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전시회] 21세기가 잃은 진보적 디자이너 ‘헬무트 랭: 작업 세션’

박진아 디토리안
2026-03-20

21세기가 잃은 진보적 디자이너 ‘헬무트 랭: 작업 세션’

그는 미니멀리즘으로 앞서 간 아방가르드였나?

집중적 20년 커리어 정리한 종합 전시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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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MZ세대들에게는 낯설지만 1970년대 이후 태어난 앞 세대라면 한 두 번쯤은 들어 알고 있는 고급 패션 브랜드 ‘헬무트 랭(Helmut Lang)’. 그가 지금 ‘조용한 럭셔리’의 유행을 타고 다시금 패션사에서 재발견되고 있다.

f21b1f2a851f4.jpg⟪HELMUT LANG. SÉANCE DE TRAVAIL 1986–2005⟫ 전이 열리는 MAK 전시장 광경, Chapter IDENTITY/ Excerpts from the MAK Helmut Lang Archive. © kunst- dokumentation.com/MAK

오스트리아 비엔나 소재 빈 응용미술박물관(Museum für angewandte Kunst Wien, 이하 MAK)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국제적 패션 디자이너 헬무트 랭(Helmut Lang)이 20년 동안 이룬 그의 커리어를 총정리한 전시회 ⟪헬무트 랭: 작업 세션(Helmut Lang Séance De Travail 1986–2005)⟫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MAK 빈 응용미술관만큼 헬무트 랭의 커리어 최고조기를 종합한 개인전을 기획하고 전시하는데 더 없이 이상적인 자리가 또 있을까? 전위적 애티튜드와 미니멀리즘을 최초로 개척한 헬무트 랭은 20세기 오스트리아에서 배출된 가장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였음과 동시에, 그가 2011년에 MAK에 직접 기증한 개인 기록물, 공개적 자료, 작품 일체가 소장돼있는 자료 보관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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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회 제목이 시사하듯, 국제 패션계에 이름을 올린 1986년 창작의 불꽃을 튀웠다가 갑자기 사라진 2005년까지, 꼭 20년의 그에 대한 아카이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 1986-2005, 20년의 아카이브 전시


1956년 빈에서 태어나 구두제작 장인이던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며 수제화 기술을 배웠던 그는 무역업을 공부하던 중 맞춤 복장에 이끌려 독학으로 양장술을 익혔다. 그러던 중 1986년 빈 세계박람회에서 여성복 컬렉션을 전시하며 유망주로 주목받은 것을 계기로 파리로 건너가 티에리 뮈글러, 장-폴 고티에, 질 샌더와 어깨를 겨루며 파리패션위크 런웨이 무대를 장식한 스타 디자이너로 급부상했다.

이후 헬무트 랭의 패션 조형 언어는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해체주의, 스트리트웨어, 애슬레저, 코프코어 룩(아웃도어 스포츠 기능성 의류)을 기반으로 해 도시적 미니멀리즘을 한데 융합시킨 1990년 패션계 일맥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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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랭은 그의 뉴욕 시절 건축가 리처드 글룩만(Richard Gluckman)과 사진가 위르겐 텔러과 협업하며‚ 1980년대 패션 미디어 홍보 황금기를 이룩했다. 사진: Jürgen Teller


무장식의 깔끔 단정한 라인과 날카로운 재단으로 정의되는 독일 디자이너 질 샌더(Jill Sander)와 휴고 보스(Hugo Boss)가 보수적 중상층 고객에 호소했다면, 랭의 비대칭성, 비정형적 소재, 왠지 모를 원초적 실험성은 맨해튼 다운타운 나이트 클럽, 예술가, 도시 보헤미언들에게 호소했다.

나일론, 고무 등 비정형적 소재와 파격적인 재단, 공장복을 연상시키는 심플함 VS. 여러 겹으로 레이어링한 무심함, 고도로 규율적인 재단 재봉 수공 작업 VS. 실험성, 고급스러움 VS. 저급함, 아이러니하게 이 모든 것이 그를 서사하는 수식어들이다.

헬무트 랭의 복장 조형 언어는 미국 대중 문화로부터 영감받은 1980년대식 화려함과 과장된 파워와 볼륨(칼 라거펠트, 볼프강 요옵이 대표적)을 강조한 ‘파워와 과잉’의 스타일에 정반대되는 이른바 ‘적은게 더 낫다(less-but-better)’의 복장 미니멀주의 계보를 대변한다 하겠다.

1998년은 헬무트 랭 브랜드가 미국 뉴욕을 점령하기 시작한 해다. 그는 빈에서 운영하던 맞춤식 양장점 문을 닫고 뉴욕으로 건너가 당시 경쟁 패션 하우스들이 미처 상상치 못한 파격적 런웨이 쇼와 미디어 홍보 전략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33cfb2d3f3cc9.jpg⟪HELMUT LANG. SÉANCE DE TRAVAIL 1986–2005⟫ 전시 중 SÉANCE DE TRAVAIL 캣워크 무대와 관객 배치도를 재현한 MAK 전시장 광경/ Excerpts from the MAK Helmut Lang Archive. MAK Exhibition Hall © kunst-dokumentation.com/MAK

뉴욕에처 처음 가진 1998/99년 추동 런웨이 쇼는 높은 무대 아래에 초열에 초대된 유명인들을 앉혀놓은 채 모델들이 워킹, 포즈 잡기, 터닝 후 퇴장하기를 반복하는 진부한 ‘워크(walk)’ 관례가 과감히 내던져진 획기적 사건이었다.

당신은 파리의 노천 카페에 앉아 거리를 지나치는 흥미로운 통행인을 감상하는 미적 경험을 아는가? 당시 헬무트 랭이 직접 기획하고 지휘한 그 유명한 ‘작업 세션(Séance De Travail)’ 패션쇼 무대와 관객 좌석 계획도는 미술 화랑 공간을 캣워크 무대로 탈바꿈시킨 패션사의 혁신이었다. 이번 MAK 전시회에서 세심하게 재구성돼 관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재현돼 관객의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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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웨이와 뉴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이룬 혁신가


그가 뉴욕 공략을 위해 선택한 무기는 다름 아닌 뉴 테크놀로지였다.

이듬해 그는 파리, 밀라노, 런던 패션위크 행사 보다 앞질러 신상을 소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1999년 춘추복 런웨이 쇼를 9월 초로 앞당기고 인터넷 월드와이드웹(WWW)과 CD-ROM으로 패션쇼를 공개했는데, 이를 계기로 헬무트 랭은 통상 9월 중순 뉴욕컬렉션 스케줄을 9월 초로 영구적으로 변경시킨 주인공이 됐다.

a7dc89780e8e4.jpg그는 세계 최초로 1998/99년 추동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을 CD롬에 저장해 발표했다. 사진 출처: © kunst-dokumentation.com/MAK

신호등에 빨강등이 켜지든 녹색등이 켜지든 항상 앞으로 씩씩하게 활보전진해야 생존할 수 있는 도시 ‘뉴욕’. 뉴욕 도로의 진풍경인 ‘옐로캡’ 노랑색 택시 지붕 표시등 1000개에 헬무트 랭 브랜드 로고를 붙여 홍보한 광고 캠페인은 오늘날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의 거리의 정처 없고 불확실한 생리와 뉴요커들의 인생 철학을 흑백 신호판과 굵직한 대문자 산세리프 서체로 응축시킨 개념주의 언어미술로 승격시켰다 할 만하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전성기 20년 동안 세계 무대를 빛냈던 헬무트 랭의 핏 속에는 늘 예술가로서의 정서와 아이덴티티가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파워를 활용, 현대 개념주의 미술가 제니 홀처(Jenny Holzer)와 조각가 루이즈 부르조아(Louise Bourgeouis)와 친분을 나누며 패션-미술-음악-건축 간 경계를 가로지르는 ‘1990년대 헬무트 랭 아이덴티티’를 창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탈리아 피렌체 비엔날레(1996년)와 제니 홀처 개념주의 향수 광고 아트캠페인(2000년)으로 열매를 맺은 헬무트 랭과 두 여류 미술인과의 협업을 거쳐 탄생한 헬무트 랭 조형 언어는 훗날 산업적 미학과 미니멀리즘이 깃듯 라프 시몬스, 레디 슬리만, 뎀나, 피비 파일로, 뮤차 프라다로 이어지는 차세대 전위적 개념주의 패션 계보가 탄생하는 자양분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9bbe099d623a2.jpg뉴욕 맨해튼의 명물 노랑 택시의 지분 표시등을 이용한 광고 캠페인. 당시 헬무트 랭은 택시 1000대에 로고 광고를 실시했으나 현재 MAK 자료실에 2점 만이 남아있다. 사진: © kunst-dokumentation.com/MAK

# [작업 세션] 전시, 상실감에 대한 회상


그러던 그는 2005년 어느 날 홀연히 패션계 은퇴를 공식 선언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프라다 그룹에 매각하고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조각가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모름지기 인간이란 재능있는 자를 향한 기대와 잠재력으로부터 영감 받고 그가 새로운 정점을 달성해 나가는 성공 내러티브를 갈구하는 존재다. 인생의 정점에서 빛나는 성취와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로 떠나라는 격언에도 불구하고 헬무트 랭의 갑작스러운 패션계 퇴장 선언이 허탈감과 묘한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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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헬무트 랭 추동 남성복 및 여성복 런웨이 쇼 광경. 사진 속 모델은 커스튼 오웬(Kirsten Owen). 사진: © kunst-dokumentation.com/MAK


그가 패션 디자이너로 구축했던 문화적 영향력과 창조적 유산을 뒤로 하고 미술가로 전향함으로써 우리네 패션 애호가들은 지난 20년 헬무트 랭 브랜드와 크리에이티브를 잊은 채 살았고, 이번 MAK의 ⟪ 헬무트 랭: 작업 세션(Helmut Lang Séance De Travail 1986–2005)⟫ 전시는 다시 한 번 그 상실감을 진하게 회상하며 2026년 5월 3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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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디토리안


박진아 디토리안은 사회학・미술사학 전공 후 1998년부터 해외 유수 미술관 근무 경험과 미술 평론과 디자인 저널리즘 경력을 바탕으로 미술 커뮤니티와 대중 독자 사이를 잇는 문예 평론가로 정진 중. 21세기 최신 현대 문화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슈, 형상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통찰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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