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중국진출 2.0세대 ③] “중국 소비자는 브랜드보다 콘텐츠를 먼저 발견한다”

정인기 에디터
2026-07-28

[중국진출 2.0세대 ③]
“중국 소비자는 브랜드보다 콘텐츠를 먼저 발견한다”

24KR 가오지광 대표가 말하는 K패션의 새로운 기회

우한 거점 매장 연말 두 배 확대…2년 내 20개점 출점 구상

 

c8d204186383d.png
가오지광(高基光) 24KR 대표


중국 패션시장의 경쟁 공식이 바뀌고 있다. K패션의 다음 성장을 결정하는 변수도 더 이상 제품 경쟁력만이 아니다. 현지에서 브랜드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소비자와 연결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24KR은 편집숍과 디지털 콘텐츠, 라이브커머스,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하나로 묶으며 팬데믹 이후 달라진 중국 유통시장의 새로운 진입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디토앤디토는 앞선 【중국진출 2.0세대】 기획에서 상하이 골목 상권으로 파고든 K패션의 변화를 짚었다. 대형 백화점과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됐던 중국 진출 방식이 지역 상권과 편집숍, 팝업스토어를 활용하는 형태로 세분화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시눈’을 비롯한 국내 브랜드가 현지 파트너와 손잡고 중국 시장을 다시 공략하는 움직임도 소개했다.

24KR은 이 같은 변화가 실제 유통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회사는 단순히 한국 패션 상품을 들여와 판매하지 않는다. 브랜드 발굴과 유통, 공간 운영, 콘텐츠 제작, 라이브커머스, 현지 상품 기획을 연결한다. 필요하면 생산과 라이선스 사업까지 맡는다. 스스로를 총판보다 ‘브랜드 운영 파트너(Brand Operating Partner)’로 규정하는 이유다.


63232bd84c879.png24KR 우한 헝룽광장

가오지광(高基光) 24KR 대표가 바라보는 중국 시장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그는 중국 경기가 나빠져 시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성공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한국 브랜드라는 배경만으로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선택해야 할 이유를 콘텐츠와 경험으로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지금 중국에서 성공하는 브랜드는 좋은 디자인을 가진 브랜드가 아닙니다.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메시지를 매일 대화하듯 전달하는 브랜드입니다.”

이 말은 스트리트 캐주얼과 컨템포러리, 디자이너 브랜드가 중국 진출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과제를 압축한다. 국내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었거나 상품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사실만으로 중국 소비자에게 선택받기는 어렵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중국의 플랫폼 문법과 소비 속도에 맞춰 매일 전달할 조직이 필요하다.

중국 소비자의 구매 여정은 이미 하나의 채널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소비자는 샤오홍슈에서 브랜드를 발견한다. 더우인(중국 틱톡)과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통해 반복해서 접한다. 라이브 방송에서 소재와 핏, 스타일링을 확인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경험한 뒤 온라인에서 구매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상품은 출발점이 아니라 여러 접점이 축적된 뒤 선택되는 결과에 가깝다. 브랜드를 만드는 마케팅과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을 따로 운영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콘텐츠와 커머스, 오프라인 경험을 하나의 운영체계로 설계해야 한다.

# 편집숍·콘텐츠·라이브가 하나의 플랫폼이 되다


0d40a565144a8.jpgf11db9f9896e0.jpg

24KR 우한 헝룽광장


24KR이 샤오홍슈를 단순한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브랜드 검색 플랫폼’으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소비자는 광고를 본 뒤 바로 구매하기보다 플랫폼에서 브랜드에 대한 평가와 착용 사례, 매장 경험을 다시 확인한다. 검색했을 때 충분한 콘텐츠가 축적돼 있지 않은 브랜드는 유통망에 들어가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라이브커머스의 역할도 한국 시장의 통념과 다르다. 중국에서 라이브 방송은 재고를 할인 판매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상품의 제작 배경을 설명하고 진행자가 여러 체형에 맞는 스타일링을 보여주는 브랜드 미디어다. 소비자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하면서 신뢰를 쌓는 고객 서비스 채널이기도 하다.

이 구조는 브랜드 서사와 스타일 제안이 중요한 디자이너 브랜드에 특히 유효하다.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는 음악과 아티스트, 서브컬처를 활용한 콘텐츠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 컨템포러리 브랜드는 소재와 패턴, 착용 방식에 대한 설명을 강화할 수 있다. 라이브커머스가 가격 경쟁의 장이 아니라 브랜드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되는 셈이다.

24KR의 경쟁력은 디지털 운영에만 있지 않다. 이 회사는 우한의 핵심 상권인 헝룽광장에서 한국 패션을 중심으로 한 대형 편집숍을 운영하고 있다. 연말까지 공간을 약 두 배로 확대하고 향후 2년 안에 매장을 마카오, 상하이, 선전, 베이징, 항저우 등 20개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4KR이 매장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오프라인 유통에 대한 분명한 관점이 있다. 가오 대표는 매장을 판매의 종착점이 아니라 브랜드 경험과 콘텐츠 생산이 시작되는 장소로 본다. 소비자가 상품을 입어보고 공간을 촬영하며 브랜드를 검색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7541d51578be2.jpg
가오지광 24KR 대표(가운데)

회사가 준비 중인 우한 매장의 공간 전략에도 이런 철학이 반영됐다. 24KR은 ‘24 Hours in Korea’를 이름의 의미로 제시한다. 서울의 낮과 밤, 전통과 현대, 거리의 거친 감성과 정제된 브랜드 경험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모습을 하나의 공간에 담겠다는 구상이다.


단순히 서울을 재현한 테마 공간과는 다르다. 금속과 콘크리트, 노출 구조를 활용한 절제된 구역과 따뜻한 조명, 색채, 장식으로 감성을 강조한 구역을 대비시킨다. 서울을 특정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문화와 리듬이 순환하며 새로운 장면을 만드는 도시로 해석했다.


공간 자체를 소비자가 촬영하고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콘텐츠로 설계한 점도 눈에 띈다. 24KR이 겨냥하는 핵심 고객은 유행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한정판과 협업, 큐레이션 콘텐츠에 민감한 도시 소비자다. 이들에게 편집숍은 상품을 진열한 장소가 아니다.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기록하며 소셜미디어에 확산하는 문화 플랫폼이다.


# 매장은 취향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문화 플랫폼


0fdd046a11c51.jpg
24KR 우한 헝룽광장에 입점한 K패션 브랜드


매장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중국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브랜드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입점 매장의 수와 주문 물량만으로 현지 파트너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매장이 어떤 소비자를 모으는지, 콘텐츠를 얼마나 생산하는지, 온라인 전환을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유통 공간의 가치가 평당 매출만이 아니라 브랜드 노출과 검색, 커뮤니티 형성 능력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24KR은 브랜드 에이전시와 공간 운영, K팝 지식재산권을 결합한 사업 구조도 구축하고 있다. 패션을 넘어 식음료(F&B), 뷰티, 음악, 엔터테인먼트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편집한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개별 상품이 아닌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제안하려는 전략이다.

이 모델은 독립 브랜드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에서 단독 매장을 열기 어려운 브랜드도 공동 공간과 콘텐츠, 아티스트 협업을 통해 시장 반응을 시험할 수 있다. 초기에는 팝업과 편집숍으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성과가 확인되면 단독 매장이나 라이선스, 현지 생산으로 확장할 수 있다.

반대로 준비가 부족한 브랜드에는 위험도 있다. 중국 시장에서 브랜드 운영을 현지 파트너에게 모두 맡기면 단기 매출은 만들 수 있어도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지나친 할인과 무분별한 라이선스는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 파트너의 유통망 규모보다 브랜드 전략을 함께 설계하고 콘텐츠 품질을 관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24KR도 일회성 사입으로는 브랜드와 유통사가 함께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장기 계약을 바탕으로 현지 소비자에게 맞는 상품을 공동 기획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과 라이선스를 연결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했다. 브랜드를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 안에서 함께 키우겠다는 것이다.

# 9월 ‘SEOUL Tex & Tech 2026’에서 중국 진출 전략 공유


22887733f604d.png24KR 우한 헝룽광장

향후 일정은 이 전략을 한국 브랜드와 연결하는 실험대가 될 전망이다. 24KR과 디토앤디토는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SEOUL Tex & Tech 2026’에서 중국 시장의 변화와 진출 전략을 공유할 계획이다. 이후 우한 유통 현장 투어와 ‘CHIC Young Blood’ 공동 프로젝트, 브랜드 발굴, 현지 운영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협력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이 과정이 현실화되면 국내 브랜드는 중국 진출 전 현지 매장과 소비자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시회에서 바이어를 만나 주문을 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브랜드별 콘텐츠 적합성과 가격, 상품 구성, 라이브커머스 반응을 검증한 뒤 진출 단계를 조절할 수 있다.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에는 현지 커뮤니티와 아티스트 협업 역량이 중요하다. 컨템포러리 브랜드는 중국 소비자의 체형과 착장 방식, 기후에 맞춘 상품 구성이 필요하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창작 배경을 짧고 반복 가능한 콘텐츠로 전환해야 한다. 세 유형 모두 현지 전담 인력과 일정한 콘텐츠 생산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점은 같다.

중국 시장은 더 이상 한국에서 완성한 상품을 보내고 판매 결과를 기다리는 수출시장이 아니다. 상품과 콘텐츠, 공간, 커뮤니티를 현지에서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운영시장이다. 중국 소비자의 반응을 상품 기획에 다시 반영할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하다.

24KR의 성장 가능성은 매장 수보다 이 순환 체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브랜드를 모아 놓는 편집숍에 머물면 차별화가 어렵다. 오프라인 경험이 샤오홍슈 검색과 더우인 콘텐츠, 라이브 방송, 재구매로 연결되고 그 데이터가 다시 상품과 공간 기획에 반영돼야 한다.


31f368e8906c7.jpg
가오지광(高基光) 24KR 대표


가오 대표의 시장관은 분명하다.

그는 “중국 소비자는 K패션에 대한 관심을 잃은 것이 아니다. 선택 기준이 높아졌고 브랜드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졌다. ‘한국 브랜드’라는 출신보다 왜 이 브랜드를 지금 입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힘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24KR은 그 답을 편집과 판매가 아닌 운영에서 찾고 있다. 우한의 공간 확대와 다점포 전략, 콘텐츠·커머스 통합, 한국 기업과의 공동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이어진다면 K패션에는 중국 시장을 다시 학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채널이 생긴다.

이제 중국 진출을 검토하는 브랜드 경영자가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어디에 몇 장을 수출할 것인지보다 누가 중국 소비자의 일상 속에서 브랜드를 매일 발견하게 할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24KR이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유통 모델 하나가 아니다. 중국 소비자와 브랜드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중국 시장의 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여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제 K패션도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방식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