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스페셜리포트 ②] 패션기업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

정인기 에디터
2026-07-22

[스페셜리포트 ②]

패션기업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

항저우 주어상이 보여준 브랜드 성장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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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이제는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를 키우며, 글로벌 시장을 설계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항저우의 주어상은 그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기사는 주어상의 사례를 통해 디지털 이커머스 시대 패션기업이 갖춰야 할 
제조·공급망·브랜드 운영 인프라를 살펴보고 
K-패션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안한다. 


 # 브랜드를 직접 키우고 투자한다…패션 액셀러레이터로


0e7964068e568.jpg디자이너 성장을 지원하는 창업 플랫폼 ‘상가(尚+·SUN+)’ 오프라인 쇼룸


주어상의 가장 큰 특징은 자체 브랜드의 성공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는 외부 디자이너와 창업자, 신생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에도 투자한다.

주어상은 저장이공대와 함께 ‘상가(尚+·SUN+)’ 창업 플랫폼을 운영한다. 이 플랫폼을 통해 70개가 넘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육성했다.

신생 브랜드에는 쇼룸과 라이브커머스 스튜디오, 사무공간을 제공한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에는 직접 투자한다. 생산 지원에 그치지 않고 상품기획과 유통, 마케팅, 물류, 투자까지 연결한다. 주어상이 제조기업을 넘어 패션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신생 브랜드가 실패하는 이유는 디자인 경쟁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초기 생산비와 재고 부담, 유통망 확보, 마케팅 비용, 운영인력 부족이 성장을 가로막는다. 상품이 시장의 주목을 받아도 추가 생산과 배송을 감당하지 못해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주어상의 인큐베이팅 모델은 브랜드가 각 기능을 개별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낮춘다. 브랜드는 디자인과 콘텐츠, 고객 확보에 집중하고 주어상은 상품화와 생산, 유통, 운영을 지원한다.

량잉빈 본부장은 주어상과 입점 브랜드의 관계를 단순한 발주와 납품의 관계로 보지 않았다.

“우리는 브랜드가 성공해야 우리도 성장합니다. 그래서 브랜드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인프라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이 발언은 주어상의 수익구조가 제조 수수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망 브랜드를 초기부터 발굴하면 생산 물량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성장 가치에도 참여할 수 있다. 제조기업이 주문량이 아닌 브랜드의 기업가치 상승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6a14b5f05227e.jpg입점 브랜드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소재 라이브러리


이 같은 구조는 디지털 이커머스 시대에 제조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제조 서비스의 고도화다. 생산만 맡는 OEM에서 디자인과 소재 개발을 지원하는 ODM으로 확장한다. 다시 데이터와 물류, 유통까지 제공하는 통합 서비스로 진화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브랜드 공동 운영이다. 파트너 브랜드와 중국 시장에 맞는 상품을 함께 기획하고 판매 채널과 마케팅, 물류를 공동 운영한다. 생산기업이 공급자에 머물지 않고 사업 성과를 공유하는 운영 파트너가 된다.

세 번째는 라이선스 사업이다. 해외 브랜드의 지식재산권과 중국 현지의 상품기획·생산·유통 능력을 결합한다. 브랜드는 직접 대규모 조직을 구축하지 않고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전략적 투자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에 생산 인프라와 자금을 함께 제공한다. 제조기업은 납품 이익뿐 아니라 브랜드의 성장 가치에도 참여한다.

다섯 번째는 공동 브랜드 개발이다. 한국의 디자인과 콘텐츠 경쟁력에 중국의 공급망과 디지털 유통 역량을 결합해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 모델의 핵심은 제조와 브랜드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데 있다. 단순 납품 관계에서는 생산 물량이 끝나면 협력도 끝난다. 공동 운영이나 투자 구조에서는 양측이 브랜드의 장기적인 성장에 함께 책임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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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패션의 다음 10년…좋은 공장보다 강한 성장 인프라가 필요하다


d542ba9bf95fb.jpg주어상이 지원하고 있는 Maker Star

주어상이 K-패션을 주요 파트너로 주목하는 배경은 양국 패션산업의 강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디자인과 브랜딩, 콘텐츠 제작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뷰티 등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은 패션 브랜드가 해외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넓혀 왔다. 반면 다수의 한국 패션기업은 글로벌 사업을 운영할 인프라가 부족하다. 해외 소비자의 수요를 확인해도 현지 상품기획과 생산, 재고관리, 배송, 반품, 고객서비스를 직접 구축하기 어렵다.

중국 시장에서는 현지 플랫폼과 라이브커머스, 소비자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판매가 늘면 빠르게 상품을 추가 생산해야 한다. 여러 지역에 안정적으로 배송할 물류망도 갖춰야 한다.

주어상은 중국의 제조·소싱 기반과 전국 단위 유통망, 디지털 플랫폼 운영, 라이브커머스, 물류 역량을 갖추고 있다. K-패션의 창의성과 주어상의 운영 인프라가 결합하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량잉빈 본부장도 한국 브랜드의 창의성과 중국 공급망의 결합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두 역량이 만나면 중국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협력 방식은 단순한 OEM 발주에 머물 필요가 없다. 라이선스 계약과 공동 브랜드 개발, 전략적 투자, 중국 시장 공동 운영, 글로벌 유통 협력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

한국 브랜드가 주어상과 협력할 경우 중국 시장 진입에 필요한 초기 비용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현지 소비자에 맞는 상품을 공동 개발하고 기존 생산·물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라이브커머스와 디지털 유통 노하우도 확보할 수 있다. 이 협력은 중국 판매를 위한 전략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어상의 반응생산과 공급망을 활용하면 한국 시장에서도 재고 부담을 줄이고 리드타임을 단축할 수 있다.

특히 온라인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는 초기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대량생산을 하면 재고 위험이 커지고 소량생산을 하면 원가가 높아진다. 판매가 늘어도 추가 생산이 늦으면 성장 기회를 놓친다. 소량 초도생산과 빠른 리오더가 가능한 체계는 이 문제를 완화한다.

브랜드는 상품을 시장에 먼저 선보인 뒤 실제 판매 데이터에 따라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이는 글로벌 진출에 앞서 상품의 시장성을 검증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f4f852f27b0b1.jpg지원 브랜드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라이브커머스 인프라

K-패션 기업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려면 몇 가지 기반을 갖춰야 한다.

먼저 디자인과 생산을 데이터로 연결해야 한다. 디자이너의 감각과 기획자의 경험은 중요하지만 판매 데이터와 검색량, 콘텐츠 반응, 고객 리뷰가 상품기획에 반영돼야 한다.

두 번째는 소량 생산과 신속한 추가 생산이 가능한 공급망이다. 해외 시장에서는 국가와 채널마다 수요가 다르다. 처음부터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테스트 판매와 리오더를 전제로 공급망을 설계해야 한다.

세 번째는 소재 개발 능력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디자인만으로 차별화하기는 어렵다. 브랜드 고유의 원단과 기능, 착용감, 색상은 모방을 어렵게 하고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게 한다.

네 번째는 통합 재고와 물류 시스템이다. 온라인몰과 플랫폼, 오프라인 매장의 재고가 따로 관리되면 판매 기회를 놓치고 과잉재고가 발생한다. 주문과 출고, 반품, 재판매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관리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콘텐츠와 커머스의 연결이다. 소셜미디어와 라이브커머스는 마케팅 채널이자 판매 채널이며 소비자 조사 도구다. 콘텐츠 반응을 상품기획과 생산계획에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여섯 번째는 현지 운영 파트너다. 해외 법인이나 매장을 먼저 설립하는 방식만이 글로벌 진출은 아니다. 현지 시장의 생산과 유통, 물류, 소비자 데이터를 가진 기업과 협력하면 진입 속도를 높이고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일곱 번째는 브랜드 가치와 운영 성과를 공유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단순한 발주·납품 관계에서는 시장 변화에 공동 대응하기 어렵다. 공동 기획과 수익배분, 라이선스, 지분투자 등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설계해야 한다.

주어상이 K-패션에 던지는 가장 큰 시사점은 중국에 좋은 공장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디자인과 제조, 데이터, 유통, 물류, 투자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70e87155bf03c.jpg직배송 서비스가 가능한 물류 인프라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많은 상품을 만드는지를 두고 벌어지지 않는다. 누가 시장의 반응을 더 빨리 읽고 공급망을 움직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브랜드의 규모보다 운영 인프라의 완성도가 성장 속도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제조기업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품질과 가격, 납기를 관리하는 생산 파트너에서 브랜드의 시장 진입과 성장을 설계하는 사업 파트너로 이동해야 한다.

브랜드 역시 제조를 외부 업무로만 봐서는 안 된다. 공급망은 브랜드 경험의 일부다. 상품의 품질과 배송 속도, 재고 안정성, 반품 대응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주어상은 브랜드가 성공해야 공급망 기업도 성장한다는 원칙을 사업구조에 반영했다. 브랜드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K-패션의 글로벌 경쟁력은 이미 디자인과 콘텐츠 분야에서 확인되고 있다. 다음 과제는 이 경쟁력을 반복 가능한 사업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한두 개의 인기 상품이나 일시적인 콘텐츠 화제성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국가에서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판매할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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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uoshang Apparel 丁武杰(딩 우지에) 회장


주어상이 보여주는 모델은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브랜드 기획과 콘텐츠 역량에 중국의 제조와 공급망, 디지털 커머스, 물류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 진출 자체가 아니다. 중국의 거대한 소비시장과 발전된 디지털 유통 생태계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브랜드 운영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패션산업의 경쟁 방식은 이미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좋은 디자인과 좋은 공장이 있으면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소비자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시장 반응에 따라 생산량을 조정하며 빠르고 정확하게 상품을 배송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개별 공장이 아니라 생태계다.

주어상은 중국 제조업이 생산기지에서 브랜드 성장 플랫폼으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K-패션 기업이 중국과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어떤 인프라와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해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K-패션의 다음 10년은 더 저렴한 공장을 찾는 경쟁이 아니다. 디자인과 콘텐츠의 경쟁력을 데이터와 공급망, 유통, 물류, 투자로 연결하는 경쟁이다. 항저우의 주어상은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Dito Insight

주어상이 보여주는 핵심은 ‘중국 제조’가 아니라 ‘브랜드 성장 운영체제’다. 디자인과 콘텐츠, 데이터와 공급망, 물류와 투자까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할 때 브랜드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앞으로 K-패션의 경쟁력은 더 저렴한 생산처를 찾는 데 있지 않다.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운영 인프라를 확보하는 데 있다.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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