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리안[디토리안] 인간은 왜 여전히 몸으로 느끼려 하는가: 신체성의 귀환

정연이 디토리안
2026-07-09

[정연이의 메타패션 다이브 Episode 21] 
인간은 왜 여전히 몸으로 느끼려 하는가: 신체성의 귀환

설명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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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AI 시대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감각과 시간이 너무 쉽게 복제되는 것처럼 보일 때, 창작자들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창작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소재를 손에 올리면 안다. 무게, 낙차,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저항감. 말로 설명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것이 좋다, 혹은 이것은 아니다. 디지털 스크린 앞에 앉은 디자이너도 다르지 않다. 화면을 보는 순간 비율이 이상하다는 감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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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JYY. Image generated using ChatGPT. All rights reserved

 

# 몸이 지각의 주체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인간의 몸이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라고 보았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라고 말했다면,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흔히 “나는 곧 나의 몸이다(Je suis mon corps)”라는 말로 요약된다. 우리는 흔히 생각이 먼저이고 몸은 그 생각을 따르는 도구라고 여긴다.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몸과 정신을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지각하는 주체였으며, 인간은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 맺는 존재였다.

패션은 원래부터 신체의 산업이었다. 아무리 정교한 렌더링 이미지가 있어도 실제 피팅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움직임에 따른 실루엣의 변화, 소재가 몸에 닿을 때의 감각까지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창작자의 판단 역시 이런 경험 위에서 이뤄진다.

# 정동은 확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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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매거진

우리는 흔히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판단보다 반응이 먼저 일어난다. 어떤 공간에 들어갔을 때 설명하기 어렵지만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브랜드에는 이유 없이 끌린다. 이러한 즉각적인 감각적 반응을 ‘정동(Affect)’이라 부른다. 창작자의 감각적 판단은 대부분 이 정동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왜 이게 이상한가”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 안다. 

그리고 이것은 화면 앞에서 일하는 디지털 창작자도 마찬가지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확률적으로 결과를 생성할 수 있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는 긴장감과 끌림, 불편함과 설렘은 단순한 확률로 환원되기 어렵다. 정동은 논리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왜 다시 몸을 찾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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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진에 두개 장면을 담을 수 있는 코닥 하프 필름 카메라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변화가 창작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더 물리적인 경험을 찾기 시작했다.

LP 시장은 19년 연속 성장하고 있다. 스트리밍으로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돈을 내고 음반을 산다. 그것은 음악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바이닐 레코드를 꺼내고, 바늘을 올리고, 40분을 앉아서 듣는 것- 음악은 같을 수 있지만 경험은 같지 않다.

코닥은 35mm 필름 수요가 지난 5년간 두 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언제나 손 안에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굳이 현상소를 찾는다. AI 생성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필름 사진의 가치는 더 선명해지고 있다.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고, 현상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경험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패션 미디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파산으로 발행이 중지되었던 패션 매거진 i-D가 2년 만에 재창간되어 가판대로 돌아왔다. 패션 콘텐츠를 무한히 스크롤 할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손으로 만지고 소장할 수 있는 잡지를 다시 원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요를 이끄는 Gen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점이다. 온라인 환경에서 태어난 세대가 오히려 손에 잡히는 것을 가장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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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JYY. Image generated using ChatGPT. All rights reserved

 

# 몸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것들


창작자의 몸으로 판단하는 방식과 소비자의 몸으로 경험하려는 욕구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동시에 몸으로 경험하는 감각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다. 패션 브랜드의 팝업 공간을 방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결과물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몸이 경험하는 시간까지 원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더 많이 생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몸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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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이 디토리안


패션 컨설턴트이자 교육자. 디지털 전환과 생성형 AI가 패션 기획·디자인·브랜딩에 가져 온 변화를 연구하고, 이를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술 변화 속에서 패션 산업의 구조와 가치, 지속가능한 디자인 방식을 사유하며 글을 씁니다.  associe.n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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