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 상승세인데, 왜 아직 LVMH Prize 본상은 없을까?
13년간 LVMH가 선택한 ‘다음 럭셔리’에서 읽는 K패션의 글로벌 스케일업 조건

글로벌 시장에서 K패션의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서울의 신진 브랜드가 파리·밀라노 쇼룸에 들어가고 K팝·K컬처를 등에 업고 세계 소비자의 관심을 끈다. 그런데 세계 신진 디자이너의 가장 강력한 등용문인 LVMH Prize에서는 아직 한국 디자이너의 본상 수상자가 없다.
일본은 2018년 Doublet을 시작으로 Setchu, Soshiotsuki까지 세 차례 본상을 차지했고, 중국도 RUI에 이어 올해 LII가 Karl Lagerfeld Prize를 받았다. 이 차이는 단순한 수상 실적의 문제가 아니다. LVMH가 지난 13년간 무엇을 ‘미래의 럭셔리 브랜드’로 평가해 왔는지를 보면 K패션이 글로벌 브랜드로 스케일업하기 위해 무엇을 더 축적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 LVMH Prize 13년, ‘옷 잘 만드는 디자이너’를 뽑는 대회가 아니다
지난 9월 4일 파리 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열린 제13회 LVMH Prize의 주인공은 벨기에의 Julie Kegels였다.
2026년 2,400명 이상이 지원해 20명이 세미파이널, 9명이 파이널에 올랐고, Julie Kegels는 €400,000와 LVMH 전문가들의 1년간 멘토링을 받았다. 중국 Zane Li의 LII는 Karl Lagerfeld Prize를, 케냐 출신 Anil Padia의 Yoshita 1967은 Savoir-Faire Prize를 각각 받았다.

LVMHPrize-JulieKegels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이 상의 성격이 선명해진다. Jonathan Anderson, Sarah Burton, Nicolas Ghesquière, Marc Jacobs, Nigo, Phoebe Philo, Pharrell Williams와 LVMH 경영진이 직접 파이널리스트를 평가했다.
일반적인 디자인 공모전이 아니라, 오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글로벌 럭셔리 경영자들이 ‘내일의 브랜드’를 직접 골라내는 미래 럭셔리 인큐베이팅 시스템에 가깝다. 그래서 평가의 질문은 ‘이번 컬렉션이 얼마나 멋진가’에 머물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제품과 비즈니스로 반복할 수 있는가, 장차 글로벌 하우스로 성장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상자가 반드시 매출이나 팔로어 1위 브랜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다른 브랜드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고유의 디자인 문법이다. 결국 LVMH가 사는 것은 현재 매출이 아니라 미래의 브랜드 IP다.
# 일본 3 : 한국 0...한·중·일의 격차는 어디서 생겼나

LII VIDEO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아시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나라는 일본이다. Doublet(2018)이 아시아 최초 본상을 차지한 뒤 Setchu(2023), Soshiotsuki(2025)가 뒤를 이었고, Kozaburo Akasaka도 2017년 Special Prize를 받았다.
특히 Soshiotsuki는 2016년 후보에 올랐다가 본상을 받지 못한 뒤 거의 10년간 자신의 언어를 축적해 2025년 결국 본상을 받았다. 일본 전통 공연예술을 현대 남성복·테일러링으로 번역한 결과다. Setchu의 Satoshi Kuwata도 교토에서 출발해 파리·밀라노·런던을 거치며 일본적 사고와 서구 테일러링을 하나의 브랜드 언어로 결합했다.
중국도 달라지고 있다. RUI(2021)에 이어 올해 뉴욕 기반 LII가 Karl Lagerfeld Prize를 받았다. 더 이상 ‘중국 시장을 위한 중국 브랜드’가 아니라 뉴욕·런던·파리 생태계 속에서 처음부터 글로벌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흐름이다.

‘일본적이어서 좋아한다’는 단순화는 안 된다. 핵심은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세계인이 이해할 현대적 디자인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트렌드를 상품화하는 데 익숙해졌지만, 10년간 하나의 디자인 언어를 축적하는 데도 그만큼 익숙한가?
# 한국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13년간 끊임없이 파리의 문을 두드렸다

[사진=LII인스타그램]
한국이 LVMH Prize에서 외면받았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2014년 J.JS LEE, KYE, MINJU KIM부터 BLINDNESS, KANGHYUK, PAF, ASHLYN, KUSIKOHC, JIYONGKIM까지 매 세대 후보군에 올랐다. 가장 높은 성과는 2018년 황록(Rokh)의 Special Prize이며, 2022년엔 ASHLYN이 파이널에 올랐다.
한국의 문제는 세계 무대에 진입할 디자이너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최상위 후보군을 계속 만들어내면서도 마지막 단계에서 본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국 패션 생태계는 상품화·콘텐츠화·셀럽 활용에서 매우 빠르다. 그러나 ‘빠른 브랜드 성장’과 ‘럭셔리 하우스가 될 창작 언어의 축적’은 다른 문제다. LVMH 역대 수상자들은 소재·패턴·테일러링·공예·개인적 서사가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고 다음 시즌으로 진화하며, 옷을 보면 브랜드가 보이는 단계까지 디자인 IP를 축적했다.
한국 디자이너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PAF는 의복의 구조를 새 공식으로 해석하고, KANGHYUK은 인공 소재를 디자인 출발점으로 삼으며, JIYONGKIM은 햇빛에 의한 자연 탈색을 시그니처로 발전시켰다.
LVMH도 그를 소개하며 sun-bleaching과 craftsmanship을 핵심으로 꼽았다. 다음 LVMH 본상 후보는 ‘국내에서 잘 팔린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계 패션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는 브랜드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 ‘잘 팔리는 K브랜드’ 다음은 ‘대체 불가능한 K브랜드’다

YOSHITA 1967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2026년 세미파이널 20명에는 중국·일본·인도·태국·나이지리아·이란 등 다양한 문화권의 디자이너가 포함됐다.
LVMH는 독창적 창작 비전과 전통 craftsmanship에 대한 정교한 해석을 강조했고, 2024년 신설된 Savoir-Faire Prize는 공예·기술 혁신·지속가능성을 별도로 평가한다. 신진 브랜드가 해외 쇼룸에 들어가는 것과 글로벌 하우스로 성장하는 것 사이에는 Creative IP → Product Code → Craftsmanship → Global Community → Business System이라는 긴 축적 과정이 존재한다.
[GRAPHIC] 성장 공식: CULTURAL ROOTS → CREATIVE IP → PRODUCT CODE → GLOBAL VALIDATION → BUSINESS SYSTEM → GLOBAL FASHION HOUSE
지금까지 정책과 기업 투자가 ‘전시회 참가 → 바이어 상담 → 수주 → 매출’이라는 단기 성과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디자이너가 5~10년에 걸쳐 IP를 축적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 컬렉션, 쇼룸, 소재 개발, 아카이브, 생산 파트너, 자본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야 한다. 트렌드가 지나고 셀럽이 바뀌어도 남는 실루엣과 소재, 공법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Soshi Otsuki가 두 번째 컬렉션 이후 10년간 자기 세계를 발전시켜 결국 본상을 받은 과정이 그래서 상징적이다. 한국에도 PAF의 구조, JIYONGKIM의 햇빛, KANGHYUK의 소재처럼 대체하기 어려운 언어가 이미 등장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이들을 빨리 ‘대중 브랜드'로 만드는 게 아니라, 고유성을 지키며 글로벌 비즈니스 시스템을 붙여주는 일이다.
# 핵심은 ‘상’ 자체가 아니라, LVMH가 브랜드를 고르는 ‘기준’이다
LVMH Prize에서 부러워할 지점은 트로피가 아니라, 심사위원단이 던지는 질문은 디자인 언어가 있는가, 반복 가능한 코드로 만들 수 있는가, 글로벌 하우스로 자랄 수 있는가 그 자체다. 이는 K패션이 투자와 레퍼런스를 쌓기 위해 답해야 할 체크리스트이며, 답하려면 디자이너 개인의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작을 사업으로 반복·확장할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K팝이 세계를 흔든 것은 아이돌 개인의 재능만이 아니라, 하이브·SM·JYP·YG가 연습생 발굴부터 트레이닝, 글로벌 유통까지 10~20년간 쌓은 시스템 덕분이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CJ는 1990년대 이후 투자·제작·배급·멀티플렉스를 수직 계열화하며 연간 1조원대 콘텐츠 투자를 이어왔고, 그 위에서 봉준호·박찬욱이 세계적 거장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패션은 어떤가.

2026 LVMH Prize 수상자 Julie Kegels. 올해 LII는 Karl Lagerfeld Prize, Yoshita 1967은 Savoir-Faire Prize를 받았다.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한국에도 삼성패션디자인펀드가 있었다. 정욱준은 2009~2012년 연속 수혜자로 파리 컬렉션을 이어가 오늘의 준지(Juun.J)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펀드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조차 2012년 삼성물산 패션부문(옛 제일모직)의 인하우스 브랜드로 편입됐다.
‘독립적 글로벌 하우스’가 아니라 ‘대기업 포트폴리오 안의 라인’이라는 다른 방향이었다. 상을 받은 다음 세계적 하우스로 키워나갈 매니지먼트 구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고, 십수 년이 지나도 이 펀드와 함께 기억되는 브랜드는 사실상 준지 한 팀에 머물러 있다.
최근 무신사 파트너스의 ‘넥스트 패션 인큐베이터’(최대 3억원 투자·생산 대여금)나 대명화학의 브랜드 인큐베이팅도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초점은 여전히 국내 매출·유통 확대다. 파리 쇼룸, 글로벌 프레스, 공예 연구처럼 ‘디자인 언어를 10년 단위로 축적’하는 인프라와는 결이 다르다. 한국에는 K팝의 하이브·SM·JYP나 영화의 CJ에 해당하는, 개인의 재능을 반복 가능한 글로벌 브랜드 시스템으로 바꿔주는 존재가 아직 없다.

K팝과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스타’ , ‘다음 감독’을 계속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패션은 좋은 디자이너가 나타날 때마다 개별 펀드나 플랫폼이 일회성으로 반응해왔다.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결론은 다시 ‘어워드’로 돌아온다. 다만 트로피가 아니라 구조로서의 어워드다. K패션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가 결합된 플랫폼이다.
첫째는 LVMH Prize처럼 업계 전문가가 직접 심사해 안목 자체가 신뢰를 만드는 ‘선택 시스템’, 둘째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이나 CJ의 투자·제작·배급 인프라처럼 수상 이후에도 5~10년간 창작 언어를 지키며 생산·자본·글로벌 유통을 붙여주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다. 이 둘이 결합될 때 한국은 ‘상을 받는 나라’에서 ‘하우스를 배출하는 나라’로 옮겨갈 수 있다.
결국 LVMH Prize 본상 0회는 K패션의 실패가 아니다. 지난 13년간 수많은 한국 디자이너가 세계 최상위 후보군에 반복적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은 한국이 이미 상당한 창작 인재 풀을 확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K패션의 첫 번째 글로벌화가 K컬처를 타고 ‘발견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글로벌화는 브랜드 자체의 힘으로 ‘남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에서 첫 LVMH Prize 본상 수상자가 나오는 순간은 단지 한 디자이너의 수상이 아니라, K패션이 세계가 인정하는 독자적 언어와 장기적 브랜드 자산을 만드는 산업으로 이동했다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다.
그 이동을 만드는 것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그 천재를 발견하고 끝까지 키워내는 K패션의 어워드이자 매니지먼트 플랫폼이다.
강인정 에디터 ditofashion@naver.com
K패션 상승세인데, 왜 아직 LVMH Prize 본상은 없을까?
글로벌 시장에서 K패션의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서울의 신진 브랜드가 파리·밀라노 쇼룸에 들어가고 K팝·K컬처를 등에 업고 세계 소비자의 관심을 끈다. 그런데 세계 신진 디자이너의 가장 강력한 등용문인 LVMH Prize에서는 아직 한국 디자이너의 본상 수상자가 없다.
일본은 2018년 Doublet을 시작으로 Setchu, Soshiotsuki까지 세 차례 본상을 차지했고, 중국도 RUI에 이어 올해 LII가 Karl Lagerfeld Prize를 받았다. 이 차이는 단순한 수상 실적의 문제가 아니다. LVMH가 지난 13년간 무엇을 ‘미래의 럭셔리 브랜드’로 평가해 왔는지를 보면 K패션이 글로벌 브랜드로 스케일업하기 위해 무엇을 더 축적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 LVMH Prize 13년, ‘옷 잘 만드는 디자이너’를 뽑는 대회가 아니다
지난 9월 4일 파리 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열린 제13회 LVMH Prize의 주인공은 벨기에의 Julie Kegels였다.
2026년 2,400명 이상이 지원해 20명이 세미파이널, 9명이 파이널에 올랐고, Julie Kegels는 €400,000와 LVMH 전문가들의 1년간 멘토링을 받았다. 중국 Zane Li의 LII는 Karl Lagerfeld Prize를, 케냐 출신 Anil Padia의 Yoshita 1967은 Savoir-Faire Prize를 각각 받았다.
LVMHPrize-JulieKegels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이 상의 성격이 선명해진다. Jonathan Anderson, Sarah Burton, Nicolas Ghesquière, Marc Jacobs, Nigo, Phoebe Philo, Pharrell Williams와 LVMH 경영진이 직접 파이널리스트를 평가했다.
일반적인 디자인 공모전이 아니라, 오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글로벌 럭셔리 경영자들이 ‘내일의 브랜드’를 직접 골라내는 미래 럭셔리 인큐베이팅 시스템에 가깝다. 그래서 평가의 질문은 ‘이번 컬렉션이 얼마나 멋진가’에 머물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제품과 비즈니스로 반복할 수 있는가, 장차 글로벌 하우스로 성장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상자가 반드시 매출이나 팔로어 1위 브랜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다른 브랜드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고유의 디자인 문법이다. 결국 LVMH가 사는 것은 현재 매출이 아니라 미래의 브랜드 IP다.
# 일본 3 : 한국 0...한·중·일의 격차는 어디서 생겼나
LII VIDEO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아시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나라는 일본이다. Doublet(2018)이 아시아 최초 본상을 차지한 뒤 Setchu(2023), Soshiotsuki(2025)가 뒤를 이었고, Kozaburo Akasaka도 2017년 Special Prize를 받았다.
특히 Soshiotsuki는 2016년 후보에 올랐다가 본상을 받지 못한 뒤 거의 10년간 자신의 언어를 축적해 2025년 결국 본상을 받았다. 일본 전통 공연예술을 현대 남성복·테일러링으로 번역한 결과다. Setchu의 Satoshi Kuwata도 교토에서 출발해 파리·밀라노·런던을 거치며 일본적 사고와 서구 테일러링을 하나의 브랜드 언어로 결합했다.
중국도 달라지고 있다. RUI(2021)에 이어 올해 뉴욕 기반 LII가 Karl Lagerfeld Prize를 받았다. 더 이상 ‘중국 시장을 위한 중국 브랜드’가 아니라 뉴욕·런던·파리 생태계 속에서 처음부터 글로벌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흐름이다.
‘일본적이어서 좋아한다’는 단순화는 안 된다. 핵심은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세계인이 이해할 현대적 디자인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트렌드를 상품화하는 데 익숙해졌지만, 10년간 하나의 디자인 언어를 축적하는 데도 그만큼 익숙한가?
# 한국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13년간 끊임없이 파리의 문을 두드렸다
[사진=LII인스타그램]
한국이 LVMH Prize에서 외면받았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2014년 J.JS LEE, KYE, MINJU KIM부터 BLINDNESS, KANGHYUK, PAF, ASHLYN, KUSIKOHC, JIYONGKIM까지 매 세대 후보군에 올랐다. 가장 높은 성과는 2018년 황록(Rokh)의 Special Prize이며, 2022년엔 ASHLYN이 파이널에 올랐다.
한국의 문제는 세계 무대에 진입할 디자이너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최상위 후보군을 계속 만들어내면서도 마지막 단계에서 본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국 패션 생태계는 상품화·콘텐츠화·셀럽 활용에서 매우 빠르다. 그러나 ‘빠른 브랜드 성장’과 ‘럭셔리 하우스가 될 창작 언어의 축적’은 다른 문제다. LVMH 역대 수상자들은 소재·패턴·테일러링·공예·개인적 서사가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고 다음 시즌으로 진화하며, 옷을 보면 브랜드가 보이는 단계까지 디자인 IP를 축적했다.
한국 디자이너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PAF는 의복의 구조를 새 공식으로 해석하고, KANGHYUK은 인공 소재를 디자인 출발점으로 삼으며, JIYONGKIM은 햇빛에 의한 자연 탈색을 시그니처로 발전시켰다.
LVMH도 그를 소개하며 sun-bleaching과 craftsmanship을 핵심으로 꼽았다. 다음 LVMH 본상 후보는 ‘국내에서 잘 팔린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계 패션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는 브랜드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 ‘잘 팔리는 K브랜드’ 다음은 ‘대체 불가능한 K브랜드’다
YOSHITA 1967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2026년 세미파이널 20명에는 중국·일본·인도·태국·나이지리아·이란 등 다양한 문화권의 디자이너가 포함됐다.
LVMH는 독창적 창작 비전과 전통 craftsmanship에 대한 정교한 해석을 강조했고, 2024년 신설된 Savoir-Faire Prize는 공예·기술 혁신·지속가능성을 별도로 평가한다. 신진 브랜드가 해외 쇼룸에 들어가는 것과 글로벌 하우스로 성장하는 것 사이에는 Creative IP → Product Code → Craftsmanship → Global Community → Business System이라는 긴 축적 과정이 존재한다.
[GRAPHIC] 성장 공식: CULTURAL ROOTS → CREATIVE IP → PRODUCT CODE → GLOBAL VALIDATION → BUSINESS SYSTEM → GLOBAL FASHION HOUSE
지금까지 정책과 기업 투자가 ‘전시회 참가 → 바이어 상담 → 수주 → 매출’이라는 단기 성과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디자이너가 5~10년에 걸쳐 IP를 축적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 컬렉션, 쇼룸, 소재 개발, 아카이브, 생산 파트너, 자본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야 한다. 트렌드가 지나고 셀럽이 바뀌어도 남는 실루엣과 소재, 공법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Soshi Otsuki가 두 번째 컬렉션 이후 10년간 자기 세계를 발전시켜 결국 본상을 받은 과정이 그래서 상징적이다. 한국에도 PAF의 구조, JIYONGKIM의 햇빛, KANGHYUK의 소재처럼 대체하기 어려운 언어가 이미 등장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이들을 빨리 ‘대중 브랜드'로 만드는 게 아니라, 고유성을 지키며 글로벌 비즈니스 시스템을 붙여주는 일이다.
# 핵심은 ‘상’ 자체가 아니라, LVMH가 브랜드를 고르는 ‘기준’이다
LVMH Prize에서 부러워할 지점은 트로피가 아니라, 심사위원단이 던지는 질문은 디자인 언어가 있는가, 반복 가능한 코드로 만들 수 있는가, 글로벌 하우스로 자랄 수 있는가 그 자체다. 이는 K패션이 투자와 레퍼런스를 쌓기 위해 답해야 할 체크리스트이며, 답하려면 디자이너 개인의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작을 사업으로 반복·확장할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K팝이 세계를 흔든 것은 아이돌 개인의 재능만이 아니라, 하이브·SM·JYP·YG가 연습생 발굴부터 트레이닝, 글로벌 유통까지 10~20년간 쌓은 시스템 덕분이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CJ는 1990년대 이후 투자·제작·배급·멀티플렉스를 수직 계열화하며 연간 1조원대 콘텐츠 투자를 이어왔고, 그 위에서 봉준호·박찬욱이 세계적 거장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패션은 어떤가.
2026 LVMH Prize 수상자 Julie Kegels. 올해 LII는 Karl Lagerfeld Prize, Yoshita 1967은 Savoir-Faire Prize를 받았다.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한국에도 삼성패션디자인펀드가 있었다. 정욱준은 2009~2012년 연속 수혜자로 파리 컬렉션을 이어가 오늘의 준지(Juun.J)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펀드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조차 2012년 삼성물산 패션부문(옛 제일모직)의 인하우스 브랜드로 편입됐다.
‘독립적 글로벌 하우스’가 아니라 ‘대기업 포트폴리오 안의 라인’이라는 다른 방향이었다. 상을 받은 다음 세계적 하우스로 키워나갈 매니지먼트 구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고, 십수 년이 지나도 이 펀드와 함께 기억되는 브랜드는 사실상 준지 한 팀에 머물러 있다.
최근 무신사 파트너스의 ‘넥스트 패션 인큐베이터’(최대 3억원 투자·생산 대여금)나 대명화학의 브랜드 인큐베이팅도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초점은 여전히 국내 매출·유통 확대다. 파리 쇼룸, 글로벌 프레스, 공예 연구처럼 ‘디자인 언어를 10년 단위로 축적’하는 인프라와는 결이 다르다. 한국에는 K팝의 하이브·SM·JYP나 영화의 CJ에 해당하는, 개인의 재능을 반복 가능한 글로벌 브랜드 시스템으로 바꿔주는 존재가 아직 없다.
K팝과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스타’ , ‘다음 감독’을 계속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패션은 좋은 디자이너가 나타날 때마다 개별 펀드나 플랫폼이 일회성으로 반응해왔다.
[사진=LVMH PRIZE 홈페이지]
결론은 다시 ‘어워드’로 돌아온다. 다만 트로피가 아니라 구조로서의 어워드다. K패션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가 결합된 플랫폼이다.
첫째는 LVMH Prize처럼 업계 전문가가 직접 심사해 안목 자체가 신뢰를 만드는 ‘선택 시스템’, 둘째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이나 CJ의 투자·제작·배급 인프라처럼 수상 이후에도 5~10년간 창작 언어를 지키며 생산·자본·글로벌 유통을 붙여주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다. 이 둘이 결합될 때 한국은 ‘상을 받는 나라’에서 ‘하우스를 배출하는 나라’로 옮겨갈 수 있다.
결국 LVMH Prize 본상 0회는 K패션의 실패가 아니다. 지난 13년간 수많은 한국 디자이너가 세계 최상위 후보군에 반복적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은 한국이 이미 상당한 창작 인재 풀을 확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K패션의 첫 번째 글로벌화가 K컬처를 타고 ‘발견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글로벌화는 브랜드 자체의 힘으로 ‘남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에서 첫 LVMH Prize 본상 수상자가 나오는 순간은 단지 한 디자이너의 수상이 아니라, K패션이 세계가 인정하는 독자적 언어와 장기적 브랜드 자산을 만드는 산업으로 이동했다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다.
그 이동을 만드는 것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그 천재를 발견하고 끝까지 키워내는 K패션의 어워드이자 매니지먼트 플랫폼이다.
강인정 에디터 ditofashi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