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리테일]속도·품질 한 번에...한국 택한 라이징 인디 브랜드

신아랑 에디터
2025-08-19

속도·품질 한 번에...한국 택한 라이징 인디 브랜드

기획부터 유통까지 서울로…럭셔리급 생산 품질과 속도 확보

기능성·품질·소비자 피드백 결합한 한국형 애자일 공급망 구축


글로벌 의류 제조는 대형 기업 중심의 네트워크로 진행됐지만 몇 년 사이 라이징 인디 브랜드가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미지=ASRV  '끊임없는 추구(RELENTLESS PURSUIT)' 컬랙션 


한국은 오랫동안 안정성과 품질을 상징하는 생산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다수의 해외 브랜드는 한국 업체와 계약하더라도 실제 대량 생산은 베트남·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 등 저임금 지역에서 이뤄졌다. 글로벌 의류 제조는 세아, 한세, 한솔 등 대형 기업 중심의 해외 네트워크가 주류였다.


최근 몇 년, 공급망의 우선순위가 저비용에서 ‘민첩성’과 ‘트렌드 반영 속도’로 이동하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다. 특히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라이징 인디 브랜드가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뚜렷해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다.


# 라피신, 서울을 글로벌 허브로 삼아 ‘민첩성’ 구현


라피신은 서울 거점화로 기획부터 디자인, 생산, 유통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한 운영 구조를 확립했다.


대표적인 예로 202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범한 여성복 브랜드 ‘라피신(La piscine)’을 들 수 있다. 라피신은 런칭 1년 만에 제품 기획부터 샘플 제작, 대량 생산, 물류까지 전 과정을 서울로 이전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결정은 기획에서 유통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더 빠르고 유연하게 운영하기 위한 전략적 전환이었다. 한국은 숙련된 제조 인프라와 글로벌 트렌드 발신지로서의 영향력, 신속한 물류 네트워크를 고루 갖춘 시장으로 라피신의 성장 전략과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졌다.


브랜드 공동 창립자 지오반니 무라키니(Giovanni Muracchini)와 앨리스 모라스키니(Alice Moraschini)는 한국을 선택한 이유로 “숙련된 장인 네트워크, 빠른 트렌드 수용력, 디지털 플랫폼 기반 유통 환경이 결합된 완전한 패션 생태계”를 꼽았다. 특히 의류 샘플링과 봉제 기술, 섬세한 마감 품질은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기준에 부합하며 시즌별 컬렉션에서 요구되는 고난도 디테일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 거점화로 라피신은 기획부터 디자인, 샘플 제작, 대량 생산, 그리고 유통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한 운영 구조를 확립했다. 신상품 기획과 샘플 검증을 불과 수 주 안에 마무리할 수 있으며, 해외 쇼룸과의 실시간 협업, 바이어 상담 및 피드백 반영, 주문·재고 데이터의 즉각적인 조정이 가능해졌다.


또한 인천과 부산을 포함한 주요 물류 거점을 통해 아시아·유럽·북미 시장을 동시에 커버하고, DHL·페덱스 등 글로벌 특송사와의 연계를 통해 짧은 기간 내 국제 배송을 실현했다. 사후 서비스 역시 한국 본사에서 직접 처리해 제품 수선, 교환·환불, 고객 문의 응대까지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해외 소비자와 바이어 사이에서 ‘믿을 수 있는 브랜드’라는 평판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민첩성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라피신은 2025–2026 가을·겨울 캡슐 컬렉션을 지난 2월 공개 직후 파리 프렝땅(Printemps), 홍콩 하비니콜스(Harvey Nichols), 이스탄불 베이멘(Beymen), 밀라노 라 리나센테(La Rinascente)를 포함한 30개 이상의 주요 멀티 브랜드 소매업체에 입점했다. 라 리나센테는 오는 9월 4층에 60㎡ 규모의 팝업 스토어를 한 달간 운영할 계획이며, 이사벨 마랑(Isabel Marant), 짐머만(Zimmermann)과 함께 전개할 예정이다.


# ASRV, 기능성·품질·소비자 피드백 반영 ‘삼박자’ 전략


ASRV는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는 ‘South Korea Products’ 전용 카테고리를 운영하며 한국에서 제작된 제품의 품질과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칼즈배드에 본사를 둔 프리미엄 스포츠웨어 브랜드 ‘ASRV’는 한국 제조업과 협력하며 글로벌 입지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2014년 제이 바튼(Jay Barton)이 설립한 이 브랜드는 퍼포먼스 스포츠웨어에 스트리트 감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으며, 2020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30 Under 30’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출시 이후 ASRV의 성장 속도는 가팔랐다. 2019년 1,000만 달러였던 매출은 2020년 1,800만 달러로 80% 증가했고, 2022년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132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글로벌 스포츠웨어 대기업 룰루레몬 팔로워 수의 약 34%에 해당하는 수치로, 브랜드 규모 대비 강력한 온라인 영향력을 보여준다.

 

성장 핵심은 초기부터 한국을 주요 생산 거점으로 삼은 전략이다. 효성, 태광, 우주글로벌 등에서 공급받은 Tetra, Tetra lite, Kinterra, Aerosilver 등의 고기능성 원단을 활용해 방수·방풍·발수 처리와 고탄성·경량화 등 후가공을 거친다. 복잡한 절개와 다중 봉제 공정에서도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한국 제조업의 역량은 글로벌 소비자 신뢰를 뒷받침하고 있다.

 

품질 관리는 설계 단계부터 출고까지 전 과정에 걸쳐 진행된다. 국내 시험기관에서 원단과 부자재의 내구성, 색 견뢰도, 봉제 강도를 검증하고, 생산 중간 단계에서는 샘플 착용 테스트로 설계 의도와 완제품 퍼포먼스의 일치 여부를 확인한다.

 

또한 소비자 의견을 빠르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체계를 갖췄다. 인스타그램, 디스코드, 자체 플랫폼 등을 통해 수집한 피드백을 검토해 다음 생산분에 반영한다. 예를 들어 특정 팬츠의 포켓 깊이나 밑위 길이에 대한 요구가 많을 경우 곧바로 한국 생산 라인에 전달해 설계 변경을 하는 것이다.

  

해외 라이징 인디 브랜드가 한국을 주요 거점으로, 품질과 기능성 강화, 신속 대응까지 체계를 구축하며 시너지를 내고있다

 

이처럼 소비자 중심의 민첩한 운영은 한국 제조와의 신뢰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ASRV는 2017년 FW 시즌에 ‘끊임없는 추구(RELENTLESS PURSUIT)’라는 한글 문구를 새긴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며, 한국 생산 기반에 대한 존중을 제품 디자인에 담았다. 현재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는 ‘South Korea Products’ 전용 카테고리를 운영하며 한국에서 제작된 제품의 품질과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SRV는 한국의 고품질 제조 역량에 글로벌 브랜드의 기획·마케팅 전략을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한 대표 사례”라고 평가했다.

 

라피신과 ASRV는 한국의 트렌드 주도력, 정밀한 생산 품질, 글로벌 시장 대응 속도를 결합해 기존의 대량·저가 중심 글로벌 생산 모델과 차별화된 ‘한국형 애자일(Agile) 패션 공급망’을 구축했다. 애자일 모델은 짧은 주기로 기획·생산·출시를 반복해 변화하는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방식이 “빠른 트렌드 소화와 고품질 생산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럭셔리와 프리미엄 브랜드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한 글로벌 리테일 컨설턴트는 “과거 럭셔리 브랜드는 느린 패션 캘린더를 고수했지만, 이제는 고객이 트렌드를 접하는 속도에 맞춰 더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며 “한국형 애자일 모델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통적인 유럽 럭셔리 브랜드가 6개월 이상 소요하는 컬렉션 주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러한 차별성 덕분에 앞으로 니치 럭셔리와 프리미엄 스트리트 브랜드의 한국 이전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신아랑 에디터 thin567@dito.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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