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전시의 흥행 비결은 기획에 있었습니다
2달 만에 관람객 20만 명을 돌파한 비결은
대표작의 부재를 이겨낸 경험 설계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전시 개막 2달 만에 관람객 2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2019년 같은 미술관에서 열려 역시나 큰 인기를 모은 '데이비드 호크니' 전보다도 빠른 추세라고 하는데요.
신기한 건, 엄청난 관람객 수에 비해, 이번 전시는 평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터파크 티켓 평점이 8.3점인데,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8.9점,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 라울 뒤피'는 무려 9.3점에 달했거든요.
이렇게 평가가 갈린 이유는 에드워드 호퍼의 첫 개인전이었지만, 정작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많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팬들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컸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호퍼 전시가 역대급 흥행 기록을 써나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기획의 힘이었다고 봅니다. 작품도 인상 깊었지만, 공간 경험 설계 측면에서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전시였거든요.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서울시립미술관
#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팔찌의 힘
솔직히 말해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런 대형 전시를 하기엔 부적합한 공간입니다. 일단 개별 전시관 면적이 대형 전시를 하기엔 협소한 편이라서요. 여러 층을 오가며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무려 1층, 2층, 3층 공간을 모두 활용하고 있었고요. 2층 → 3층 → 1층으로 오가는 동선이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이러한 공간적인 문제로 인해 주어진 과제가 바로 관람객 통제였는데요. 층별 전시관 입장 때마다, 티켓을 확인해야 했고, 종이 티켓과 모바일 티켓이 혼용되는 상황에서 이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고민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놀이공원을 상상하게 한 전시 관람객 팔찌 ⓒ트렌드라이트
그래서 이들이 찾은 해결책이 바로 종이 팔찌였는데요. 입장 때마다 관람객의 손목에 종이 팔찌를 채우고, 이를 통해 입장을 통제했던 겁니다. 덕분에 원활한 동선 안내가 가능했고요.
그런데 이러한 종이 팔찌를 채우는 경험 자체는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 파급 효과를 불러옵니다. 우선 우리가 이러한 팔찌를 차면 흔히 떠올리는 곳이 놀이 공원일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자연스레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를 관람객의 뇌리에 인식시킬 수 있었고요. 더욱이 이를 가지고 많은 이들이 인증 사진을 촬영하게 되면서 부가적인 홍보 효과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 영리하게 채워 놓은 바이럴 포인트
대표작의 부재 만큼이나, 이번 전시에서 아쉬웠던 포인트는 사진 촬영이 대체로 금지된 점입니다. 1층 전시관에서만 촬영이 가능했는데, 대부분의 주요 작품들은 2층과 3층에 위치해 있었거든요. 1층은 주로 작품보다 관련 자료들이 아카이빙 된 공간이었습니다.
햇빛 속의 여인 (1961) ⓒ서울시립미술관
다만 그 중에서도, '햇빛 속의 여인'이라는 작품이 그나마 1층에 위치해 있어, 많은 이들이 이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남기곤 했는데요. 7월 4일 기준으로 1.9만 개에 달하는, 인스타그램의 #에드워드호퍼 게시물들 대부분에서 이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된 듯한 포토존 기획으로 바이럴 효과를 높인 전시 ⓒ트렌드라이트
그리고 더 흥미로웠던 점은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을 전시장 한편에 마련해 두었다는 건데요. 이러한 바이럴 포인트들을 곳곳에 숨겨 두면서, 자연스레 전시는 홍보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기록적인 흥행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잘 짜여 있던 동선, 그보다 빛났던 친절함
하지만 아무리 디테일한 포인트들이 빛났다고 하더라도, 전시 자체가 주는 경험이 훌륭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진 못했을 겁니다. 전시의 모티브 자체는 대단히 창의적이진 않습니다. 호퍼의 65년에 이르는 화업을, 그의 일생을 따라 돌아보듯이 동선이 설계되어 있었거든요. 학생 시절의 호퍼에서 출발하여, 파리, 뉴욕 등을 거치며 점차 거장으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팬이 되게 됩니다.
특히 유화보다는 판화가 많고, 대표작들이 부재하다는 걸, 개인적으로는 창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매력적인 기획으로 일정 부분 극복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실제로 호평을 남긴 관람객들의 대다수는 이러한 전시 스토리에 매력을 느꼈다거나, 이를 통해 새로운 호퍼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리 전시 기획을 충실히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관람객들에게 그 의도가 전달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겠죠. 이번 전시의 기획에선, 무엇보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달'에 초점을 잘 맞췄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모든 부분이 완벽했던 건 아닙니다. 대여처 요청으로 전시장 조도가 낮아 시력이 좋지 않은 경우 작품 설명을 온전히 감상하기도 어렵기도 했거든요.
ⓒ서울시립미술관
다만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인지, 타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아주 양질의 브로셔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무려 40페이지에 달하는 작품 리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들로 빼곡히 차 있었습니다. 유지태 배우의 목소리로 만든 유료 오디오 가이드의 퀄리티도 훌륭했지만, 혹시나 구매가 망설여지는 분은 브로셔 만으로도 충분히 전시의 흐름을 따라올 수 있겠더라고요.
#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경험 설계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얼마나 유명한 작품이 많이 있느냐입니다. 모나리자 같은 대표작의 존재는 해당 미술관 전체의 명성을 좌우하곤 합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보다 더 중요해지는 건,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를 어떻게 보여주고, 전체 전시를 통해 어떤 경험을 관람객들에게 주느냐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에드워드 호퍼 전시도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평점만 보면 이번 전시는 실패한 기획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혹평을 하며 낮은 점수를 준 이들은 대부분 주요 작품이 없다는 부실함을 지적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평을 남긴 이들은, 에드워드 호퍼라는 작가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는 이들도 많았지만, 전시 구성, 오디오 가이드, 동선 설계 등 다양한 기획 요소들을 그 이유로 언급하더라고요. 결국 훌륭한 기획과 공간 및 경험 설계가 본질적인 한계 또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이는 흥행으로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은 전시뿐 아니라 매장을 운영하는 커머스 분야에서도 배워야 할 점이라 보고요. 이번 전시는 8월 20일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한 번쯤 시간 내어 방문해 보셔서, 이러한 면모를 직접 체감해 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192? 30>ⓒ서울시립미술관
기묘한 작가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트렌드라이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로,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brunch.co.kr/@trendlite
에드워드 호퍼 전시의 흥행 비결은 기획에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전시 개막 2달 만에 관람객 2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2019년 같은 미술관에서 열려 역시나 큰 인기를 모은 '데이비드 호크니' 전보다도 빠른 추세라고 하는데요.
신기한 건, 엄청난 관람객 수에 비해, 이번 전시는 평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터파크 티켓 평점이 8.3점인데,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8.9점,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 라울 뒤피'는 무려 9.3점에 달했거든요.
이렇게 평가가 갈린 이유는 에드워드 호퍼의 첫 개인전이었지만, 정작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많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팬들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컸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호퍼 전시가 역대급 흥행 기록을 써나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기획의 힘이었다고 봅니다. 작품도 인상 깊었지만, 공간 경험 설계 측면에서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전시였거든요.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서울시립미술관
#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팔찌의 힘
솔직히 말해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런 대형 전시를 하기엔 부적합한 공간입니다. 일단 개별 전시관 면적이 대형 전시를 하기엔 협소한 편이라서요. 여러 층을 오가며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무려 1층, 2층, 3층 공간을 모두 활용하고 있었고요. 2층 → 3층 → 1층으로 오가는 동선이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이러한 공간적인 문제로 인해 주어진 과제가 바로 관람객 통제였는데요. 층별 전시관 입장 때마다, 티켓을 확인해야 했고, 종이 티켓과 모바일 티켓이 혼용되는 상황에서 이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고민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놀이공원을 상상하게 한 전시 관람객 팔찌 ⓒ트렌드라이트
그래서 이들이 찾은 해결책이 바로 종이 팔찌였는데요. 입장 때마다 관람객의 손목에 종이 팔찌를 채우고, 이를 통해 입장을 통제했던 겁니다. 덕분에 원활한 동선 안내가 가능했고요.
그런데 이러한 종이 팔찌를 채우는 경험 자체는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 파급 효과를 불러옵니다. 우선 우리가 이러한 팔찌를 차면 흔히 떠올리는 곳이 놀이 공원일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자연스레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를 관람객의 뇌리에 인식시킬 수 있었고요. 더욱이 이를 가지고 많은 이들이 인증 사진을 촬영하게 되면서 부가적인 홍보 효과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 영리하게 채워 놓은 바이럴 포인트
대표작의 부재 만큼이나, 이번 전시에서 아쉬웠던 포인트는 사진 촬영이 대체로 금지된 점입니다. 1층 전시관에서만 촬영이 가능했는데, 대부분의 주요 작품들은 2층과 3층에 위치해 있었거든요. 1층은 주로 작품보다 관련 자료들이 아카이빙 된 공간이었습니다.
햇빛 속의 여인 (1961) ⓒ서울시립미술관
다만 그 중에서도, '햇빛 속의 여인'이라는 작품이 그나마 1층에 위치해 있어, 많은 이들이 이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남기곤 했는데요. 7월 4일 기준으로 1.9만 개에 달하는, 인스타그램의 #에드워드호퍼 게시물들 대부분에서 이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된 듯한 포토존 기획으로 바이럴 효과를 높인 전시 ⓒ트렌드라이트
그리고 더 흥미로웠던 점은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을 전시장 한편에 마련해 두었다는 건데요. 이러한 바이럴 포인트들을 곳곳에 숨겨 두면서, 자연스레 전시는 홍보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기록적인 흥행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잘 짜여 있던 동선, 그보다 빛났던 친절함
하지만 아무리 디테일한 포인트들이 빛났다고 하더라도, 전시 자체가 주는 경험이 훌륭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진 못했을 겁니다. 전시의 모티브 자체는 대단히 창의적이진 않습니다. 호퍼의 65년에 이르는 화업을, 그의 일생을 따라 돌아보듯이 동선이 설계되어 있었거든요. 학생 시절의 호퍼에서 출발하여, 파리, 뉴욕 등을 거치며 점차 거장으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팬이 되게 됩니다.
특히 유화보다는 판화가 많고, 대표작들이 부재하다는 걸, 개인적으로는 창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매력적인 기획으로 일정 부분 극복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실제로 호평을 남긴 관람객들의 대다수는 이러한 전시 스토리에 매력을 느꼈다거나, 이를 통해 새로운 호퍼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리 전시 기획을 충실히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관람객들에게 그 의도가 전달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겠죠. 이번 전시의 기획에선, 무엇보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달'에 초점을 잘 맞췄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모든 부분이 완벽했던 건 아닙니다. 대여처 요청으로 전시장 조도가 낮아 시력이 좋지 않은 경우 작품 설명을 온전히 감상하기도 어렵기도 했거든요.
ⓒ서울시립미술관
다만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인지, 타 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아주 양질의 브로셔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무려 40페이지에 달하는 작품 리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들로 빼곡히 차 있었습니다. 유지태 배우의 목소리로 만든 유료 오디오 가이드의 퀄리티도 훌륭했지만, 혹시나 구매가 망설여지는 분은 브로셔 만으로도 충분히 전시의 흐름을 따라올 수 있겠더라고요.
#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경험 설계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얼마나 유명한 작품이 많이 있느냐입니다. 모나리자 같은 대표작의 존재는 해당 미술관 전체의 명성을 좌우하곤 합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보다 더 중요해지는 건,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를 어떻게 보여주고, 전체 전시를 통해 어떤 경험을 관람객들에게 주느냐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에드워드 호퍼 전시도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평점만 보면 이번 전시는 실패한 기획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혹평을 하며 낮은 점수를 준 이들은 대부분 주요 작품이 없다는 부실함을 지적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평을 남긴 이들은, 에드워드 호퍼라는 작가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는 이들도 많았지만, 전시 구성, 오디오 가이드, 동선 설계 등 다양한 기획 요소들을 그 이유로 언급하더라고요. 결국 훌륭한 기획과 공간 및 경험 설계가 본질적인 한계 또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이는 흥행으로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은 전시뿐 아니라 매장을 운영하는 커머스 분야에서도 배워야 할 점이라 보고요. 이번 전시는 8월 20일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한 번쯤 시간 내어 방문해 보셔서, 이러한 면모를 직접 체감해 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192? 30>ⓒ서울시립미술관
기묘한 작가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트렌드라이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로,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brunch.co.kr/@trendl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