 최근에는 연매출 약 100억 엔에 가까운 기업으로 성장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유니폼넥스트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AI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온라인 판매 과정에서 축적한 고객 문의, 상품 정보, 주문 데이터, 업무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AI와 디지털 도구를 접목하고 있다. AI를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고객 이해와 판매 구조 위에 AI를 얹어 효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가 AI 시대에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AI를 잘 쓰는 회사는 AI를 먼저 많이 쓰는 회사가 아니다. 고객을 이해하고, 팔리는 구조를 만든 뒤, 그 구조를 AI로 더 빠르고 정교하게 확장하는 회사다. 많은 회사가 AI, DX, CRM, 자동화, SNS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기술이 아니다. 누구를 고객으로 할 것인가. 고객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우리 회사가 제공할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이 명확하지 않으면 AI 전환은 비효율을 더 빠르게 만드는 일에 불과하다.
결국 패션 브랜드가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프롬프트가 아니라 더 선명한 전략이다. 고객을 이해하고, 반복적으로 팔리는 구조를 만들고, 그 공식을 문서화한 뒤 AI를 붙여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AI는 성장 엔진이 아니라 비용 엔진이 된다. 하지만 순서가 맞으면 AI는 작은 브랜드의 성공 공식을 더 빠르고 넓게 확장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AI 활용의 패러다임은 이제 효율성 중심의 양적 팽창에서 효과성 중심의 질적 최적화로 넘어가고 있다. AI를 많이 쓰는 브랜드가 아니라,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전략 없는 AI는 비효율을 더 빠르게 만들지만, 전략 있는 AI는 성장을 더 빠르게 만든다.
# 패션 브랜드가 ROT를 극대화하는 세 가지 방법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패션 브랜드는 어떻게 해야 무의미한 토큰 낭비를 줄이고 ROT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첫째, 단순 생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맥락에 집중해야 한다. 무작위로 새로운 가상 비주얼을 창조하는 것보다, 기존의 고객 데이터와 고객 구매 여정을 정교하게 매칭하는 데 AI를 활용해야 한다. 소비자가 장바구니에 담아둔 옷들과 어울리는 코디 조합을 정확히 짚어주거나, 특정 체형의 리뷰 데이터를 요약해 최적의 사이즈를 제안하는 등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에 토큰을 집중 투입해야 효율이 난다.
둘째, 데이터의 고도화가 우선이다. AI에게 “우리 브랜드 스타일에 맞는 모던한 재킷 이미지를 그려줘”라고 모호하게 요구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며 토큰을 낭비하게 된다. 반면 브랜드 내부의 스타일 가이드북, 원단 사양, 핏의 기준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AI에게 정확한 기준을 제공하면, 단 몇 번의 요청만으로도 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준비된 데이터가 많을수록 소모되는 토큰은 줄어들고 결과물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셋째, 브랜드 저널리즘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AI가 대신 써주는 뻔한 상품 설명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 브랜드가 진짜 토큰을 써야 할 곳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깊이를 더하는 영역이다.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정교하게 텍스트로 녹여내거나, 옷 한 벌에 담긴 소재의 히스토리와 제작 과정을 검증하고 편집하는 과정에 AI를 서포터로 활용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텍스트가 완성된다.
결국 ROT를 높이는 출발점은 AI가 아니라 고객이다. 먼저 고객을 이해하고, 직접 팔아보고, 반복적으로 성공하는 방식을 찾고, 그 공식을 문서화해야 한다. 그 다음에 AI와 디지털 도구를 붙여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AI는 성장 엔진이 아니라 비용 엔진이 된다. 하지만 순서가 맞으면 AI는 작은 브랜드가 가진 전략을 훨씬 더 넓은 시장으로 전달하는 강력한 확성기가 된다.
# 기술의 과시에서 비즈니스의 본질로
패션산업은 언제나 화려한 트렌드와 직관적인 감각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렇기에 AI라는 거대한 기술이 등장했을 때도 이를 시각적인 퍼포먼스로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신기하고 멋진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혁신적인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기술이 일상화된 지금, 과시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패션 비즈니스는 다시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기술에 지불하는 비용이 브랜드의 자산으로 쌓이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허공에 토큰을 날리고 있는지 점검할 때다.
ROT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결국 경영의 지혜다. 적은 자원으로 고객에게 더 강렬한 브랜드 경험을 만들고, AI를 보여주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수익을 만드는 시스템으로 다루는 것. 앞으로의 브랜드 경쟁력은 바로 이 차이에서 갈릴 것이다.
김용석 디토리안
김용석 브랜드 컨설턴트는 삼성물산에서 마케팅을 시작해 지금은 스몰 브랜드의 성장을 돕는 '톡설팅'의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작은 기업을 위한 브랜딩 법칙 ZERO>, <AI가 선택하는 브랜드의 비밀: AEO>가 있다. brunch.co.kr/@k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