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의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K패션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려면
동대문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K패션의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기사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요.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주요 백화점들을 가보면, 가장 좋은 층에 이들 매장이 자리 잡고 있는가 하면 한남동 등에 위치한 이들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호시절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성장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데요. 오늘은 동대문에서 현재 어떤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트렌드라이트(w/DALL-E)
# 동대문 풀필먼트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동대문 풀필먼트 생태계는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풀필먼트 서비스란, 고객의 주문에 맞춰서 보관된 물품을 찾아 포장하고 출고하기까지의 과정을 대행해 주는 것을 뜻하는데요. 특히 물리적 매장이 존재하지 않는 이커머스의 경우, 이를 처리하는 물류 역량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근래 들어 더욱 주목받아온 비즈니스이기도 합니다.
한 때 10여개 동대문 도매전문 플랫폼이 운영되었다.
특히 국내 패션 산업에서는 동대문을 기반으로 하는 풀필먼트 기업들이 한때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일단 ‘스타일난다’ 등 1세대 온라인 쇼핑몰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지그재그, 에이블리에 이르기까지 동대문 의류 시장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고요. 이는 동대문이 전 세계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은 디자인, 생산, 판매가 모두 이루어지는 거대한 패션 클러스터라는 점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해 온 동대문 답게, 디지털 전환에 있어서는 많이 뒤처져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기회를 발견하고 많은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동대문을 찾아왔는데요. 이들은 풀필먼트 서비스의 확대를 통해 전통적인 도매 시장을 온라인으로 옮겨오고자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동대문의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올 거란 기대를 가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바로 이 동대문 기반 풀필먼트 서비스들이 연이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시작은 링크샵스였습니다. 도매 의류 중개 플랫폼으로 가장 먼저 문을 두드렸던 곳 중 하나였던, 링크샵스는 경영 위기 상황에 처하자 풀필먼트 서비스 '고집배송'을 종료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아예 폐업한 상황인데요. 이는 동대문 전체에 아주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많은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들이 사라졌는데, 이는 결국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링크샵스
그리고 문제는 이러한 링크샵스의 실패가 개별 기업이 아닌, 전체 동대문 전체의 구조적인 이슈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많은 스타트업들이 풀필먼트 서비스를 종료하고 있습니다. 사입 플랫폼 셀업이나, 신상마켓은 모두 관련된 풀필먼트 서비스 운영을 중단했고요. 결정적으로, 한때 지그재그와 에이블리와 경쟁하던, 브랜디 역시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 셀피 서비스를 포기하고, 내부 물량만 처리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잇따른 운영 중단의 배경에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이로 인한 투자 시장의 경색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유독 동대문에 찬 바람이 불었던 건, 무엇보다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의 한계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원래도 복잡한 구조로 인해 규모를 키우기 어려웠고, 비용 구조도 가볍지 않아서 사업성도 낮았던 것이, 위기가 닥치니 수면 위로 드러난 것에 가까웠거든요.
# 여기서 광저우발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동대문 생태계 전체를 디지털 전환하겠다던, 도전자들이 쓸쓸히 퇴장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위협 요소가 등장합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으로 대표되는 중국 커머스들이 국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건데요. 전체 이커머스 시장이 이로 인해 뒤숭숭하긴 합니다만, 작년 4분기 중국 직구 품목별 거래액 중 무려 56%를 패션이 차지할 정도니까, 특히나 패션 업계가 긴장 중에 있습니다.
광저우는 압도적 가격 우위를 바탕으로 동대문을 위협 중입니다 ⓒ카이화디찬
무엇보다 중국 광저우와 항저우 클러스터는 여러 면에서 동대문의 상위 호환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데요. 동대문의 최대 강점은 빠르게 트렌드를 캐치하여, 이를 생산까지 바로 이어 붙이며, 이를 가격 경쟁력 있게 내어 놓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 역시 기획부터 제조까지 한데 모아, 빠른 속도를 갖추었고요. 무엇보다 가격이 압도적으로 저렴합니다. 기획 역량 자체는 국내가 우월하다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바로 이를 바로 카피할 수 있고요. 품질 차이 역시 존재하지만 가격 격차가 너무도 크다 보니 묻히게 됩니다. 그렇기에 동대문 의류의 자리를 더 빠르고 다양하며, 압도적으로 싼 중국산 의류들이 대체할 가능성이 정말 큽니다.
쉬인이라는 대표선수의 존재가 광저우 생태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이터
더군다나 광저우에는 동대문엔 없는 쉬인이라는 스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쉬인은 광저우 클러스터 기반으로 성장하여, 현재는 전체 생태계를 혁신시키는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데요. 패스트 패션,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넘어선 리얼타임 패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디지털 기반으로 생산 기지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곧 평균 재고 회전일 수가 40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운영 효율로 이어지고, 안 그래도 강력하던 가격 경쟁력을 아예 다른 차원으로 옮겨 버립니다. 현재는 쉬인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진입한다면 동대문 생태계는 또다시 위기에 처하게 될 겁니다.
# K패션을 위해선 동대문이 필요합니다
만약 동대문 클러스터가 이렇게 서서히 무너져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이제 막 전성기가 시작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기세가 앞으로도 이어지기는 어려워질 겁니다.
왜냐하면 동대문은 바로 이러한 브랜드들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K패션을 선도하는 브랜드들 중에는 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이 만든 것도 많지만요. 그 못지않게, 비전공자들이 만든 것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과거의 스타일난다, 현재의 마뗑킴처럼 자신 만의 스타일로 팬을 모은, 인플루언서들이 옷을 사입하여 판매하기 시작하고, 추후 브랜드까지 성장한 경우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인플루언스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어준 것이 동대문이었고요.
마뗑킴을 만든 김다인 전 대표와 같은 스타는 동대문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퍼스바자
바로 옆 일본만 하더라도, 국내처럼 인플루언서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누구나 도매 시장에 방문해서 자신 만의 스타일대로 옷을 사입하여 쇼핑몰을 운영할 수 있는 국내와 달리, 이러한 인프라 접근성이 낮은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바로 그런 면에서, 부족한 점을 채워준 동대문 덕분에 국내 패션업계는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습니다. 가장 앞단계인 사입의 장벽을 낮추고, 이후 생산까지 할 수 있도록 인프라 역할을 해주었으니까요. 따라서 앞으로도 이러한 성공 사례들이 계속 나오려면 무엇보다 동대문이 든든히 버텨줘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동대문 클러스터가 영속하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신진 브랜드들이 계속 탄생해야 하고요.
# 다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들이 만들고자 했던, 동대문 클러스터의 디지털 전환 및 시스템화가 정말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비효율을 걷어내야,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만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글로벌 소비자와 바로 연결하는 동대문 바이어라운지 ⓒ서울시
그래서 에이블리와 같은 동대문 기반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쉬인 같은 스타 역할을 하여 전체 생태계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디지털 전환이 만들 수 있는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사입과 물류는 물론, 판매 기회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요. 일찌감치 해외 판로를 적극적으로 개척 중이라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이 개별 셀러들이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며 돕는 역할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동대문이 디지털 기반으로 역량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중국 광저우와 직접적인 가격 경쟁을 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랜드 가치를 더해야 하고요. 따라서 이들이 단지 블로그 마켓을 넘어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계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동대문 내에서도 품질적으로 더욱 격차를 벌려, 이들의 가치가 인정받도록 해야 할 거고요.
마지막으로 정부에서도 중국 등지에서 불법적인 카피를 할 수 없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생태계 전체, 그리고 정부까지 한 마음이 되어, 동대문의 부활을 위해 노력한다면, 다시 비상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앞으로 동대문이 다시 예전의 명성과 활기를 되찾고, 이를 통해 더 다양한 신진 브랜드들이 등장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기묘한 작가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트렌드라이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로,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brunch.co.kr/@trendlite
동대문의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최근 K패션의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기사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요.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주요 백화점들을 가보면, 가장 좋은 층에 이들 매장이 자리 잡고 있는가 하면 한남동 등에 위치한 이들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호시절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성장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데요. 오늘은 동대문에서 현재 어떤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트렌드라이트(w/DALL-E)
# 동대문 풀필먼트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동대문 풀필먼트 생태계는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풀필먼트 서비스란, 고객의 주문에 맞춰서 보관된 물품을 찾아 포장하고 출고하기까지의 과정을 대행해 주는 것을 뜻하는데요. 특히 물리적 매장이 존재하지 않는 이커머스의 경우, 이를 처리하는 물류 역량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근래 들어 더욱 주목받아온 비즈니스이기도 합니다.
한 때 10여개 동대문 도매전문 플랫폼이 운영되었다.
특히 국내 패션 산업에서는 동대문을 기반으로 하는 풀필먼트 기업들이 한때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일단 ‘스타일난다’ 등 1세대 온라인 쇼핑몰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지그재그, 에이블리에 이르기까지 동대문 의류 시장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고요. 이는 동대문이 전 세계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은 디자인, 생산, 판매가 모두 이루어지는 거대한 패션 클러스터라는 점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해 온 동대문 답게, 디지털 전환에 있어서는 많이 뒤처져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기회를 발견하고 많은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동대문을 찾아왔는데요. 이들은 풀필먼트 서비스의 확대를 통해 전통적인 도매 시장을 온라인으로 옮겨오고자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동대문의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올 거란 기대를 가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바로 이 동대문 기반 풀필먼트 서비스들이 연이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시작은 링크샵스였습니다. 도매 의류 중개 플랫폼으로 가장 먼저 문을 두드렸던 곳 중 하나였던, 링크샵스는 경영 위기 상황에 처하자 풀필먼트 서비스 '고집배송'을 종료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아예 폐업한 상황인데요. 이는 동대문 전체에 아주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많은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들이 사라졌는데, 이는 결국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링크샵스
그리고 문제는 이러한 링크샵스의 실패가 개별 기업이 아닌, 전체 동대문 전체의 구조적인 이슈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많은 스타트업들이 풀필먼트 서비스를 종료하고 있습니다. 사입 플랫폼 셀업이나, 신상마켓은 모두 관련된 풀필먼트 서비스 운영을 중단했고요. 결정적으로, 한때 지그재그와 에이블리와 경쟁하던, 브랜디 역시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 셀피 서비스를 포기하고, 내부 물량만 처리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잇따른 운영 중단의 배경에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이로 인한 투자 시장의 경색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유독 동대문에 찬 바람이 불었던 건, 무엇보다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의 한계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원래도 복잡한 구조로 인해 규모를 키우기 어려웠고, 비용 구조도 가볍지 않아서 사업성도 낮았던 것이, 위기가 닥치니 수면 위로 드러난 것에 가까웠거든요.
# 여기서 광저우발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동대문 생태계 전체를 디지털 전환하겠다던, 도전자들이 쓸쓸히 퇴장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위협 요소가 등장합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으로 대표되는 중국 커머스들이 국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건데요. 전체 이커머스 시장이 이로 인해 뒤숭숭하긴 합니다만, 작년 4분기 중국 직구 품목별 거래액 중 무려 56%를 패션이 차지할 정도니까, 특히나 패션 업계가 긴장 중에 있습니다.
광저우는 압도적 가격 우위를 바탕으로 동대문을 위협 중입니다 ⓒ카이화디찬
무엇보다 중국 광저우와 항저우 클러스터는 여러 면에서 동대문의 상위 호환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데요. 동대문의 최대 강점은 빠르게 트렌드를 캐치하여, 이를 생산까지 바로 이어 붙이며, 이를 가격 경쟁력 있게 내어 놓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 역시 기획부터 제조까지 한데 모아, 빠른 속도를 갖추었고요. 무엇보다 가격이 압도적으로 저렴합니다. 기획 역량 자체는 국내가 우월하다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바로 이를 바로 카피할 수 있고요. 품질 차이 역시 존재하지만 가격 격차가 너무도 크다 보니 묻히게 됩니다. 그렇기에 동대문 의류의 자리를 더 빠르고 다양하며, 압도적으로 싼 중국산 의류들이 대체할 가능성이 정말 큽니다.
쉬인이라는 대표선수의 존재가 광저우 생태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이터
더군다나 광저우에는 동대문엔 없는 쉬인이라는 스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쉬인은 광저우 클러스터 기반으로 성장하여, 현재는 전체 생태계를 혁신시키는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데요. 패스트 패션,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넘어선 리얼타임 패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디지털 기반으로 생산 기지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곧 평균 재고 회전일 수가 40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운영 효율로 이어지고, 안 그래도 강력하던 가격 경쟁력을 아예 다른 차원으로 옮겨 버립니다. 현재는 쉬인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진입한다면 동대문 생태계는 또다시 위기에 처하게 될 겁니다.
# K패션을 위해선 동대문이 필요합니다
만약 동대문 클러스터가 이렇게 서서히 무너져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이제 막 전성기가 시작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기세가 앞으로도 이어지기는 어려워질 겁니다.
왜냐하면 동대문은 바로 이러한 브랜드들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K패션을 선도하는 브랜드들 중에는 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이 만든 것도 많지만요. 그 못지않게, 비전공자들이 만든 것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과거의 스타일난다, 현재의 마뗑킴처럼 자신 만의 스타일로 팬을 모은, 인플루언서들이 옷을 사입하여 판매하기 시작하고, 추후 브랜드까지 성장한 경우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인플루언스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어준 것이 동대문이었고요.
마뗑킴을 만든 김다인 전 대표와 같은 스타는 동대문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하퍼스바자
바로 옆 일본만 하더라도, 국내처럼 인플루언서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누구나 도매 시장에 방문해서 자신 만의 스타일대로 옷을 사입하여 쇼핑몰을 운영할 수 있는 국내와 달리, 이러한 인프라 접근성이 낮은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바로 그런 면에서, 부족한 점을 채워준 동대문 덕분에 국내 패션업계는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습니다. 가장 앞단계인 사입의 장벽을 낮추고, 이후 생산까지 할 수 있도록 인프라 역할을 해주었으니까요. 따라서 앞으로도 이러한 성공 사례들이 계속 나오려면 무엇보다 동대문이 든든히 버텨줘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동대문 클러스터가 영속하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신진 브랜드들이 계속 탄생해야 하고요.
# 다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들이 만들고자 했던, 동대문 클러스터의 디지털 전환 및 시스템화가 정말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비효율을 걷어내야,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만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글로벌 소비자와 바로 연결하는 동대문 바이어라운지 ⓒ서울시
그래서 에이블리와 같은 동대문 기반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쉬인 같은 스타 역할을 하여 전체 생태계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디지털 전환이 만들 수 있는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사입과 물류는 물론, 판매 기회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요. 일찌감치 해외 판로를 적극적으로 개척 중이라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이 개별 셀러들이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며 돕는 역할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동대문이 디지털 기반으로 역량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중국 광저우와 직접적인 가격 경쟁을 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랜드 가치를 더해야 하고요. 따라서 이들이 단지 블로그 마켓을 넘어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단계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동대문 내에서도 품질적으로 더욱 격차를 벌려, 이들의 가치가 인정받도록 해야 할 거고요.
마지막으로 정부에서도 중국 등지에서 불법적인 카피를 할 수 없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생태계 전체, 그리고 정부까지 한 마음이 되어, 동대문의 부활을 위해 노력한다면, 다시 비상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앞으로 동대문이 다시 예전의 명성과 활기를 되찾고, 이를 통해 더 다양한 신진 브랜드들이 등장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기묘한 작가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트렌드라이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로, '사고파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brunch.co.kr/@trendl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