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시계를 두 개 차기로 했다
명품과 저렴한 시계의 차별적 가치 인정할 때

이미지 출처: 필자가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글로벌 시계 시장에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전세계 금융인과 사업가들이 즐겨 있는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가을 미국 월가에서 포착된 ‘안티-스태터스 워치(Anti-Status Watch)’ 트렌드에 대해 보도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로라하는 갑부 고객의 금융자산을 위임받아 주식과 채권을 거래하는 증권가 딜러, 브로커, 펀드 매니저들이 명품 정장 양복과 고급 가죽 구두 차림에 1970~80년대 유행했던 레트로풍 저가 시계를 차고 다니는 ‘의외’의 액세서리 코디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산기 스타일 카시오(Casio) 디지털 손목 시계,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 등 만화 캐릭터가 들어간 타이맥스(Timex) 손목시계, 형광색 발랄한 플라스틱 소재 스와치(Swatch) 등 비(非) 명품 레트로 감성 시계 브랜드의 2차 전성 시대는 올까?
고연봉 휘낭시에(financier, 금융맨)들 사이에서 초고가 명품 시계는 고급 가죽 정장 구두와 나란히 그들의 제냐(Ermegildo Zegana)나 브리오니(Brioni) 등 고가 비즈니스 정장을 완성시켜주는 화룡점정이었다. 그런데 어쩐 이유인지 지난 몇 년 사이 금빛 롤렉스 손목시계 대신 플라스틱 소재의 싸구려티나는 가격 100달러 안팎의 저렴한 제품을 차고 다니는 몇몇 유명 금융맨들이 포착됐다.

풍자적 유머를 유쾌한 만화풍으로 시계를 디자인하는 미스터 존스의 ‚리코셰(Richet)‘시계 모델. 사진 출처: Mr Jones Watches(MJW).
가장 유명하게는, 스티븐 슈워츠만 블랙스톤 CEO가 카시오 계산기 모델 시계나 스포츠 시계를 차고 다니기로 유명했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 삭스 CEO는 스와치를 차고 다니는 것이 자주 포착됐고,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인 필 팔콘은 카시오 G-쇼크(G-SHOCK) 스포츠 시계를, JP모건 체이스의 한 총책임 임원은 액션영화 '어벤저' 주인공 이미지가 들어간 시티즌(Citizen) 시계를 즐겨 찼다.

영국 시계 메이커 스튜디오 언더독⨉리스트체크(Wrist check)의 콜라보로 창조된 ‚언에그스펙티드 시리즈(The Uneggspected Series)’ 시계 디자인 중 에그 프라이(the Fried), 삷은 달걀(B0iled), 썪은 달걀(R0tten Egg) 등 3개 모델. 사진 출처: Studio Underd0g
그들은 가문 대대로 물려 받은 유산 손목시계와 자가 구매한 고급 명품 시계와 나란히 저렴한 빈티지 카시오, 미키 마우스 스와치, 스폰지밥 스피나커(Spinnaker) 손목 시계도 자손들에게 물려주겠다고 말 할 정도로 손목시계의 가격이나 진지한 외형 디자인을 손목시계의 가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성과에 대한 기대, 장시간 고강도 업무,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빡빡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는 금융맨들도 이따금 긴장을 풀고 엉뚱하고 명량한 기분을 내고 싶다.
남들이 차지 않는 의외의 독특하고 발랄한 손목시계는 착용자의 남다른 개성과 대담한 취향을 뽐낼 수 있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진지한 오피스 환경에서 어색함을 완화시켜주는 스몰토크 주제 또는 유쾌한 농담의 화두가 돼주기도 한다.

스위스 고급 시계 브랜드 레이몬트 바일(Raymond Weil)이 올 여름부터 시행에 들어간 39% 미국 수출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해 논평하기 위해 출시한 ‚밀리시메 오토매틱 한정판 39%‘(지름 39mm) 시계. 사진 출처: Raymond Weil
손목시계를 둘러싼 이 모든 새로운 트렌드의 등장으로 글로벌 고급 손목시계 산업의 최강국인 스위스는 다시 한번 도전에 직면했다. 스위스는 세계 명품 손목시계 시장을 지배하고는 있지만 시장 환경과 시계 기술 혁신에 따라 주기적인 매출 위기에 처했던 경험이 있다. 약 50년 전 ‘저팬 메이드’ 저가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매출 타격을 입었던 악몽에 이어서, 가장 최근에는 10년 전인 2015년 봄, 애플워치의 첫 출시로 아날로그 시계 매출 부진을 겪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구사회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여기에 올 8월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스위스산 수입품에 대한 39%라는 충격적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이후 다시 한 번 해외 수출 시장에서 난관에 봉착하자, 스와치 그룹은 최근 스위스 시계 업계를 대표해 ‘왓이프…태리프?(WHAT IF…TARIFFS?)’라는 모델명의 신상품을 출시했다. 왓이프…태리프 모델은 9월 10일(수요일) 소비자 가격 139 스위스 프랑(한화 약 24만 원)의 한정 수량으로 출시된 후 이틀 만인 12일에 완판됐는데, 트럼프의 39% 관세를 패러디해 시계 숫자판의 3과 9를 뒤바꿔 넣은 디자인은 스위스 특유의 풍자 펀치라인이다.
미국은 중국과 더불어 스위스산 시계의 최대 해외 수출 시장인 만큼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 구매에 막중하게 의존하고 있다. 스위스 세계산업의 최대 기업 스와치의 ‘왓이프…태리프’ 스타일의 귀여운 어필(charm)이 과연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나 관세 완화 정책을 향한 스위스 시계 업계 외교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인 9월 7일, 미국 US오픈 테니스 결승전에서 이 대회의 공식 타임키퍼 겸 미국테니스협회 후원사인 롤렉스(스와치 그룹 소유 브랜드)는 트럼프 대통령을 특별 관람 귀빈으로 초대해 응대한 것은 그런 예다.

스위스의 고급 손목시계 메이커 ‚H. 모저운트씨가 디지털 애플워치 출시를 기념하며 애플워치 외형을 본따 패러디한 아날로그 ‚스위스 알프 워치(Swiss Alp Watch)‘ 모델. 스위스 시계업계는 애플워치의 시계 시장 진출로 매우 긴장했으나 고가 명품 세그먼트 시장 집중 공략으로 매출 실적을 회복했다. 사진 출처: H. Moser & Cie.
최근 금융맨들 사이에서 부는 유희적인 저가 손목시계 유행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손목시계는 사회경제적 지위와 성취도를 과시하는 심벌이 아닌 시계가 해야 할 본연의 기능-시각 알려주기-에 재미와 장난이라는 생활 속 조미료가 더해진 색다른 장신구로 변신하는 중은 아닐까?
고도의 정밀 엔지니어링 노하우가 압축된 작지만 고귀한 고급 명품 손목시계가 자아내는 진지함과 무거움은 훨씬 저렴하지만 재미와 유쾌함을 선사하는 저가 손목시계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손목시계에 담긴 두 상반된 가치 중에서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 갈림길 사이에서 나는 어느 하나가 더 우월하다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왼팔 손목에 디지틀 애플워치와 1990년대 출시 빈티지 스와치 두 개를 한 팔에 동시에 차고 다니기로 한 이유다.

박진아 디토리안
박진아 디토리안은 사회학・미술사학 전공 후 1998년부터 해외 유수 미술관 근무 경험과 미술 평론과 디자인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미술 커뮤니티와 대중 독자 사이를 잇는 문예 평론가로 정진 중. 21세기 최신 현대 문화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슈, 형상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통찰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이제 나는 시계를 두 개 차기로 했다
이미지 출처: 필자가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글로벌 시계 시장에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전세계 금융인과 사업가들이 즐겨 있는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가을 미국 월가에서 포착된 ‘안티-스태터스 워치(Anti-Status Watch)’ 트렌드에 대해 보도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로라하는 갑부 고객의 금융자산을 위임받아 주식과 채권을 거래하는 증권가 딜러, 브로커, 펀드 매니저들이 명품 정장 양복과 고급 가죽 구두 차림에 1970~80년대 유행했던 레트로풍 저가 시계를 차고 다니는 ‘의외’의 액세서리 코디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산기 스타일 카시오(Casio) 디지털 손목 시계,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 등 만화 캐릭터가 들어간 타이맥스(Timex) 손목시계, 형광색 발랄한 플라스틱 소재 스와치(Swatch) 등 비(非) 명품 레트로 감성 시계 브랜드의 2차 전성 시대는 올까?
고연봉 휘낭시에(financier, 금융맨)들 사이에서 초고가 명품 시계는 고급 가죽 정장 구두와 나란히 그들의 제냐(Ermegildo Zegana)나 브리오니(Brioni) 등 고가 비즈니스 정장을 완성시켜주는 화룡점정이었다. 그런데 어쩐 이유인지 지난 몇 년 사이 금빛 롤렉스 손목시계 대신 플라스틱 소재의 싸구려티나는 가격 100달러 안팎의 저렴한 제품을 차고 다니는 몇몇 유명 금융맨들이 포착됐다.
풍자적 유머를 유쾌한 만화풍으로 시계를 디자인하는 미스터 존스의 ‚리코셰(Richet)‘시계 모델. 사진 출처: Mr Jones Watches(MJW).
가장 유명하게는, 스티븐 슈워츠만 블랙스톤 CEO가 카시오 계산기 모델 시계나 스포츠 시계를 차고 다니기로 유명했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 삭스 CEO는 스와치를 차고 다니는 것이 자주 포착됐고,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인 필 팔콘은 카시오 G-쇼크(G-SHOCK) 스포츠 시계를, JP모건 체이스의 한 총책임 임원은 액션영화 '어벤저' 주인공 이미지가 들어간 시티즌(Citizen) 시계를 즐겨 찼다.
영국 시계 메이커 스튜디오 언더독⨉리스트체크(Wrist check)의 콜라보로 창조된 ‚언에그스펙티드 시리즈(The Uneggspected Series)’ 시계 디자인 중 에그 프라이(the Fried), 삷은 달걀(B0iled), 썪은 달걀(R0tten Egg) 등 3개 모델. 사진 출처: Studio Underd0g
그들은 가문 대대로 물려 받은 유산 손목시계와 자가 구매한 고급 명품 시계와 나란히 저렴한 빈티지 카시오, 미키 마우스 스와치, 스폰지밥 스피나커(Spinnaker) 손목 시계도 자손들에게 물려주겠다고 말 할 정도로 손목시계의 가격이나 진지한 외형 디자인을 손목시계의 가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성과에 대한 기대, 장시간 고강도 업무,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빡빡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는 금융맨들도 이따금 긴장을 풀고 엉뚱하고 명량한 기분을 내고 싶다.
남들이 차지 않는 의외의 독특하고 발랄한 손목시계는 착용자의 남다른 개성과 대담한 취향을 뽐낼 수 있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진지한 오피스 환경에서 어색함을 완화시켜주는 스몰토크 주제 또는 유쾌한 농담의 화두가 돼주기도 한다.
스위스 고급 시계 브랜드 레이몬트 바일(Raymond Weil)이 올 여름부터 시행에 들어간 39% 미국 수출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해 논평하기 위해 출시한 ‚밀리시메 오토매틱 한정판 39%‘(지름 39mm) 시계. 사진 출처: Raymond Weil
손목시계를 둘러싼 이 모든 새로운 트렌드의 등장으로 글로벌 고급 손목시계 산업의 최강국인 스위스는 다시 한번 도전에 직면했다. 스위스는 세계 명품 손목시계 시장을 지배하고는 있지만 시장 환경과 시계 기술 혁신에 따라 주기적인 매출 위기에 처했던 경험이 있다. 약 50년 전 ‘저팬 메이드’ 저가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매출 타격을 입었던 악몽에 이어서, 가장 최근에는 10년 전인 2015년 봄, 애플워치의 첫 출시로 아날로그 시계 매출 부진을 겪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구사회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여기에 올 8월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스위스산 수입품에 대한 39%라는 충격적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이후 다시 한 번 해외 수출 시장에서 난관에 봉착하자, 스와치 그룹은 최근 스위스 시계 업계를 대표해 ‘왓이프…태리프?(WHAT IF…TARIFFS?)’라는 모델명의 신상품을 출시했다. 왓이프…태리프 모델은 9월 10일(수요일) 소비자 가격 139 스위스 프랑(한화 약 24만 원)의 한정 수량으로 출시된 후 이틀 만인 12일에 완판됐는데, 트럼프의 39% 관세를 패러디해 시계 숫자판의 3과 9를 뒤바꿔 넣은 디자인은 스위스 특유의 풍자 펀치라인이다.
미국은 중국과 더불어 스위스산 시계의 최대 해외 수출 시장인 만큼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 구매에 막중하게 의존하고 있다. 스위스 세계산업의 최대 기업 스와치의 ‘왓이프…태리프’ 스타일의 귀여운 어필(charm)이 과연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나 관세 완화 정책을 향한 스위스 시계 업계 외교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인 9월 7일, 미국 US오픈 테니스 결승전에서 이 대회의 공식 타임키퍼 겸 미국테니스협회 후원사인 롤렉스(스와치 그룹 소유 브랜드)는 트럼프 대통령을 특별 관람 귀빈으로 초대해 응대한 것은 그런 예다.
스위스의 고급 손목시계 메이커 ‚H. 모저운트씨가 디지털 애플워치 출시를 기념하며 애플워치 외형을 본따 패러디한 아날로그 ‚스위스 알프 워치(Swiss Alp Watch)‘ 모델. 스위스 시계업계는 애플워치의 시계 시장 진출로 매우 긴장했으나 고가 명품 세그먼트 시장 집중 공략으로 매출 실적을 회복했다. 사진 출처: H. Moser & Cie.
최근 금융맨들 사이에서 부는 유희적인 저가 손목시계 유행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손목시계는 사회경제적 지위와 성취도를 과시하는 심벌이 아닌 시계가 해야 할 본연의 기능-시각 알려주기-에 재미와 장난이라는 생활 속 조미료가 더해진 색다른 장신구로 변신하는 중은 아닐까?
고도의 정밀 엔지니어링 노하우가 압축된 작지만 고귀한 고급 명품 손목시계가 자아내는 진지함과 무거움은 훨씬 저렴하지만 재미와 유쾌함을 선사하는 저가 손목시계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손목시계에 담긴 두 상반된 가치 중에서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 갈림길 사이에서 나는 어느 하나가 더 우월하다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왼팔 손목에 디지틀 애플워치와 1990년대 출시 빈티지 스와치 두 개를 한 팔에 동시에 차고 다니기로 한 이유다.
박진아 디토리안
박진아 디토리안은 사회학・미술사학 전공 후 1998년부터 해외 유수 미술관 근무 경험과 미술 평론과 디자인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미술 커뮤니티와 대중 독자 사이를 잇는 문예 평론가로 정진 중. 21세기 최신 현대 문화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슈, 형상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통찰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