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리안[뷰티테크] 과연 AI는 제2의 ‘샤넬 No.5’ 향수를 창조할까?

박진아 디토리안
2025-08-08

[BEAUTY TECH] 

과연 AI는 제2의 ‘샤넬 No.5’ 향수를 창조할까?

향수마켓 게임 체인저… 세계적 제향사들 AI 적극 활용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미래 향수를 기획하고, 조향사 역할까지 바꾸는 등 뷰티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부각되고 있다.


인간의 시각과 청각은 유전과 훈련으로 연마되는 지성적 감각인 반면, 후각은 두뇌 깊숙이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의 영역과 연결된 감각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자전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속 마들렌 과자 향기와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는 감정의 타임머신으로서 후각을 이야기했고, 봉준호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작 <기생충>은 사건의 극적 전환의 촉매로서 냄새의 역할을 다룬 영화였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과학과 리테일 마켓은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소비자의 후각을 자극해 정서를 조정하고 매출로 연결하는 감성 마케팅은 뷰티업계 뿐 아니라 가공 식음료, 뷰티 위생, 리테일 매장 디자인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공감각이란 한 가지 감각계에 자극이 가해졌을 때 무의식적으로 다른 감각에 동반적 느낌이 감지되는 자동적 두뇌 인지 작용으로, 오늘날 의학과 컴퓨터·AI 기술 개발에도 유용한 정보로써 주목받는다.



DSM-피르메니히는 2025년 6월 18~1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퍼퓨머리 콩그레스 행사(Barcelona Perfumery Congress)에서 시네스테틱 랩(Synesthetic Lab)을 선보이고 디지털 테크롤러지와 신경과학을 감정적 체험으로 연결시키는 최신 향기 테크를 선보였다. 자료 출처: © Scentmate™


피부에 직접 뿌려 사용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향수 제품은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색다른 향으로 발산되기 때문에 패션에서는 신비의 화룡점정이다.


지난 수 백 년 인류의 화장품과 장업의 역사에서 향수는 조향사라는 전문가의 방대한 지식, 탁월한 냄새 탐지력, 직관이 결합돼 빚어진 인간적 창조 영역의 결과물이었다. 고급 향수가 기획과 개발을 거쳐 신제품으로 출시되기까지 수 개월에서 수 년에 걸친 조향사, 의학 자문가, 제품 기획 및 개발자, 제품 디자이너, 마케터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과 투자가 투입된다.


# 생성AI, 원가 절감과 조향 기술 민주화에 기여



생성AI 등장과 함께 이제 향수 제조업계에서 제품 개발 및 원가 절감과 조향 기술의 민주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 글로벌 향수 제조업계에서 AI 툴은 이미 많은 영역에서 도입돼 사용되고 있다. 세계적인 향수 제조업체 빅4-DMS피르메니히(DSM Firmenich), 지보댕(Givaudan), IFF, 그리고 심라이즈(Symrise)-는 조향 창조 과정에 AI를 응용하고 있다.


멕시코의 자연 감성과 Z세대 유니섹스 문화를 향수로 실현한 '하우스 오브 보' 제품은 조향에서 광고 캠페인 전 과정에 AI를 대거 활용하는 신진 인기 향수 브랜드다. 사진 출처: House of Bō 웹사이트.


인간 조향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더 새롭고 폭넓은 후각 세계를 탐색에 AI는 제법 유용하다. 예컨대, 웰빙 지향적 향수 브랜드 ‘르 라보’의 상탈 33, 청순한 여성성을 강조한 글로시에 유, ‘톰 포드’의 투스칸 등 인기 향수들은 모두 AI의 도움을 받아 조합된 제품들이다.


조향의 인공지능화는 고급 향수에 첨가되는 동물성 원료나 환경 파괴나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원료 대신 AI가 제안하는 대체 인공 성분의 활용도를 높여서 생태친화적 조향 기술 개발과 친환경적 향수 소비 촉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보댕이 개발한 ‘카르토(Carto)’는 현재 향수업계 챗GPT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향기 조합용 AI 툴로, 2022년부터 디오르 자도르(Dior J’Adore) 향수를 창조한 유명 조향사 칼리스 베커(Calice Becker)의 자문을 얻어 개발됐다.


지보댕이 개발한 '카르토' 컴퓨터 보조 제향(computer-aided creation) 프로그램.  조향 전문가들의 경험적으로 축적해온 무수한 향원료와 인간 후각 데이터를 디지털화한 AI 플랫폼으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창조적인 새 향기 발굴은 물론 원료 공급망 및 과학적 안전성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해 신제품 개발 시한과 비용 절감을 돕는다. 자료 출처: Givaudan


인간 두뇌 추출에서 추출한 후각 데이터는 AI 알고리즘 기반 향기 창조에 특히 유용한 자료다. 후각 데이터는 MBTI 심리 테스트처럼 인간 후각 정보와 성분·향 팔레트로 대량의 복잡한 데이터세트를 분석하고 소비자 선호 취향을 판별하는데 사용된다.


파코라반의 팬텀(Phantom) 향수는 IFF(International Flavours & Fragrances)가 개발한 증강 창조 툴(augmented creativity tool)과 4,500만 인간 두뇌 추출 데이터를 종합한 감정-후각 자료에 바탕해 개발됐다(자료: 프랑스 IFF 향기 사업부 웰니스 과학 프로그램).

 

# 톰포드, 신상 시그니처 향수 AI 작품


톰 포드 뷰티(Tom Ford Beauty)가 올 초 새로 발표한 신상 시그니처 향수 레이블 ‘보아 파시피크(Bois Pacifique)‘도 모회사인 에스티로더가 도입한 디지털 후각평가지도(odor value map) 시스템을 AI 알고리즘으로 비교 분석해 창조된 AI가 상상하고 빚은 자연의 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련 AI는 제2의 ‘샤넬 No.5’ 아이콘적 향수를 창조해 낼 수 있을까?


세계적 향수 제조 기업 심라이즈가 운영하는 인텔리전스 향기 테크놀로지 플랫폼 필리라(Phylira)는 IBM 연구소와 기술 제휴로 운영된다. 사진 출처: Symrise AG


세계적 제향사들과 향수 제조사들은 AI를 위협이라기 보다는 유용한 도우미 창조 툴이라며 반긴다. 방대한 분량의 소비자 감각 데이터와 소비자 취향 트렌드를 분석 제시하는데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특히 향수 원료 공급망, 성분의 혼합작용과 안정성 여부, 보건 당국의 법률과 규제 준수에 대비하는데 훌륭한 보조사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향수에 대한 깊은 조예, 전문가적 훈련, 값비싼 장비나 제조시설 없이도 누구나 향수를 제조할 수 있는 시대가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에 와있는 것일까?


인공지능으로 소비자의 감정을 언어로 분석해 개인별 맞춤 향수를 발굴하도록 돕는 카오리움은 일본 도쿄 출신 디지털 전문가 구리수 토시하루(Toshiharu Kurisu)가 개발한 독자적 AI 시스템이다. 사진: The Japan News


올 여름 바캉스 철을 앞두고, 6월 5일부터 7일간 영국 셀프리지(Selfridge)백화점에서 고급 니시 향수 브랜드인 파민 런던(Thameen London)이 향기 소멜리에 테크 기업인 ‘카오리움(Kaorium)‘의 AI 기반 향기 발견 시연회를 열었다. 참여한 소비자는 취향과 성격 테스트를 거치면 세계에 둘도 없이 유일한 자기 만의 맞춤 향수를 창조해 가질 수 있음을 체험시켰다.

AI 조향 툴의 대중화는 진입 장벽을 낮춰 전문가적 지식과 고가 생산 설비 없이도 일반인들이 향수제조업에 뛰어들 수 있는 조향의 민주화 시대를 뜻한다. 기존 향수 시장의 인기 유명 제품의 향을 모방해 인공향으로 조합한 유사 제품의 난립을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누가 알랴? 소규모 향수 브랜드들이 각축하는 가운데 AI 보조로 창조된 제2의 '샤넬 No.5' 가 탄생할지 말이다.


박진아 디토리안

박진아 디토리안은 사회학・미술사학 전공 후 1998년부터 해외 유수 미술관 근무 경험과 미술 평론과 디자인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미술 커뮤니티와 대중 독자 사이를 잇는 문예 평론가로 정진 중. 21세기 최신 현대 문화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슈, 형상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통찰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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