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패션] K 패션의 성공 보장할 우리 브랜드의 ‘도라도’는?

정인기 에디터
2026-01-08

K 패션의 성공 보장할 우리 브랜드의 ‘도라도’는?

글로벌 확장의 시대, K 패션이 다시 설계해야 할 성공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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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 4에서 필리핀 국적 가수 '도라도'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 [사진=JTBC 싱어게인 4 화면 캡쳐]


새해 국내 패션기업의 핵심 화두는 단연 ‘글로벌 사업’이다. 때마침 대통령도 K 패션의 최대 마켓 중국을 방문했고, 최병오 섬산연 회장과 조만호 무신사 대표도 동행해 K 패션 중국 진출에 힘을 실었다.

국내 시장의 성장 한계, 고정비 부담, 온라인 중심 소비 전환은 대부분의 K 패션 기업을 자연스럽게 ‘글로벌’이라는 방향으로 밀어냈다. 해외 플랫폼 입점, CBT 유통, 현지 파트너십까지 글로벌마켓 진출은 이미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

그러나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무겁다. “나가긴 나갔는데, 남는 게 없다.”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은 불안정하고, 브랜드 인지도는 생겼지만 지속적인 재구매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사업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우리는 의외의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싱어게인’에서 발견한 글로벌화의 다음 단계



a83562e60cd73.jpg[사진=JTBC 싱어게인 4 화면 캡쳐]


최근 방영된 JTBC ‘싱어게인 4’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참가자는 단연 도라도(Dorado)였다.

그녀는 필리핀 국적의 가수로, 이미 자국은 물론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한 명성과 커리어를 쌓은 ‘기성 아티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K 팝이라는 낯선 무대에 도전했다.

이 선택은 흔히 말하는 ‘용기’나 ‘열정’의 서사로 소비되기 쉽다. 그러나 도라도의 도전이 던지는 질문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선다. 그 이면에는 K 팝이 어떻게 성숙한 글로벌 산업으로 진화했는지가 담겨 있다.

이미 K 팝은 다국적 멤버 구성, 글로벌 팬덤을 넘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도라도는 연습생 출신의 외국인 아이돌이 아니다. 이미 자신의 언어와 문화권에서 능력과 시장성이 검증된 아티스트다. 그런 인물이 K 팝 무대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K 팝이 더 이상 ‘수출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각국의 본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고 싶어 하는 글로벌 플랫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 K 팝의 본질은 콘텐츠가 아니라 ‘브랜드’였다


K 팝이 글로벌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핵심은 무엇일까? 그 답은 분명하다. K 팝은 콘텐츠 이전에 브랜드였다. 사람들은 K 팝을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어 노래를 직접 부르고, K 팝 시스템 안에서 데뷔하며, 유통과 매니지먼트 비즈니스에 참여해 수익을 공유했다. K 팝은 소비 대상이 아니라 참여 가능한 산업 구조를 만들었고, 그 결과 글로벌 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은 K 패션으로 옮겨진다.
K 패션은 과연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되는 브랜드’를 넘어 ‘참여하고 싶은 산업’이 되었는가?

# K 패션 글로벌 사업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이유


많은 K 패션 기업은 글로벌 실패의 원인을 시장, 환율, 플랫폼 경쟁 심화에서 찾는다. 그러나 반복되는 사례를 들여다보면 원인은 훨씬 구조적이다.

첫째,  “좋은 상품이면 글로벌에서도 통한다”는 착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상품의 완성도 이전에 테스트 구조와 회전 속도다. 시즌 중심 기획, 대량 생산 구조는 글로벌 환경에서 리스크를 키운다.

둘째, “플랫폼 입점이 곧 글로벌 진출”이라는 오해다. 글로벌 플랫폼은 성장 파트너가 아니라 필터다. 브랜드 스토리보다 공급 안정성과 회전율을 먼저 본다. 준비되지 않은 브랜드는 노출된 뒤 빠르게 소멸된다.

셋째, 직영 중심의 현지 진출 모델이다. 과거 중국 진출에서 반복됐던 상하이·베이징 법인 설립, 직영 매장 확대 전략은 사드와 팬데믹을 거치며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문제는 시장의 크기가 아니라 고정비 구조였다.

넷째, 파트너를 나중에 찾으려는 접근이다. 글로벌 사업에서 파트너는 옵션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명분이나 감정 중심의 파트너십은 지속될 수 없다.

다섯째, ‘글로벌은 결국 마케팅 싸움’이라는 믿음이다. 마케팅 비용은 구조를 이기지 못한다. 성공한 브랜드들은 마케팅 이전에 원가와 소싱 구조를 먼저 설계했다.

# 성공 사례가 말해주는 공통된 공식


d80f99b6f15f3.png코오롱스포츠 상하이 신천지 매장


최근 중국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K 패션 브랜드 중 하나는 ‘코오롱스포츠’. 이 브랜드는 2024년 약 8,000억 원, 2025년에는 1조 1,000억 원(추정치)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고속 성장 중이다. 

그 배경에는 중국 스포츠·라이프스타일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인 안타그룹이 있다. 안타그룹은 이미 휠라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성공을 경험했고, ‘데상트’와 ‘아크테릭스’ 등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며 제조·유통·브랜딩 역량을 검증받은 기업이다. ‘코오롱스포츠’의 성장은 브랜드 수출이 아니라 검증된 현지 메이저 플레이어와의 결합에서 출발했다.

‘MLB’ 역시 중요한 사례다. ‘MLB’는 단일 메가 파트너 모델은 아니었지만, 중국 전역의 유력 대리상들이 충분한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다. 그 결과 단순 라이선스 브랜드를 넘어 중국 내 메이저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현지에서 능력과 신뢰가 검증된 제조·유통 파트너와의 협업, 그리고 그들이 사업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였다.

# 글로벌 비즈니스의 출발점은 ‘파트너’


글로벌 사업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신뢰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다.

그러나 파트너십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정적인 수익을 예측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글로벌 시장에 맞는 가격·마케팅 구조, 적기에 공급 가능한 소싱 경쟁력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즉, 상품 기획부터 소싱, 원가 구조, 유통, 마케팅까지 처음부터 글로벌을 전제로 한 설계가 필요하다.

# K 패션의 ‘도라도’는 누구인가



61e5c19663be5.jpg[사진=JTBC 싱어게인 4 화면 캡쳐]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 브랜드의 ‘도라도’는 누구인가. 도라도는 단순한 홍보 파트너가 아니다. 우리 브랜드로 명성을 얻고, 실제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현지 제조·유통 파트너다. 그들이 참여할수록 이익이 커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때, 글로벌 사업은 지속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전제 조건의 출발점은 하나다. 공급망 혁신을 통한 원가 개선이다.

# K 패션의 ‘콜마·코스맥스’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K 뷰티 산업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K 뷰티가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한국콜마, 코스맥스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파트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순한 OEM 기업이 아니라 브랜드의 성공을 함께 설계하고, 글로벌 고객사의 수익 구조를 이해하며, 산업 전체의 스케일을 키운 플랫폼형 제조 파트너였다.

반면 K 패션에는 아직 이 역할을 담당하는 제조 플랫폼이 부재하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형 패션 콜마·코스맥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민간 기업, 정부, 연구기관이 함께 디지털 기반 제조 인프라, 글로벌 대응 가능한 원가 구조, 중소 브랜드도 활용 가능한 공용 제조 플랫폼 구축에 나서야 한다.

# 함께 잘되는 구조로 가야 한다


K 패션의 글로벌 성공은 더 많은 매장을 여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좋은 소비자, 좋은 파트너, 그리고 함께 이익을 나누는 구조에서 출발한다. K 팝이 그랬듯 K 패션 역시 이제 혼자 잘하는 단계를 넘어 함께 잘되는 구조를 만드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서 있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브랜드의 ‘도라도’는 누구인가?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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