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패션] 한국 패션, 다시 ‘중국 소싱’으로 돌아가는 이유

정인기 에디터
2025-12-08

한국 패션, 다시 ‘중국 소싱’으로 돌아가는 이유

단가보다 ‘재고 리스크·완성도·민첩성’을 우선 선택하는 시대

동광인터내셔날, 중국 디샹 그룹과 제휴해 소싱경쟁력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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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패션기업의 해외 소싱 전략이 팬데믹 이후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동안 ‘동남아=초저단가’의 공식이 절대 기준처럼 작동했지만, 팬데믹 이후 증가하는 재고 리스크를 낮추고, 필요한 제품을 제때 공급받아 최대한 판매하는 것이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확대한다는 여론이 확대되면서 SCM(Supply Chain Management)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제 기업들에게는 “얼마나 더 싸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2~3주 안에 100~200장을 기동성 있게 대응하느냐”가 경쟁력이 된 것이다.


국내 중견 패션기업 동광인터내셔날(대표 이재수)는 최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디샹 그룹(Dishang Group) 그룹을 방문해 소싱 관련 전략적 미팅을 진행했다. SOUP·Visit in NewYork·UCLA 등을 전개하는 이 회사는 이번 미팅을 통해 최근 국내 패션기업이 해외 소싱에서 무엇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지 직접 보여주었다. 동광은 단순히 ‘적정 단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량 생산 대응력, △리드타임 단축, △MOQ별 투명한 가격체계라는 세 가지 요건이 핵심이었다. 이 조건은 최근 한국 패션기업 전반이 요구하는 새로운 소싱 기준과 결이 일치했다.


# 시즌 대량생산 줄고, 반응생산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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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웨이하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디샹 그룹을 방문한 동광인터내셔날팀

국내 패션기업들은 과거 동남아 중심 소싱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단가 절감’이 거래처 선정의 절대 기준이었다. 그러나 동남아 생산은 평균 60~90일 이상의 리드타임이 필요하고, 국내 운송까지 고려하면 시즌 6개월 전부터 발주량이 확정되어야 했다. 이커머스 중심으로 판매 변수는 높아졌지만 생산은 과거 방식에 머무르면서, 기업들은 팔릴지 모르는 물량을 대량으로 선투입해야 했고 그 결과 재고 리스크는 구조적으로 증가했다. 저단가 구조가 결국 더 큰 비용을 초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실제 최근 베트남에서 생산해 국내 아웃도어스포츠와 골프웨어 브랜드에 공급하는 한 벤더는 “이번 겨울 물량 입고를 앞두고 몇몇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입고를 연기했다. 창고에 재고가 넘쳐 입고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또 일부는 결제일까지 1~2개월 연기했다. 현재 2026년 추동 생산을 투입해야 하지만, 수량 결정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패션기업들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요구하고 있다. 초도 100~200장을 투입해 반응을 확인하고, 판매 속도가 나오면 즉시 200~300장 리오더하는 ‘반응생산(리액티브 프로덕션)’ 체계가 한국 패션기업의 기본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즌 기획도 기존의 연 2~4회에서 벗어나 2~3개월 단위 미니 시즌으로 쪼개지면서, 잘 팔리는 SKU에 자본을 집중하고 실패 가능성을 낮추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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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DX 를 통해 민첩성을 강화한 디샹 그룹 제조 라인


문제는 이러한 운영을 동남아 생산 기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리드타임이 길고 생산 구조가 대량 중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기업들의 관심은 다시 중국 연안으로 향하고 있다. 다롄(요녕성)·웨이하이와 옌타이(산둥성)·자싱과 닝보(저장성) 등 중국 연안 지역은 과거 대규모 수출 중심의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빠른 속도로 소량·다품종 기반의 스몰 MOQ 라인을 갖춘 지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2~3주 단위의 납기 대응, 한국 수준의 봉제·패턴 퀄리티, 단거리 물류 인프라 등은 반응생산에 최적화되어 있어 국내 브랜드들의 회귀를 이끌고 있다.


이번 동광인터내셔날과 디샹 미팅은 바로 이 변화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동광은 △초도 100~200장 소량 생산의 안정적 수행 여부, △초도 생산 후 2~3주 내 리오더 가능한 리드타임, △200·300·500장 단위의 단계별 가격표 제공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특히 ‘MOQ 구간별 가격표’는 반응생산 의사결정의 속도·정확도와 직결되는 요소다. 디샹도 소수정예로 변형된 생산라인을 스몰 MOQ 전용 라인으로 운영하며 소량 대응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설명했는데, 이는 현재 한국 여성복 기업들이 중국 연안 공장에 공통적으로 기대하는 조건과 거의 동일하다. 현지 공장들도 대량 수출 시장의 축소를 견디기 위해 소량 구조로 전환되고 있어, 이해관계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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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생산 라인과 별도로 스몰 MOQ 전용 라인으로 운영하며 소량 대응력을 확보하고 있는 디샹그룹

동광은 이번 출장에 이재수 회장과 제품혁신 본부장과 실무팀장이 동행했으며, 디샹 외에도 티셔츠 편직에서부터 봉제, DTP에 이르는 전 공정을 갖춘 웨이하이 홍왕(Hongwang)과 다운의류 전문기업 웨이하이흡합의류 등 2개 전문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소싱경쟁력을 강화했다.


# 동남아-반복템, 중국은 반응템으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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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샹쇼룸


이러한 흐름은 현장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시즌 전체를 한 번에 기획하던 방식을 버리고 연 6~12회로 기획 단위를 쪼개고 있으며, 초도–반응–추가 반응의 3단계 운영이 일반화되고 있다. 기획·생산·MD의 역할도 유기적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동남아는 반복 템·베이직 SKU 중심의 대량 생산지로, 중국 연안은 시즌 전략 아이템·트렌드 반응템 생산지로 재분류하는 듀얼 소싱 전략 역시 빠르게 확산 중이다.


결국 지금 한국 패션기업이 직면한 소싱의 본질은 ‘단가 전쟁’이 아니라 ‘무재고 경쟁’이다. 팔리지 않을 가능성을 낮추고, 잘 팔리는 제품에 즉시 대응하는 민첩성이 기업 성과를 가르는 지표가 됐다. 중국 연안 소싱의 재부상은 이 민첩성의 요구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 결과이며, 동광인터내셔날과 디샹을 비롯한 중국 제조기업과 전략적 미팅은 이 흐름이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제 한국 패션기업이 소싱 전략을 세울 때 던져야 할 질문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의 질문이 “어디가 가장 싸게 만들어주나?”였다면, 이제는 “어디가 100~200장을 2~3주 안에 만들어줄 수 있는가?”이다.

국내 패션기업의 다음 10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찾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 웨이하이=정인기 에디터 ingi@dito.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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