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K패션, 이제는 “어떤 플랫폼에 올라타느냐”의 문제다

정인기 에디터
2026-02-02

[K패션의 ‘도라도’③]

K패션, 이제는 “어떤 플랫폼에 올라타느냐”의 문제다

누가 K패션의 글로벌 스케일업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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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트&레크레이션 상하이 매장


<싱어게인4>의 ‘도라도’는 개인의 스토리를 넘어 하나의 구조를 보여준 상징이었다. 이미 커리어가 검증된 해외 아티스트가 K팝이라는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K팝이 더 이상 ‘수출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들어가면 커리어가 커지는 산업 플랫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핵심은 스타성이 아니라 구조였다. 참여하면 무대가 커지고, 수익이 확장되는 시스템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도라도’ 스토리를 패션산업에 응용해 첫번째는 ‘매력적인 콘텐츠(①1월 8일자)’로, 두번째는 ‘해외 파트너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②1월27일자)’로 풀어봤다. 1, 2편에 이어 이번엔 ‘매니지먼트&스케일업’의 관점에서 ‘K패션의 도라도’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 K팝 성공, 콘텐츠와 구조 & 매니지먼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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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글로벌 진출에는 전략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뒷받침됐다. 사진은 SM엔터테인먼트 사옥

K팝이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단순히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의 등장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이들을 ‘스타’가 아니라 ‘산업 플레이어’로 성장시키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있었다. SM, JYP, HYBE와 같은 기획사들은 연습생 선발과 트레이닝을 넘어 콘텐츠 기획, 브랜드 포지셔닝, 글로벌 시장 분석, 현지 파트너십 구축까지 아우르는 통합 운영 구조를 갖춰왔다. 이 시스템 안에서 아티스트는 단순히 무대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IP이자 글로벌 비즈니스의 주체로 설계된다.


예를 들어 아티스트의 데뷔는 음악 발표로 끝나지 않는다. 음원, 퍼포먼스, 비주얼 콘셉트, 팬덤 플랫폼, 글로벌 투어, 브랜드 협업, 굿즈 판매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 속에서 하나의 팀이 장기 로드맵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아티스트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역시 기획사가 투자와 파트너십을 통해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매니지먼트 회사는 단순 중개자가 아니라 리스크를 선투자하고 성장을 설계하는 산업 인프라 역할을 수행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시스템이 ‘국내 성공 후 해외 진출’의 단계적 모델이 아니라 처음부터 글로벌을 전제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곡 제작 단계에서부터 해외 작곡가, 안무가, 프로듀서와 협업하고, 데뷔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한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을 병행한다. 글로벌 팬덤 플랫폼 운영, 현지 공연 기획, 로컬 유통사와의 협업 등은 모두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구축한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결국 K팝 아티스트의 글로벌 성장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산업 시스템의 완성도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잘하는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역할을 넘어, 아티스트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설계하는 구조였다. 도라도가 K팝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바로 이 구조가 외부 플레이어에게도 매력적인 산업 플랫폼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지금 패션 산업엔 ‘브랜드’가 아닌 ‘산업 인프라’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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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직진출이 아닌 안타와 손을 잡고 중국 진출에 성공한 코오롱스포츠. 코오롱스포츠는 최근 외국인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명동에 대형 매장을 오픈했다. 


“그렇다면 패션 산업에는 이런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K패션으로 이어진다. 앞선 ②에서 살펴봤듯 중국 시장에서 바이어는 더 이상 디자인을 사지 않는다. 구조를 산다. 그리고 그 구조란 단순히 브랜드 내부의 기획 체계를 넘어, 브랜드가 올라탈 수 있는 산업 인프라까지 포함한다. 결국 K패션의 글로벌화는 “어떤 브랜드가 나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 위에 올라타느냐”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K패션의 스케일업을 위한 파트너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가상의 ‘A社’를 설정해보자. A社는 패션 브랜드를 대신해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가 실제로 일어나도록 만드는 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단순한 유통상도, 마케팅 대행사도 아니다. 이 회사의 역할은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글로벌 커머스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우선 A사는 트래픽을 이해하고 다루는 조직이어야 한다. 오늘날 중국 시장에서 판매는 매장이 아니라 콘텐츠에서 시작된다. 라이브커머스, 왕홍 네트워크, 플랫폼 계정 운영 능력이 없으면 상품은 노출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명확히 체크해야 할 것은 단순 인플루언서 연결이 아니다. 방송 기획, 스토리 구성, 팬덤 운영까지 포함된 엔터테인먼트형 커머스 구조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상품을 정보로 파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로 파는 능력, 이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그러나 트래픽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 조건은 가격 구조를 맞출 수 있는 공급망 이해다. 중국 커머스 환경에서는 왕홍 수수료, 플랫폼 수수료, 물류, 세금까지 고려했을 때 브랜드가 일정 수준 이상의 배수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판매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A사는 단순 판매 채널이 아니라 브랜드의 공급 구조를 글로벌 가격 체계에 맞게 재설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 생산 네트워크, 원가 조정, 납기 단축, 재고 회전 개선까지 이어지는 공급 인프라가 뒤따르지 않으면 어떤 마케팅도 장기적으로는 실패한다.


# 브랜드는 ‘기세’, 누가 K패션에 마켓캡을 씌우고 있나?


여기서 하나 더 짚어야 할 중요한 지점이 있다.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상품적으로 주목받고 품질에서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파트너들이 수익성을 예측하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품 기획 단계부터 가격 전략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이 시장의 판을 좌우하는 환경 속에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와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들의 기세는 상당 부분 눌려 있다. 

특정 플랫폼들이 가격이 낮은 PB를 시장의 기준치처럼 설정하면서, 국내 브랜드들은 당장 눈앞의 판매와 생존을 위해 가격을 맞추는 데 급급했고, 그 결과 충분한 마케팅 비용 구조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 이는 개별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차원의 과제다. 애초에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의 가격 질서와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전략도 필요하다. 실제로 아더에러, 젠틀몬스터, 웰던, 우영미와 같은 브랜드들이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과 거리를 유지해 온 배경 역시 브랜드의 가격 위상과 글로벌 포지셔닝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 브랜드 구조를 맞추다 보면, 억지춘향식의 ‘마켓 캡’을 쓸 수밖에 없다.


# 글로벌 스케일업 파트너가 갖춰야 할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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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는 매장이 아니라 콘텐츠에서 시작된다

세 번째는 운영 인프라다. 라이브 방송에서 판매가 일어난 뒤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물류, 통관, CS, 반품 처리, 플랫폼 스토어 운영까지 이어지는 백엔드 시스템이 없다면 판매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 A사는 브랜드가 중국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이지 않는 운영 구조를 대신 굴리는 회사여야 한다. 이것이 가능할 때 브랜드는 ‘중국 진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고 있는 판매 시스템 안에 연결된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하다. 글로벌 소비자는 상품만 소비하지 않는다. 콘텐츠와 이미지를 함께 소비한다. 따라서 A사는 단순 커머스 회사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콘텐츠 네트워크와 연결된 구조를 갖춰야 한다. 드라마 노출, 셀러브리티 협업, 플랫폼 콘텐츠 연계 같은 요소들이 브랜드를 ‘판매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 있는 상품’으로 만든다. 이는 광고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 안에서의 노출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이 네 가지 조건, △트래픽 기반 커머스 실행력, △글로벌 가격 구조를 맞출 수 있는 공급망 이해, △운영 인프라, △콘텐츠·엔터 연계 능력이 합쳐질 때 비로소 A사는 K패션의 글로벌 스케일업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 회사의 본질은 유통사가 아니라 패션 브랜드를 위한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 기업이다.


# K패션, 지속가능한 산업 인프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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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사이 중국에 공격적으로 매장을 오픈하고 있는 레스트&레크레이션 


2026년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 K패션은 산업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동안 우리는 좋은 브랜드를 많이 만들었지만, 그 브랜드를 세계 시장으로 보내는 시스템은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SM과 하이브가 있고, 뷰티 산업에 콜마와 코스맥스가 있듯, 패션 산업에도 브랜드의 역량을 산업 단위로 증폭시키는 인프라 기업이 필요하다.


결국 ‘도라도’가 보여준 것은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구조의 힘이었다. K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는 혼자 뛰는 브랜드가 아니다. 잘 설계된 시스템 위에 올라탄 브랜드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중국에 진출할 준비가 됐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플랫폼형 파트너와 함께 갈 것인가?”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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