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패션] 상생경영? 선 넘은 패션기업 ‘억지 갑질’

정인기 에디터
2025-06-17

상생경영? 선 넘은 패션기업 ‘억지 갑질’

작지 받고 13개월 만에 현금 결제…따져보면 손해

Financial, Information, Logistics, Price 종합한 경쟁력 절실



2024년 7월 작업지시서(Technical Package) 발행→1개월 이내 QC샘플 제공→내부 품평회-9월 발주(Approval)→원단 개발&BT&부자재 셋팅(40~60일 소요)→11월 중순 PP샘플(Pre-production sample)로 2차 QC(통상 3~4회 수정 이후 Approval)→12~1월 생산 투입→초도샘플(Top of production), 선적샘플(shipment sample) QC 이후 선적→2~3월 납품→납품 후 익익월 말일에 90일짜리 B2B 전자어음 결제(3월 납품이면 5월 말에 결제)→ 2025년 8월 말일 현금 전환

한 의류 생산업체가 최근 진행했던 제품의 생산 일정이다.


“지난달 납품하면서 더 이상 오더 진행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요즘 같은 불황에 오더 한 건이라도 아쉽지만 이런 거래 방식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내기도 어렵다.”

최근 만난 캐주얼 의류 생산업체 A대표의 하소연이었다. A대표는 그래도 해당 기업이 연매출 1조5000억원 규모의 상장사이고 국내 대표적인 패션기업이라서 동반성장의 기대로 코로나 시기 어려운 여건에서도 거래했지만, 최근 더 악화된 거래 조건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A 대표는 “한 디자인에 기본 3000~5000장 규모라서 매력을 가졌지만, 저가 제품임에도 3~4회 QC가 기본이라서 힘들었다. 심지어 지나치게 많은 QC로 발주가 늦어졌음에도 납기 클레임에 납득하기 어려운 마켓 클레임까지 더하니 1년간 온갖 갑질에 시달리고도 오히려 손해였다. 납기 클레임은 통상 6일차부터 대금의 일정 비율을 적용하는데, 일주일 정도 늦으면 1000장(4000~5000만원)에 150만원 정도를 물어야 한다. 저가 제품을 거래하면서 과다한 QC로 발주 자체가 늦어진 것을 감안하면 적반하장이라고 생각된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본 기사와 무관합니다 . 


또 다른 원단 제조업체 B대표는 “최근 원단을 납품한 C패션기업에서 10% 쇼티지(Shortage)가 발생했다며, 추가 납품을 요청했다. 이 회사는 다른 오더 건에 대해서는 20%가 불량이라며, 그만큼 가격을 내리든지, 제품을 보충하라고 했다. 우리는 20년간 불량률 1% 안팎을 기록하고 있고, 특히 정량보다 5% 정도 추가 공급하기 때문에 쇼티지는 있을 수 없다며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거부하며 일방적으로 수용하라고 했다.”


# Sourcing 전문가 육성으로 산업경쟁력 키워야


최근 내수 경기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손실을 거래처에 전가하는 ‘억지 갑질’이 선을 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모두 국내 상장 패션기업의 사례로서 근거 자료를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이 제조기업은 해당 패션기업 외에도 무신사와 쿠팡 등 플랫폼 기반 PB도 다수 거래하고 있는데, 무신사는 15일 마감 후 익월 말일, 쿠팡은 입고 후 60일 현금 결제로 비교적 양호하다고 한다. 다만 이들은 원부자재에 대해 본인들이 가격까지 지정(Nomination)하고도 오더 발주 후 원부자재 값을 완제품 벤더가 선결제하라는 것과 본인들이 수익률까지 정하는 탓에 수익 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생산 현장 ,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본 기사와 무관합니다 . 


B 대표는 “오더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짧아도 6개월은 메달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샘플 개발비와 각종 품질 검사비, 물류비, 출장비 등을 감안하면 최소 20% 이상 수익률은 보장돼야 하는데, 바이어들은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디자이너와 생산관리자와의 대면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아 직원 양성은 물론 채용조차 어렵다. 패션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싱 과정에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한계 직종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산업 경쟁력 하락도 우려했다.


패션업은 디자인에서부터 샘플 개발, 원단 소싱과 완제품 제조와 납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길고 복잡한 서플라이 체인이 특징이다. 길게는 1년 전에 상품 개발을 시작함에 따라 적정재고량 관리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결국 기업은 물론 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S2B2B 플랫폼(Supply chain 혁신 플랫폼)과 같은 BM 개발과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프로세스 혁신, DTP 시스템을 통한 제조과정 DX 등 공급망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세계적 경쟁력 가진 수출 제조기업과 협업 절실


복수의 전문가들은 “K 뷰티가 글로벌 마켓에서 성장한 원동력에는 콜마와 코스맥스와 같은 제조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K패션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싱 부문에서 시스템과 프로세스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수출 제조기업들과 협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업무 프로세스, 용어, 결제 방식 등 근본적인 거래 관행부터 혁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소싱은 샘플 개발에서부터 원부자재 구매, 물류 등 모든 과정이 금융과 정보가 생명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소싱 경쟁력을 평가할 때 Financial(저금리 자본활용), Information(벤더기업의 정보), Logistics, Price 등을 종합해서 평가하는데, 국내 기업은 첫째도 둘째도 가격 위주로 평가하는 탓에 경쟁력 높은 기업과 거래하기도 어렵고, 결과적으로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진다”며 소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