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토리안보릿고개, ‘비용절감’이 정답일까?

[하성호의 브랜드십 경영 7]


보릿고개, ‘비용절감’이 정답일까?

줄어든 판관비와 원가절감… 양날의 칼 인지해야

무리한 재고 투입보다 시장 반응 따른 민첩함으로



요즘 내 업무노트를 살펴보니 신규 프로젝트 보다는 사업 구조조정, 혁신보다는 개선을 주제로 한 내용들이 많았다. 동료들과 대화 주제 또한 비슷했다. 기업도, 투자자도 모두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이 시기의 업무노트를 통해 살펴본 비용 절감의 3가지 단면에 대해 정리해봤다.


지난 목요일 고객(기관투자자)들과 함께 우리가 인수한 2차전지 관련 부품기업 S사의 실적을 리뷰하는 월간 회의를 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작년부터 무섭게 상승한 원가율의 후유증을 온 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S사는 5개월 전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담당 김상무(가칭)를 영입했다. 입사하자마자 S사의 공장이 있는 폴란드, 헝가리 출장을 다녀온 김상무의 출장과 하반기 계획에 모든 눈과 귀가 열려 있었다. 


# 단면 1. 판관비(판매비와 관리비) 축소, 양날의 칼


경기 둔화로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이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용에 대해 엄청 타이트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로 시작한 김상무의 브리핑. 최근 4개월 판관비율이 매출액 대비 40% 대에서 19%까지 떨어져 있었다. 이게 마냥 좋아할 일일까 싶었다.


영업과 연관된 판관비, 영업 인력의 인센티브, 법인카드 사용정책 같은 경우 영업조직 사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줄일 것을 줄였는 지에 대한 관점으로 다음 주부터 판관비 세부 내역에 대한 흐름을 살펴볼 계획이다. 

*판관비: 말 그대로 판매비와 관리비를 합친 말로 매출을 일으키기 위한 판매비용(광고비 등), 영업활동을 위한 관리비용(급여 등)임


# 단면 2. 원가절감, 제품의 질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생산 원가 절감은 중요한 경쟁력이지만 품질을 저해하는 원가 절감은 악이 될 수 있다.

"특히 중국과 거래 경험이 없는 한국 기업은 중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김상무의 이야기로는 현재 S사의 원부자재는 국내에서 소싱을 하는데, 중국에서 수입할 경우 물류비 포함 네고 없이도 40% 정도 저렴하다고 한다. 그래서 샘플 테스트 중에 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동종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에서 8년간 중국법인장을 지낸 중국 통이었다. 완제품 품질에 변화가 없다면 원부자재 소싱처를 중국 기업으로 바꿀 계획이다.


그리고 중국기업과 미팅 차 계획한 중국출장길에 (S사 입장에서 판매처인) 국내 대기업의 중국 공장을 방문해 신규 수주에 대한 영업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석이조를 시전하시는 김상무의 1등석 비행기 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 단면 3. 판매 방식의 변화


H대표은 ‘랄프로렌’의 탄탄한 경력을 바탕으로 2년 전 미국에서 프리미엄 골프클럽 수입을 병행하며 골프의류 브랜드를 창업했다. 온라인 골프의류 브랜드 대부분 헤리티지가 부족한 점을 감안해 수입하는 골프클럽 브랜드에 대한 어패럴 판권을 확보했다. Co-founder인 ‘랄프로렌’ 출신 디자이너와 함께 야심차게 23년 SS 컬렉션을 준비했지만 작년부터 골프 의류에 대한 시장 반응이 뒤숭숭하다.


H대표는 수개월 전 지인이 전개하는 골프의류 브랜드가 백화점에서 먼저 러브콜을 보내와 전국으로 팝업스토어를 전개했으나, 정식 입점이 되지 않아 악성재고로 인해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 ‘랄프로렌’ 시절 느꼈던 대부분의 초기 패션 브랜드는 재고 때문에 어려워진다는 교훈이 생각났다.


그는 전략을 수정해 한정판 제품을 일시적으로 판매하는 드롭판매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조금 느려도 고객의 반응을 보며 성공 확률을 높여 가자는 결정이었다고 한다. 운영 자금이 줄어들었기에 지금과 같은 투자 혹한기를 잘 지나가고 있다고 한다. 부족한 매출을 메꾸기 위해 골프클럽 마케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단순히 기업 비용을 줄이는 것보다 현금가치 대비 사용가치가 높은 항목에 비용을 써야 한다.

나름 보안에 꽤 신경을 쓰고 있는 업무노트의 일부분을 공개했다. 이 단면들을 살펴보며 비용에 대한 본인의 생각들을 한 번 쯤 정리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비용에 대한 나름의 원칙 중 하나는 ‘현금가치’ vs. ‘사용가치’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현금가치보다 사용가치가 높은 곳에 비용을 쓰자는 건데, 법인카드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인에게 스타벅스 상품권을 선물할 때도 ‘이 50,000원 상품권으로 5,000억원짜리 프로젝트 진행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나시길...’ 이란 멘트를 자주 붙인다.


요즘의 투자업계도 독자 여러분과 비슷한 상황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좋은 투자 기회에 대한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고, 일단 골프 라운딩 횟수가 줄었다. 네트워크 유지 차원의 저녁 약속 보다는 점심 약속이 늘었다. 출자자(투자자)들에게 다가갈 전략도 수익율(IRR)을 강조하는 방식에 더해 스토리텔링, 즉 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지에 대한 콘텐츠가 강조되어가는 느낌이다.


여러모로 기업도, 투자자도 각자의 이유로 파이팅해야 하는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책상 앞 보다는 밖으로 나가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는 다짐도 해본다.


하성호 CFA는 글로벌 1위 명품 핸드백 제조기업집단에 속한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에서 기업투자 및 펀드운용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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