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패션] 中 해상 실크로드의 심장, 스포츠·패션 제국으로 진화

정인기 에디터
2026-03-30

中 해상 실크로드의 심장, 스포츠·패션 제국으로 진화

민난 경제벨트, 생산·유통·브랜드·본사 기능 집적한 거대 클러스터

안타(ANTA)·터보(Xtep)·361°·치피량 등…중국 스포츠&패션 성장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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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취안저우 구시가지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를 중심으로 한 민난 경제권이 중국 스포츠·패션 산업의 실질적 심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겉으론 조용한 지방 도시권처럼 보이지만, 취안저우(泉州)·진장(晋江)·쓰쓰(石狮)·샤먼(厦门)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생산, 유통, 브랜드, 본사 기능이 한데 맞물린 초대형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 패션산업의 구조를 읽으려면 이 지역을 빼놓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취안저우의 출발점은 무역이었다. 남송과 원나라 시기 이곳은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동방 최대 국제항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당시 아랍과 페르시아 상인들이 모여들며 축적한 개방성과 상업 중심 문화는 지금도 지역 산업 구조의 바탕으로 남아 있다. 취안저우가 단순한 생산기지를 넘어 외부 자본과 기술, 브랜드를 흡수하고 다시 확장하는 데 강한 이유도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맞닿아 있다.

이 지역의 경쟁력은 값싼 생산능력에만 있지 않다. 외부와 연결하고, 협업하고, 이를 산업 전체의 성장으로 전환하는 구조가 이미 자리 잡고 있다. 빠른 의사결정과 높은 협업 수용성, 네트워크 중심의 사업 문화가 결합하며 민난 경제권은 중국 안에서도 독특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해외 브랜드에 이 지역이 단순한 제조 거점이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십의 무대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정환영 슈원 대표는 “중국 패션시장에 진출하는 해외 기업들에게 취안저우는 협업 파트너를 만나는 전략적 지역”이라며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을 공략할 때도 민난계 화교 네트워크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 생산·유통·브랜드가 한곳에…민난 경제권의 압축 성장


753f8766f1a62.jpg취안저우 도시 전경

현재 취안저우를 중심으로 한 산업 벨트는 지역별 역할 분담이 뚜렷하다. 진장은 세계적 운동화 생산기지다. 글로벌 브랜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경험을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 경쟁력까지 끌어올렸다. 

쓰쓰는 대규모 의류 도매시장과 캐주얼웨어 생산 기반을 앞세워 유통 기능을 담당한다. 취안저우는 이 흐름을 통합하며 브랜드와 자본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샤먼으로 본사 기능이 집중되면서 대외 비즈니스와 관리 기능까지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이 구조의 핵심은 생산, 유통, 브랜드가 하나의 지역권 안에서 완결된다는 점이다. 중국 패션산업이 속도와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 배경에는 이런 클러스터 모델이 있다. 특히 민난 경제권은 OEM에서 출발해 제조자개발생산(ODM)을 거쳐 자체 브랜드를 키워낸 사례가 많다.  단순 하청 생산지를 넘어 브랜드를 직접 만들고 키우는 산업 생태계로 진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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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그룹 샤먼 본사


이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성장도 뚜렷하다. 스포츠웨어에선 안타(安踏·ANTA), 터부(特步·Xtep), 361도(361度·361°)가 핵심 축이다.  남성복과 캐주얼 부문에선 리랑(利郎·LILANZ), 치피량(七匹狼·Septwolves), 조원(九牧王·Joeone), K-복싱(劲霸男装·K-Boxing)이 대표 주자로 꼽힌다. 

한국 기업들에겐 낯설 수 있지만, 이들은 중국 내수시장에서 오랜 기간 유통망과 브랜드 인지도를 쌓아온 중량급 기업들이다. 터보는 2019년 미국 K-Swiss를 인수했으며, 치피량은 Karl Lagerfeld의 중국 상표권을 인수하는 등 브랜드 IP 기반 사업에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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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제곱미터에 이르는 터부 플래스십스토어 전경


특히 안타그룹은 민난 경제권의 위상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제조 기반에서 출발해 중국 대표 스포츠웨어 기업으로 성장했고, 공격적인 브랜드 확장과 유통 전략으로 몸집을 키웠다. 터보와 361도 역시 중국 스포츠웨어 시장에서 강한 입지를 구축한 토종 브랜드다. 

리랑, 치피량, 조원, K- 복싱은 중국 남성복 시장에서 각기 다른 가격대와 스타일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워왔다. 민난 경제권이 단지 공장 밀집 지역이 아니라 브랜드 배출지라는 사실은 이들 기업이 보여준다.

# 한국 기업엔 실전형 중국 진출 거점…협업 구조 이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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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부 샤먼 본사


한국 기업에 더 중요한 대목은 이 지역이 이미 다양한 협업 경험을 축적했다는 점이다. 안타와 휠라, 코오롱스포츠의 협업 사례를 비롯해 조원과 지오지아의 협력 사례가 거론된다. 최근에는 K-Swiss 글로벌 상표권을 인수한 터보그룹(Xtep Group) 계열이 한국 BYN과 합작법인(JV)을 세워 K-Swiss 한국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민난 지역 기업들이 단순 생산을 넘어 브랜드 운영과 파트너십 구조를 이해하고 실행할 역량을 갖췄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취안저우를 포함한 민난 경제권은 한국 패션기업에 현실적인 중국 진입 플랫폼으로 읽힌다. 생산, 유통, 브랜드 운영 역량을 동시에 갖춘 파트너군이 밀집해 있어 하나의 협력 구조만으로도 중국 시장 진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동남아 시장까지 겨냥한 확장 전략에서도 활용 가치가 적지 않다.

다만 이 지역의 비즈니스는 철저히 네트워크 중심으로 움직인다. 기업 간 신뢰와 추천이 거래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고,  중개자와 어드바이저의 역할도 크다. 외부 기업 입장에선 단기간에 접근하기 쉬운 시장은 아니다. 반대로 한 번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면 중국 내수는 물론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확장할 가능성도 크다.

취안저우는 더 이상 과거 해상 무역의 상징에 머무는 도시가 아니다. 지금의 취안저우와 민난 경제권은 중국 패션산업의 실질적 기반이자 새로운 변화의 현장이다. 인공지능 기반 기획, 반응 생산 체계, 글로벌 네트워크와 거대 자본이 결합하며 이 지역 산업은 다시 한번 변신하고 있다. 

한국 패션업계가 주목해야 할 지점도 분명하다. 한국은 디자인, 브랜딩, 콘텐츠 경쟁력을 갖고 있다. 민난 경제권은 생산과 유통, 네트워크 인프라를 쥐고 있다. 양측 역량이 결합하면 단순한 공급 계약을 넘어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 여지가 크다. 취안저우는 과거의 무역항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스포츠·패션 산업의 판을 짜는 현재형 거점이다.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h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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